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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족쇄부터 풀어라]드론·수소차 '규제 포비아'에 싹 못틔워...국내 투자 발빼는 기업

<4>기업 떠나게 만드는 규제

까다로운 비행 허가로 산업용 드론 활성화 꿈도 못꿔

수소차는 충전소 규제 탓 후발주자 日에 주도권 뺏겨

결합신고의무화 추진에 스타트업 M&A도 위축 우려

"4차 산업혁명 시대...포지티브식 규제론 안돼" 지적





세계 최대의 차량공유 업체인 ‘우버’는 최근 오는 2021년까지 드론을 활용한 음식배달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우버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드론을 활용한 배송 서비스 ‘프라임에어’를 선보였으며 구글도 ‘프로젝트윙’을 통해 드론을 기존 산업과 연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틸그룹에 따르면 전 세계 민수용 드론 시장 규모는 지난 2016년 26억2,000만달러에 그쳤으나 2025년에는 108억7,000만달러로 네 배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도 미래 먹거리인 드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눈길을 끈다. 중국은 2009년 국가 차원에서 드론 관련 지침을 마련해 일찌감치 드론 산업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중국 업체 DJI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각국은 4차 산업혁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산업 전반에 걸쳐 혁신과 변화가 가속화되는 틈을 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인 규제완화로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은 그간 경제를 지탱했던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들이 성장한계에 직면하면서 신성장동력 발굴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의 규제는 이 같은 시대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드론 산업만 하더라도 각종 규제들로 인해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까다로운 비행허가 절차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가 주요 시설과 비행장을 중심으로 9.3㎞ 이내에서는 드론을 날릴 수 없도록 돼 있어 서울 거의 전 지역이 비행금지구역이나 비행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심지어 야간에는 특별비행승인 없이는 아예 비행 자체가 금지돼 있다. 드론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 자체가 제한받고 있는 환경이다.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소차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2013년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수소 완성차(투싼ⅸ)를 선보이는 등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수소차 시장을 선점했지만 지금은 경쟁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현재 한국에서 운행 중인 수소차는 500대가 채 되지 않지만 현대차보다 기술개발이 늦었던 일본 도요타의 ‘미라이’는 지난해까지 4,000대 이상 팔렸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 중 하나는 까다로운 수소충전소 규제에 있다. 국내에서 수소충전소는 고압가스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파트와 놀이터·의료시설로부터 50m, 학교에서 2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 이렇다 보니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10여곳에 불과하다.

다양한 산업에 접목될 수 있는 빅데이터 분야도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기업의 빅데이터 활용 비중에 따르면 한국은 4%로 꼴찌 수준이다. 1위를 기록한 네덜란드(19%)는 물론 영국·핀란드·프랑스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10%를 웃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의 빅데이터 활용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모호한 규제에 있다. 한국은 성명ㆍ주민등록번호ㆍ영상뿐만 아니라 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는 정보까지 개인정보로 규정하는 등 규제가 모호하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11월에는 현대자동차·SK텔레콤 등 기업들이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도 시민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들의 창업 동기를 약화시키는 점도 문제다. 앞으로 대기업이 매출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인수가액이 많으면 기업결합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유망한 스트타업에 대한 대기업의 인수합병(M&A)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결합신고에 부담을 느낀 대기업이 유망 기업 인수에 선뜻 나서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처럼 신생 스타트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국가들은 대부분 M&A 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스타트업 창업을 자극하고 있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서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 투자액은 74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동남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에 지금까지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카넥스트도어’, 인도의 ‘레브’, 미국의 ‘미고’ 등 글로벌 차량공유 업체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또한 SK와 삼성도 그랩에 투자하거나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으며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도 첫 투자처로 그랩을 선택했다. 이처럼 기업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모빌리티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해외에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오히려 투자를 거둬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에 카풀 업체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으나 택시 업계의 반발과 규제 때문에 올해 초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기업인들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담을 그릇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며 쓴소리를 했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도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산업 트렌드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한국은 기본적으로 사업 가능한 항목을 열거하고 이외의 행위를 규제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이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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