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소련이 달 탐사 로켓 발사를 실패한 이유

발사대에 세워진 N-1 로켓




1969년 2월 20일은 무척이나 추웠다. 때문에 발사는 연기되었다. 소련 최대의 로켓도 카자흐스탄의 겨울 추위에는 속수무책 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날씨가 따뜻해졌다. 그날 오후 3시 18분, 거대한 N-1 로켓은 처음으로 하늘로 솟구쳤다. 제1단에 달린 30대의 로켓 엔진의 작동음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로켓의 꽁무니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은 이 로켓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에게는 가슴 떨리는 장관이었다.

그런데 발사 후 70초가 지나자 30대의 엔진이 모두 꺼져 버렸다. N-1 로켓은 관성 덕택에 고도 27km까지는 올라갔지만, 그 이후 중력을 못 이기고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상 탈출 시스템이 작동하여 싣고 있던 달 탐사선을 로켓에서 분리시켰다. 분리된 달 탐사선은 발사장에서 33km 떨어진 곳에 내려앉았고 달 탐사선을 떠나보낸 로켓은 발사장에서 50km 떨어진 지점에 추락했다. 미국보다 먼저 달에 가려던 소련의 대담한 시도가, 불과 2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뒤틀리고 불탄 고철 더미로 추락하고 말았다.


메가 부스터의 기원
우주 시대의 여러 거대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N-1 로켓의 시작 역시 스푸트니크 호의 발사로 우주 시대가 공식 개막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중반,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도 과학자와 기획자들은 우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1954년 이들은 유인 우주선으로 화성이나 금성에 근접 비행을 실시하는 안을 검토했다. 이는 달 착륙 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쉬웠다. 그러나 기존의 R-7 로켓으로는 불가능했다. 소련은 이웃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더 큰 로켓을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1957년 7월 여러 군용기 제작 설계국 국장들과 연구소의 소장들은 여러 건의 로켓 개발 제안서를 받게 된다. 그 제안서 중에는 대형 행성간 탐사 로켓인 ‘TMK’ 개발안도 있었다. TMK란 대형 행성간 탐사 우주선을 뜻하는 러시아어 약자를 영어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TMK의 제작은 결국 우주기술 연구소 산하 NII-88 연구본부에 위치한 OKB-1 설계국에 맡겨졌다. OKB-1 설계국의 국장 겸 수석 설계사였던 세르게이 코롤레프가 이 임무를 진두지휘했다.

로켓의 제원은 화성 및 금성 근접 비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설계 기획자들은 이 임무에는 최소 75톤의 탑재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중 탐사선의 무게는 15톤이며, 로켓의 무게는 60톤이다. 그리고 로켓은 이 무게를 모두 감당하면서 자력으로 지구에서 발사되어야 한다.

이만한 무게를 들어 올리려면 강력한 엔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코롤레프는 당시 대형 로켓 개발 경험이 가장 많았던 OKB-456 설계국장 발렌틴 글루슈코와 만났다. 글루슈코는 제1단 로켓의 연료로 질산과 UDMH(비대칭 디메틸 히드라진)을 사용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코롤레프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설계하기 힘든 N-1로켓에 유독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설계를 더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글루슈코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 탓에 양 설계국의 엔지니어들은 오랫동안 분쟁 관계에 놓이게 되고, 글루슈코는 N-1의 비행을 막으려 애를 쓰게 되었 다.

글루슈코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코롤레프는 OKB-276 설계국을 찾아가 그곳의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에게 N-1 엔진 개발을 일임하게 된다. 글루슈코에 비하면 쿠즈네초프는 대형 로켓 엔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적었다. 때문에 그는 상당히 원시적인 해법을 내놓았다. 작은 로켓 엔진이어도 아주 많이 있으면 어떻게든 필요한 추력은 나온다는 것이다. 코롤레프는 이 안을 받아들였고 N-1은 완성을 향해 느린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발사장으로 이동하는 N-1: 달탐사 로켓이 화염 방출구를 지나기 직전이다.


