최근 미국 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주가는 하락하고, 부도위험을 피하기 위해 발행한 신용파생상품의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또한 베어스턴스 같은 굴지의 금융기관이 JP 모건에 넘어갔으며,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시티뱅크마저 엄청난 손실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제 현대사회는 커다란 금융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시대가 됐다. 어떻게 하면 위험을 관리하면서도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확률론을 근간으로 금융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금융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 확률론 근거로 금융관련 문제 해결
일반인들은 월급, 사업을 통한 수익, 배당 등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주식 및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그러면 금융기관은 이렇게 모아진 자금을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해주거나 주식, 채권 등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활동을 하게 되면서 금융시장이 성립된다.
최근에는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상품들이 매우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금융상품들의 미래가격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제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커다란 금융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시대가 됐다.
이 같이 불확실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나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위험을 관리하고, 또 어떻게 이익을 창출해 낼까.
금융에 수학이 도입된 이유는 수학이 이처럼 불확실하고 복잡한 금융시장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이익을 창출해 내도록 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불확실하게 움직이는 주가나 이자율을 모델링할 수 있는 확률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이 확률론을 근간으로 해 금융관련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새로운 분야가 금융공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금융수학이다.
최근 은행이나 증권회사에는 ‘퀀트(quant)’라고 불리는 새로운 직종의 사람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음에도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이들의 전공을 살펴보면 그동안 금융기관의 주종을 차지하던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놀랍게도 수학, 통계학, 물리학, 또는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퀀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퀀트들은 다양한 금융상품의 공정한 가격을 산정해 내거나 위험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내는 등의 계량적인 일을 한다.
과거에는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이공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퀀트로 진출했지만 이제는 금융수학 또는 금융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로 한정돼 가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금융수학이 무엇인지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금융시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금융상품에는 기초자산이라고 불리는 주식, 채권, 그리고 외환 등이 있다. 이 같은 기초 자산들의 미래가격은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 보유하고 있다가는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제는 일반사람들도 흔히 사용하는 선물,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상품들이 그것이다.
이 같은 초보적인 파생상품은 곧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금융상품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주가와 연계된 ELS, 이자율과 연계된 구조화채권, 그리고 회사의 부도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신용파생상품 등으로 퍼져나가는 것.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이 같은 상품을 매입하는 경우와 반대로 파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는 것인데, 이 처럼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위험을 전가 받게 돼 많은 위험을 떠안게 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수익을 올리느냐가 매도한 사람의 주요 관심사가 된다.
최근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수학이나 통계학을 전공한 금융수학 전문가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에 난해한 수학적 구조가 숨어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금융수학의 태동이 본격화됐다.
■ 옵션에 숨겨진 수학적 구조
금융수학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던 옵션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현재 주가가 1만원인 주식 1억 원 어치를 1년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자. 만일 1년 후 주식을 팔아서 9,000만원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면 주식가격이 9,000원 이하로 떨어졌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자칫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고, 기업이 부도가 날 수도 있다.
이 같은 위험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있다. 현재 갖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1년 후 9,000원 이하로 떨어지더라도 이를 9,000원에 사주겠다는 사람(편의상 A라고 하자)이 있으면 된다.
이럴 경우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챙길 수 있고, 주가가 떨어지면 9,000원에 팔아버릴 수 있다. 이렇게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그리고 정해진 시점에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를 풋옵션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같은 풋옵션이 공짜일 리 없다. 처음 계약을 할 때 위험이 없어지는 대가로 옵션프리미엄(옵션 가격)이라고 부르는 현금을 A에게 지불해야 한다. 일종의 보험을 드는 셈이고, 이에 따른 보험료를 내는 것이다. 풋옵션과 반대로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콜옵션이라 부른다.
이 같은 옵션은 1970년대 이후 서구 금융시장에서 폭발적인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금융시장의 복잡한 위험 형태와 이들을 회피하려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에 복잡하고 난해한 수학적 구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인 금융수학이 태동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옵션에서 수학적인 관심사는 무엇일까. 먼저 공정한 옵션프리미엄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인 옵션을 얼마에 사고팔아야 거래 쌍방 간에 공정한 계약이 되는 것일까 하는 문제다.
우선 과거 데이터를 이용해 주식 가격이 어떤 확률 과정을 따르는지 알게 되면 미래 시점에서의 가격 분포를 알 수 있게 된다. 옵션 가격은 그때 주어질 이득의 기대 값을 구한 다음 이자율을 이용, 현재의 가치를 구해주면 된다는 직관적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직관이 맞는다면 금융수학이라는 분야는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비트리지라고 불리는 ‘전혀 위험 없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프리미엄 결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금융과는 별개로 발전돼 온 확률과정론 및 확률론이라는 분야가 이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금융이론이 그 쪽으로 발전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툴들이 이미 개발돼 있었던 것.
옵션의 가격결정 문제는 지난 1973년 블랙, 숄즈, 그리고 머튼에 의해 해결됐다. 1995년 타계한 블랙은 받지 못했지만 이들의 업적은 1997년 노벨 경제학상으로 보상됐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숄즈와 머튼이 참여한 헤지펀드 회사 LTCM이 1998년 파산해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보여 주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천재들의 실패’라는 책에 잘 묘사돼 있다.)
정리해 보면 금융수학이란 금융시장에 상존하는 위험을 회피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고 거래하는데 따른 창조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금융상품의 취급 절차들을 마련하거나 보완하고, 위험을 측정·관리해 금융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해 가도록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 금융수학 전공자 수요 계속 늘어
금융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주로 확률론 및 확률과정론(금융관련 부분), 재무관리, 파생상품이론, 컴퓨터 프로그래밍(비주얼 베이식, C++ 등), 위험관리론, 이자율 및 신용위험 모형, 편미분 방정식, 수치 해석 및 시뮬레이션, 계량경제학, 그리고 통계학 등을 배우게 된다. 회계, 법률, 세금 관련 내용도 많이 알수록 좋기 때문에 종합예술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유수의 대학에서 금융수학 석사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많은 대학에서 금융수학 과정을 개설하고 강의 과목도 늘려가는 추세다. 여러 학과들이 연계된 석사과정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금융수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어떤 곳에 취업을 하게 될까. 금융수학을 전공하면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투자금융회사, 신용평가회사, 자산운용회사, 금융관련 IT 회사 등 금융전반에 걸친 회사에 취업을 한다.
하는 일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주로 파생상품과 관련된 상품의 개발 및 평가, 위험관리, 자산운용, 신용 및 펀드 평가, 금융솔루션 개발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현재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적은 상황이며, 금융 분야는 매우 넓어서 아직도 미개척 분야가 많다.
최근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에 따른 금융시장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많은 증권회사들이 설립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수학 전공자들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경험을 쌓은 퀀트들이 해외로 진출하기도 하는 등 전망도 밝다.
사고가 유연하며 외향적이고, 성취 욕구가 강한 수학 전공 학생이라면 금융수학에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_전인태 가톨릭대학교 수학과 교수 injeon@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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