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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군산공장 폐쇄 한달] 공장·원룸 곳곳 매물…"돈 다 빼가고 문닫겠다니" GM 무책임 성토

<소룡동 공장 주변 가보니>

향토기업 아이에스테크 등

협력사들 줄줄이 회사 정리

2·3차업체 부도도 시간문제

"군산지역 車산업 생태계 공멸"

한국GM 협력업체들이 몰려 있는 GM 군산공장 인근 대우 삼거리에 지역 경제단체들이 내건 ‘GM 군산공장 정상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군산=서민우기자




지난 9일 오전 전북 군산시 소룡동의 한국GM 공장. 왕복 8차선 도로인 외항로에는 화물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로 양쪽에는 ‘GM 군산공장을 정상화하라’는 현수막들이 을씨년스럽게 내걸려 있었다.

한국GM에 납품할 자재들로 쌓여 있어야 할 공장 주변은 텅텅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수풀이 우거진 곳도 보였다. 공장 가동이 한 달째 중단되면서 대다수 협력업체는 경비 등 최소 인력만 남겨둔 채 공장 문을 걸어 잠갔다.

이곳에서 만난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한국GM 사태 장기화로 군산 지역 자동차부품 생태계가 공멸하고 있다”며 “시간이 없다”고 초조감을 나타냈다. 2차 협력업체의 한 임원은 “그나마 정상운영 중인 타타대우상용차 공장에 부품을 공급 중인 일부 협력업체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군산의 자동차부품 생태계는 거의 무너졌다”고 전했다. 부품 업계의 수직구조를 고려하면 2차·3차 협력업체들이 연쇄 부도를 맞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국GM 군산공장은 물론 협력업체들이 사지로 내몰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GM 본사가 2014년부터 유럽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한 데 이어 군산공장 폐쇄에 나선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는 성토의 목소리도 높았다. 본사의 고율 대출 이자, 외국인 임원들의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연구개발비 지원 등으로 돈을 다 빼가면서 군산공장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한국GM 군산공장의 2차 협력업체이자 타타대우상용차 1차 협력업체인 A사 관계자는 “2014년 GM 미국 본사가 유럽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면서 (군산) 협력업체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쉐보레 철수 때부터 공장 가동률이 20%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군산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GM본사는 한국GM에 고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돈을 챙겨갔고 임원들도 높은 연봉을 받아갔다”면서 “하지만 그동안의 위기 속에서도 버텨왔던 협력업체들의 희생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군산 1차 협력업체 중 최소 8~9곳 이상이 현재 폐업절차를 준비하거나 다른 지역 본사로 통폐합을 추진 중이라는 호소도 줄을 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3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처음으로 사업철수를 확정한 1차 협력업체도 나왔다.

대표적 향토기업인 아이에스테크는 이달 말께 군산공장 3곳을 모두 정리하기로 하고 5일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전북 김제공장도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회사 측은 “그동안 지속적인 경영악화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최근 갑작스러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사업의 지속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9일 오전 인천 소재의 한국GM 협력업체 공장에 싸늘함이 감돌고 있다. 기계에 붙은 ‘비가동’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인천=김연하기자


1차 협력업체 중 처음으로 공장폐쇄를 결정한 아이에스테크 본사 건물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이 회사는 인천이 본사인 다른 협력업체들과 달리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군산에서 성장해온 향토기업이다.

아이에스테크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연속 GM 선정 우수 협력업체상을 받았다. 그러나 2014년 쉐보레 유럽 철수 이후 물량감소와 공장폐쇄에 따른 경영난 앞에서 23년 역사를 자랑하는 알짜 중소기업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군산시민들이 느끼는 충격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아이에스테크 본사 인근 생산기술연구소에 마련된 임시 본사에는 소수 인력만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회사 임원은 “2014년 쉐보레 브랜드 철수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계속 줄었지만 버텨왔다”면서 “하지만 군산공장 폐쇄로 더 이상 회사를 경영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고 7곳에 달했던 2차 협력업체도 지금은 1개사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아이에스테크는 전북의 명문고인 남성고·남성여고를 운영하는 남성학원 관계사다. 2011년 한때 1,000억원에 육박했던 매출액은 2016년 말 기준 511억원으로 반 토막 났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매출액은 100억원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존립위기에 처하자 주유소·이발소·목욕탕·음식점 등 지역경제도 함께 얼어붙었다. 소룡동에서 한국GM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19년째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64)씨는 오후8시만 되면 주유소 문을 닫는다. 김씨는 “현대중공업이 떠난 데 이어 군산공장까지 문을 닫으면서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차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유령도시로 변한다”면서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기름을 팔면서 외환위기도 겪었고 자동차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것도 지켜봤다. 하지만 지금처럼 단지 전체가 활력을 잃고 고꾸라진 것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거주했던 소룡동과 오식도동은 빈 원룸 천지였다. 경매로 넘어간 원룸이나 급매물이 나오지만 수요가 없는 탓에 거래량은 사실상 ‘제로’다. 인근 공인중개사 김환홍씨는 “2년 전 현대중공업이 떠나면서 원룸촌의 입주율이 반 토막 났는데 최근 GM 군산공장까지 폐쇄한다고 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면서 “50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이지만 입주율은 40%대이며 공실률이 80%에 이르는 건물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단지 인근의 먹자골목 상인들도 울상이다. 점심시간임에도 거리에는 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룡동 먹자골목에서 7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하나(70)씨는 “손님은 없고 최저임금은 계속 오르고 더 이상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 남편과 주야 맞교대로 일을 한다”면서 “우리 부부가 힘든 것보다 군산 경제가 침체돼 있는 게 더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군산2국가산업단지 내 한 GM 협력업체의 텅빈 공장 앞마당. 예년 같으면 한국GM에 납품할 자재와 화물차량으로 가득했을 곳이다. /군산=서민우기자