금성에서 달까지
코롤레프의 메가 부스터 프로그램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64년 소련 정부가 내린 이상한 명령은 다년간의 연구 노력에 큰 타격을 주고 말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소련은 우주 경쟁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었다. 미국보다 먼저 위성을 발사했으며, 살아있는 동물과 사람도 먼저 발사했다. 심지어는 여자 우주비행사도 미국보다 먼저 배출했다. 미국보다 먼저 우주 유영도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제미니, 아폴로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보다 먼저 유인 달 탐사를 성공하겠다고 결심하고, 소련과의 기술 격차를 무섭게 따라잡고 있었다. NASA는 달에 가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따라서 8월 3일, 소련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보다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미국이 유인 달 착륙 프로그램을 공식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후, 소련도 달 착륙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OKB-1은 이 새 목표 때문에 N-1이 취소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로켓이 아닌 N-1을 사용해 달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결국 수락되었고 1965년, 미국보다 먼저 사람을 달에 보내는 임무가 코롤레프와 N-1 로켓에 주어졌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N-1은 화성 및 금성에 대한 근접 비행 임무에 걸맞는 힘은 있었지만, 달 착륙 임무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착륙 임무는 근접 비행 임무보다 어렵다. 특히 자유 귀환 궤도 임무는 더욱 그렇다. 근접 비행 임무에서는 궤도 진입용, 지구행 분사 연료를 실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별도의 복잡한 생명유지 장치 및 추진 장치를 지닌 착륙선을 싣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착륙 임무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하다.

따라서 설계만 놓고 보면 N-1은 달 탐사용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폴로 계획의 달 궤도 랑데부 임무에 최적화된 새턴 5호 로켓과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새턴 5호 로켓은 저지구 궤도에 130톤을 올려놓을 수 있다. 월면차까지 달에 가져가는 장기 임무인 아폴로 계획에 충분한 추력이다. 그러나 N-1 로켓의 추력은 75톤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코롤레프의 설계국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달 탐사선을 여러 조각으로 분해한 다음 여러 차례의 발사를 통해 궤도상에서 조립하는 방법, 그리고 N-1의 추력을 높이는 방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전자의 경우 여러 차례의 발사 중 하나라도 실패했다가는 전체 임무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N-1의 추력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우선 케로신의 온도를 낮추고 액체산소를 과냉각시켜 기존의 연료 탱크에 더 많은 연료를 저장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또한 로켓 엔진의 성능을 개량하고, 제1단 로켓에 장착되는 엔진의 수를 6개 더 늘렸다. 이로서 달에 가기 위해 N-1의 제1단 로켓에는 무려 30개의 엔진이 붙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력은 고작 20톤이 늘어난 95톤 수준이었다.

이 결정이 나온 후 N-1의 최종 설계안이 나왔다. ‘블록 A’라고 불리우는 제1단은 30대의 엔진이 있었다. 이 엔진들은 KORD라는 시스템으로 관리된다. KORD는 실시간 진단 시스템으로 모든 엔진의 중요 매개변수를 감지,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경우 해당 엔진만 골라서 버릴 수 있었다. 이는 엔진이 30개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엔진이 30개면 한 두 개쯤 꺼져도 다른 엔진들이 멀쩡하다면 임무 전체가 실패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추력만 확보되었다고 끝이 아니다. 비행 중 로켓의 제어가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한다. N-1은 추력 차동을 이용해 피칭 및 요잉 조절이 가능했다. 엔진 분사구의 각도를 바꾸는 데는 무겁고 복잡한 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므로, N-1은 그것을 쓰지 않고 대신 추력 차동을 사용했던 것이다. 로켓의 한쪽의 추력을 줄이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횡전 조절에는 주 엔진 클러스터 바깥에 설치된 6개의 작은 노즐을 사용했다. 이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추력으로 로켓의 수직축을 중심으로 롤링시킨다는 방식이었다. 새턴 5호와 마찬가지로, N-1도 다단식 로켓이었다. 블록 A 위에는 2개 단이 더 있었다. 제2단은 ‘블록 B’로 불리웠으며 8개의 엔진으로 움직였다. 제3단은 ‘블록 V’로 불리웠으며 4개의 엔진으로 움직였다.

