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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에너지 내뿜는 '색면추상'을 만나다

<유영국 탄생 100주년 '절대와 자유' 展>

길·바다 등 겹겹의 물감층이 서로 다른 질감으로 꿈틀

1937년 초기작서1999년 절필작까지 100여점 전시

유영국의 1964년작 ‘작품(work)’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화가 유영국(1916~2002)을 두고 ‘한국의 마크 로스코’라 칭했던 것을 깊이 반성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거장을 굳이 서양 화가에 빗대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 사대주의 태도도 뉘우쳐야 할 일이지만, 유영국의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거두절미해버리고 대표작 몇 점을 통해 ‘색면추상’의 화가로 단정 짓는다면 놓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에서 변월룡·이중섭에 이은 마지막 전시이자 유영국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이 덕수궁관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일본 유학 시절 선보인 기하학적 구성의 부조(浮彫) 작업부터 일제가 추상미술을 탄압하자 택했던 사진 작품들을 비롯해 1937년 초기작부터 1999년 절필작까지 100여 점이 선보였다.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김환기와 쌍벽을 이루는 거장이지만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편이다. 흔히 알려진 대표작이 산과 강 등 자연을 삼각형·사각형 같은 널찍하면서도 반듯한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해 원색으로 구성한 것이다 보니 ‘색면추상’의 대가로 분류된다.

유영국의 1957년작 ‘산’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산이 많으면서도 바다를 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자연을 내면화한 다음 엄격하고 절대적인, 그러면서도 강렬한 색채가 황홀감을 주는 추상화의 경지로 끄집어내는 데 평생을 보냈다. “예순 살까지는 기초를 좀 해 보고 이후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 보자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 그는 특히 초기작에서 형태의 단순화, 색채의 조화 외에도 표면의 재질감(마티에르) 연구에 집중했다. 산으로 난 길과 바다 위 물결에서 겹겹의 물감층이 서로 다른 질감을 내며 어우러진 모습은 작품을 직접 눈으로 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



유영국의 1961년작 ‘산’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의 백미는 1964년 작가의 첫 개인전 작품을 한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둠을 비집고 나온 빛인 듯, 돌 틈을 깨고 나온 물줄기인 듯 힘차게 내뿜는 기운이 시선을 압도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렸는지 말할 수 없더라도 어떤 것을 그리고자 했는지 공감할 수 있다. 아무리 똑같이 묘사한다 해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산하(山河)의 본질이 추상화 속에서 꿈틀댄다. 빨간색이라 하더라도 층층이 다른 빨강을 펼쳐 보이는 색의 변주, 붉은빛과 푸른빛이 팽팽하게 이뤄낸 보라색의 긴장감 등은 그림 보는 재미의 절정을 선물한다.

유 화백은 대학교수를 오래 하지 않았고 화단(畵壇) 정치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서울대 교수가 된지 2년만에 젊은 작가들의 모임인 ‘50년미술협회’를 두고 ‘좌파 성향의 협회 참여’를 지적당하자 사직했고, 파벌문제의 폐단 때문에 국전(國展) 참여도 거부했으며, 근무일수가 너무 많으면 전업화가로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면서 홍익대 교수도 4년 만에 그만뒀다.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에 굳건한 믿음과 의지를 덤으로 얻어올 만한 전시다. 관람료 3,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유영국의 1989년작 ‘작품(work)’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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