9일 인천 부평GM 공장 인근에 GM군산공장 폐쇄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천=김연하기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인천 내 협력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인천·군산공장에서 부품을 만들어 GM 공장 전역에 납품하고 있는 B사는 GM 군산공장의 폐쇄로 전체 매출이 10~20% 줄었다. 군산공장은 현재 폐쇄절차를 밟으며 직원들을 인천 등 다른 지역의 공장으로 이전 배치하고 있다. B사 부대표는 “대리·과장급에 해당하는 20~30대 직원 5명가량이 회사를 떠났다”며 “자동차 협력업체는 이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전직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매출의 절반이 각각 한국GM과 글로벌GM에서 나온다는 C 업체의 한 직원은 “매년 말이면 인근의 호텔 뷔페에서 작게나마 송년회를 했는데 지난해는 1인당 3만원씩 부서회비를 지급한 것이 전부였다”며 “이처럼 실적 악화를 몸으로 느끼면서 지난해 말부터 자진 퇴사한 직원이 10여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한 편의점 직원은 “설 연휴 전과 비교해 GM 점퍼를 입은 고객의 수가 3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며 “특히 과거에는 최소 3~5명의 직원이 함께 방문하곤 했는데 이제는 혼자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GM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거주했던 오식도동 원룸촌 거리. 2년 전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폐쇄로 활력을 잃은 원룸촌은 GM 공장 폐쇄로 입주율이 40%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군산=서민우기자


군산 2산업단지 인근에 위치한 소룡동 먹자골목. 점심시간임에도 먹자골목을 찾는 근로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군산=서민우기자


한편 생존의 위기에 놓인 자동차부품 협력업체들은 8일 정부가 밝힌 지역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2,400억원 규모의 긴급자금지원대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당장 일거리가 없어 공장 문을 닫을 판인데 특별보증이나 대출 만기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수혜를 입을 영세 협력업체들은 많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군산 지역의 한 부품 업체 임원은 “지난해 10월부터 군산공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사실상 은행들이 협력업체들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거나 원금을 회수하는 등 여신 한도를 축소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시중은행들에 대출 만기를 권고한다고 한들 현장에 적용되려면 이미 기업들이 다 도산하고 난 뒤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부품 업계 관계자는 “군산 지역에서 그나마 정상 가동되는 타타대우상용차의 1차 협력업체의 경우에도 매출 일부가 한국GM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떨어진 사례가 있다”면서 “말로는 GM 협력업체들도 지원 대상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재무 상태가 건전한 일부 기업들만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군산 지역 협력업체들의 세금·사회보험료 체납 처분을 유예해주기로 했지만 일감이 없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체들 입장에서는 현장과 거리가 먼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산의 한 협력사 대표는 “공장 문을 닫고 매물로 내놓아도 수요가 없어 팔리지 않는 상황인데 은행 대출이자는 계속 나가고 있다”면서 “이런 와중에 한전 직원들이 밀린 전기료를 독촉하고 다닌다. 한쪽으로는 전기료를 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금 체납을 유예해준다고 하니 누구 말을 믿어야 하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인천 소재 협력업체의 한 임원은 “우린 지금 일거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융자를 한들 뭐하겠느냐”며 “굶어 죽는 사람 앞에서 ‘어떤 옷을 입을래’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부품 업체가 살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임기응변식 금융 지원만 들어가 있다”면서 “국내외 대체부품 시장을 만들어 수요 창출을 하거나 전속거래 고리를 끊는 등 근본적인 방향 설정에 대한 대책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군산=서민우기자 인천=김연하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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