‘블록 V’의 위에 탑재물이 올라간다. 달 탐사 시 탑재되는 탑재물은 4개의 구성품으로 이루어진 L-3 복합체였다. 이 4개의 구성품 중 블록 V의 바로 위에 올라가는 블록 G는 승무원들을 달로 보내는 달 방향 분사단이었다. 블록 G 위에 올라가는 블록 D는 궤도 수정 및 달 궤도 진입, 승무원 달 착륙용 분사단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블록 I LOK 달 궤도선과 블록 E LK 달 착륙선이 얹혔다.






발사된 N-1: N-1의 발사 모습. 추락하기 전의 모습이다.


지구를 떠나라
코롤레프가 1966년 타계하자, 후임자인 바실리 미신이 N1-L3 프로그램을 물려받았다. 그의 지휘 하에 이 로켓은 첫 비행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1967년 상반기에 N-1을 비행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나, 이는 불가능했다. 이 로켓이 발사장에 세워진 것은 1968년 5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마무리된 것은 1969년 2월이었다. 이미 미국의 아폴로 8호가 달 궤도를 돌았고, 미국의 유인 달 착륙이 코앞인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 N-1 로켓이 아무 문제 없이 발사된다면 소련이 달에 사람을 먼저 보낼 가능성도 아직은 충분했다.

N1-3L(3번째로 생산된 N-1로켓, 달 탐사선인 L-3과는 다르다)이 발사된 것은 1969년 2월 21일 오후 3시 18분이었다. 그러나 발사 후 70초만에 모든 엔진이 다 꺼져 버렸고, 그로부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로켓은 지면에 추락해 산산 조각이 났다.

초기 데이터를 살펴보니 제12, 제24엔진이 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28개의 엔진을 더 오래 작동시켜서 빈틈을 메꾸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게 되지 않고 나머지 엔진들도 모두 다 꺼져 버린 것이다. 사고 조사의 초점은 KORD에 맞춰졌다. 조사 결과, 맨 처음에 KORD가 전기적 간섭으로 인해 신호를 잘못 보내 제12엔진을 꺼 버리고, 이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제24엔진도 끈 것이 밝혀졌다. 로켓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진동으로 인해 터보 펌프 내의 가스 압력 측정 파이프 및 제2엔진의 연료 압력 파이프가 깨져 나갔다. 이 때문에 뜨거운 케로신이 로켓 아래쪽으로 유입되었고, 제3, 제21, 제22, 제23, 제14엔진의 온도가 높아졌다. 그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고 전력 전달 케이블을 감싸고 있던 단열재가 이 화재로 망가졌다. KORD는 이를 터보 펌프 내의 파동으로 해석하고, 전 엔진에 강제 종료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블록 B와 V의 모든 엔진이 작동을 멈췄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해결하는 게 쉽다는 보장은 없다. 화재로 KORD가 잘못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설계상의 결함이 드러났지만, 이는 결코 고치기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조사팀에는 이 문제에 대해 외부에 함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소련이 미국의 유인 달 착륙보다 먼저 두 번째 N-1을 발사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기였음에도 말이다.


두 번째 실패
1969년 7월 4일 오전 2시 18분. N-1의 두 번째 발사가 실시되었다. 엔진들이 또 너무 일찍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KORD의 전선과 전달 케이블은 신형 단열재로 개별 포장되어,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막으려 했다. 또한 각 엔진에 더 많은 센서를 붙여 엔지니어들과 KORD에 더 많고 다양한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게끔 했다.

로켓은 상승을 시작했다. 그러나 발사 후 불과 10.5초가 지난 시점에 로켓 최후미에서 밝게 빛나는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로켓은 잠시 동안 제자리에 떠 있다가 기울면서 발사대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지면에 추락한 로켓은 여러 차례의 폭발을 연달아 일으키며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소련 우주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참사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 조사팀은 원격 측정 장치, 사진, 동영상 등을 분석해 로켓이 이륙하기 전부터 블록 A의 로켓 엔진 30개 모두가 점화되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액체 산소를 제8엔진에 공급해 주던 터보펌프가 발사 직전에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나머지 엔진들은 모두 정상 작동했으나, 고도 195m 상공에서 엔진들이 하나 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12초만에 제18엔진을 제외한 모든 엔진이 꺼져 버렸다. 엔진이 하나만 남았으니 로켓은 기울었고, 로켓은 옆구리부터 땅에 격돌했다. 이 때문에 충돌 시 폭발력이 더욱 커졌다.

