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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진보도 구체적 성장모델이 필요하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변방 주지사 출신 빌 클린턴이 이라크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인기 절정이던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과 선거에서 맞붙었을 때 대부분 출중한 외교적 업적을 달성한 부시의 압도적 재선을 확신했다. 그때 클린턴은 “문제는 외교가 아니라 경제야, 바보야! (It’s economy, dummy!)”라는 구호로 단숨에 전장을 자신에게 유리한 경제로 바꾸면서 역전승했다. 불과 2주 남짓 남은 대선판에 또 다시 안보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간 이념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물론 국방과 안보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상대방에 타격을 입히려는 네거티브 전략이 판을 치는 선거운동 막바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유권자들은 보다 구체적인 정책비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안보를 제외하고는 이념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검증이 용이한 분야가 경제일 것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보수-진보간 경제정책의 차이를 꼼꼼히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모델이다. 최근 일각에서 대두되는 성장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적 사고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근시안적이고 위험한 태도이다. 수필가들이 감상적으로 던지는 화두인 멈추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이고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식의 사고는 정서적 안정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경제에는 위험천만이다. 기존 성장모델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적 재고찰은 당연히 필요하나 그것이 성장 자체가 나쁜 것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

기업경영이나 국가 경제에서 성장은 선택 사항이 아니며 항상 필수 요건이다. 외딴섬처럼 우리끼리만 살아가는 고립경제에서는 성장이 선택사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국가 경제는 다른 나라 경제들과 복잡하게 얽혀있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우리가 싫건 좋건 다른 나라들은 계속 성장을 추구하는데 우리만 성장을 멈추고 숨을 고르겠다고 하는 순간 그 자리에 정체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뒤로 후퇴하게 된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외치며 독자적 정치경제를 추구하다 붕괴된 것만 봐도 고립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두 번의 보수정부를 거친 현 시점에서 대부분의 대권후보들이 경제민주화 같은 진보적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성장의 결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지 그 자체가 성장모델은 아니다. 소득분배의 형평성 강화나 양극화 해소는 그 자체로 중요하고 당연히 추진해야 하나 경제민주화가 자동적으로 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반드시 별도의 성장모델이 필요하다.

진보는 성장 대신 분배를 강조한다는 고정관념은 틀린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과거 20세기 대표 대기업들이 대부분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것과 달리 현재 세계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은 거의 100%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진보와 성장은 상충관계가 아니다. 진보정당의 집권이 잦은 유럽을 봐도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성장을 추구한다. 단지 진보적 성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보수적 성장과 접근법이 다를 뿐이지 진보는 분배 그리고 보수는 성장이라는 이분법은 틀린 것이다.

진보적 성장은 진보의 핵심 가치인 사람, 공동체, 자유, 수평적 관계, 다양성 등을 성장으로 연결시키는 모델이다. 대량생산과 규모중심 양적 성장을 강조하던 20세기 산업사회형 경제는 수직적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적 가치와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시 창조적 혁신을 강조하는 21세기형 경제는 오히려 진보적 가치와 더 가깝다. 창조적 혁신은 시스템이나 기계가 대신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한다. 또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개방형 생태계 혁신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적 혁신에는 개인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더 효과적이다. 즉 혁신공동체기반 성장이나 사람중심 성장 등은 진보적 성장의 예다. 단순히 유행하는 경제민주화 구호의 반복을 넘어서 21세기 한국경제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진보적 성장모델을 제시하는 후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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