제8엔진 터보 펌프 내의 이물질이 원인인 것 같았다. 이 때문에 폭발이 일어났고, 폭발은 다른 엔진으로 가는 피드라인을 손상시켜 화재를 유발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KORD에는 제7, 제19, 제20, 제21엔진의 압력과 터보펌프 회전이 위험할만큼 높아졌다는 신호가 전달되었다. 그래서 KORD는 이들 엔진을 껐다. 그리고 이후 제18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엔진을 껐다. 산소 센서 내의 이물질, 그리고 그로 인한 KORD의 잘못된 명령이 또 한 대의 N-1을 추락시킨 것이다.


달 탐사 경쟁 패배
소련이 두 번째 N-1 추락 사고의 잔해를 줍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던 동안,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행성간 탐사 임무에서 벗어나 달 탐사 임무에 투입되었던 N-1로켓은 이제 쓰일 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취소되지 않았다. 여러 개량이 가해지고, 국가 지도자들은 또다른 N-1 로켓을 발사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2년이 좀 넘게 지난 1971년 6월 27일, N-1 로켓이 3번째 발사되었다. 이번에는 저번 로켓들보다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횡전 안정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로서 로켓에 강한 우력이 가해졌고, 이 우력으로 블록 B가 대파되었다. 발사 후 51초가 지나자 KORD는 제1단의 엔진 30대를 모두 끄라고 지시했다. 로켓은 공중분해되어 추락했다. N-1의 마지막 발사는 1972년 11월 23일에 있었다. 발사 후 77초까지는 설계대로 정확히 움직였다. 이 로켓은 전의 어느 N-1보다도 높이 날아갔다. KORD는 발사 후 90초가 지나자 사전에 정해진 대로 중앙 클러스터의 엔진 6대를 껐다. 그러나 이후 14초가 더 지나자 블록 A의 후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임무는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이것이 N-1 프로그램의 마지막 발사가 되었다. 10여년 이상의 개발과정을 거치고, 유인 달 탐사 임무의 발사체로 8년 동안 최우선순위가 부여되었던 N-1 메가부스터 프로그램은 결국 1974년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의 결정으로 취소되었다.되었던 N-1 메가부스터 프로그램은 결국 1974년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의 결정으로 취소되었다.


스페이스 X에서 부활
최근 스페이스 X는 100명을 한꺼번에 화성으로 보내 식민지를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대한 임무에 투입될 로켓은 놀랍게도 N-1과 비슷한 구석이 여럿 있다. 제1단의 엔진 개수를 보라. 스페이스 X의 행성간 수송 체계(Interplanetary Transport System, ITS)는 이름의 뜻부터가 N-1의 첫 이름인 TMK와 같다. 게다가 제1단에는 42대의 엔진이 있다. 중앙에는 짐벌에 설치된 엔진 7대가 있고, 그 엔진들을 14대의 엔진이 원형으로 감싸고 있으며, 맨 바깥에는 다시 21대의 엔진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물론 N-1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중앙부의 짐벌은 N-1에는 없던 것이다. 그리고 이 로켓은 저지구궤도에 더 많은 짐을 올려놓을 수 있다. N-1의 추력이 95톤, 새턴 5호의 추력이 130톤인데 이 로켓의 추력은 606톤이나 된다. 그리고 수많은 엔진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중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들 엔진 중 한 두 개가 꺼져도 발사에 악영향을 줄만큼 추력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머지 엔진들이 더 오래 작동해 주면 추력은 충분히 보충된다.

그러나 물론 스페이스 X는 엔진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받아 제어하는 데 낡은 소련제 KORD 시스템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히 첫 임무에 지원해 탑승하는 100명의 승무원들은 스페이스 X가 N-1 로켓 시절보다 더욱 발전된 방식을 사용해 수많은 엔진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관리하기를 바랄 수밖에는 없다. 엔진이 42개면 뭔가 문제가 생겨 로켓이 추락할 여지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by Amy Shira Teitel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