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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한국 근현대인물화 전시회 개막

103년전 서양화 기법 누드화서

김환기·천경자 등 거장 작품까지

인물화 통한 시대 변천사 감상

배운성이 1930~35년 무렵 그린 ‘가족도’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때는 1916년 10월. 평양 출신의 김관호가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에 이어 두 번째로 도쿄예술대학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 최고 권위의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했기에 ‘매일신보’ 등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평양의 능라도 부근을 배경으로 두 여인이 냇물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작가 인터뷰는 실렸지만 정작 그림은 빠졌다. 대신 기사 중간에 “전람회에 진열된 김군(김관호)의 그림은 여인의 벌거벗은 그림인 고로 사진으로 게재치 못함”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103년 전, 인물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와 입장이 그랬다.

김관호 1916년 ‘해질녘’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서양화 기법으로 그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해질녘’이 전시장에 걸렸다.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 본관과 신관인 갤러리현대에서 18일 개막한 한국 근현대인물화 전시인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에서다. 고희동이 그린 ‘자화상’을 시작으로 54명 화가의 인물 그림으로만 71점을 모아 근현대 한국미술사 100년여를 꿰뚫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적 상업화랑으로 내년에 50주년을 맞는 현대화랑이 축적된 역량을 총동원해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모았고 ‘미술관급 전시’로 구성했다. 미술평론가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근대미술 분야의 전문가인 미술사학자 최열·조은정·목수현이 전시 자문으로 참여했고 현대화랑의 창업주 박명자 회장이 머리를 맞댔다.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 전경. 김관호의 ‘해질녘’(왼쪽부터)과 고희동, 김관호, 이종우, 오지호, 김용준의 자화상이 걸렸다. 이들 6점은 모두 일본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소장품이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시대순으로 작품을 보려면 현대화랑 1,2층에 이어 갤러리현대 1,2층과 지하전시장을 방문하면 된다. 화제작 ‘해질녘’은 김관호의 출신학교인 도쿄예대 미술관의 소장품이다. 그 옆에 나란히 걸린 고희동의 1915년작 ‘자화상’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화가가 푸른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자신을 그려 당당함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김관호·이종우·오지호·김용준의 자화상까지 총 6점이 도쿄예대에서 빌려온 작품들이다. 한국의 1세대 서양화 유학파 화가들이 갤러리에서 그림으로나마 얼굴 맞대기는 처음이다. 자화상들은 근대적 미술가로 화가가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정체성 문제와 각자의 개성있는 화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인성의 1934년작 ‘가을 어느 날’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조선의 지보(至寶)’로 일본에까지 이름을 날린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은 일제강점기의 조국 산천을 붉은 땅, 벗은 사람, 타 들어가는 식물 등으로 표현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적으로 숨겨두고 있다. 독일로 가 그림을 공부한 배운성의 ‘가족도’는 화가가 더부살이했던 부잣집을 배경으로 한국의 대가족을 그린 독특한 작품이다. 당시의 가족구성과 복식,주거 등을 보여줘 등록문화재 534호로 지정됐다. 이쾌대의 19458년작 ‘군상Ⅲ’은 해방의 기쁨과 좌우로 나뉜 이념갈등이 뒤섞인 상황에서 희망을 타진한다. 이쾌대의 ‘군상’ 연작 4점 중 전시로 공개되는 일이 유독 적었던 그림이라 더 눈길을 끈다.

이쾌대의 1948년작 ‘군상3’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인물화의 변화를 따라 시대 변천사를 더듬는 게 묘미다.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한 오지호가 1936년에 그린 ‘아내의 상’은 치마저고리를 갖춰 입은 전통적인 현모양처를 보여주고, 마주 걸린 이응노의 수묵담채화 ‘거리풍경-양색시’는 몸에 찰싹 붙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대로를 활보하는 여인들과 이들을 훔쳐보는 주변 사람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국민화가’ 박수근의 아이 업은 누이와 젖 먹이는 엄마, ‘천재화가’ 이중섭의 가족도를 비롯해 ‘득도한 화가’ 장욱진의 그림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인물화는 총망라했다. 새롭게 발굴돼 나혜석의 것으로 확인된 ‘비구니’도 살펴볼 만하다.

이응노의 ‘거리풍경-양색시’(왼쪽)와 오지호의 ‘아내의 상’




김환기 1951년작 ‘항아리와 여인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신관인 갤러리현대에서는 김환기의 ‘항아리와 여인들’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등 정감있는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여성 인물화를 많이 그린 천경자의 대표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과 열정의 화가 김흥수의 ’길동무’ ‘여인’ 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인물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천경자 1978년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손상기의 1982년작 ‘공작도시-취녀’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무녀를 그린 박생광의 ‘여인과 민속’과 벌거벗은 채 축 늘어진 여성을 그린 손상기의 ‘공작도시-취녀’는 1980년대 초 비슷한 시기에 그려져 급격한 근대화·도시화 속에 우리가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지하 1층은 이처럼 시대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 소위 ‘민중미술’로 채웠다. 목판화로 유명한 오윤이 드물게 남긴 유화 ‘비천’은 동료 예술가의 초상화로 그려 선물한 사연이 전한다. 광부의 삶을 몸소 체험한 황재형, 농민 속으로 들어간 이종구·노원희·임옥상의 그림이 선보였다. 핑크빛에 온몸이 잠긴 최민화의 ‘식사’는 우리네 자화상이고 홍성담의 ‘봉선화’는 아직도 풀지 못한 역사의 숙제를 이야기 한다. 참여작가 중 막내인 1957년생 정종미의 ‘보자기 부인’은 역사의 연장선 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낸 현대적 인물상을 보여준다.

정종미 2008년작 ‘보자기 부인’


박명자 회장은 “갤러리현대의 개관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전시가 한국 구상회화의 가치를 재발견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중요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5,000원이며 내년 3월 1일까지인 전시 기간 중 매일 오후 3시에 도슨트 작품설명이 마련돼 있다. 오는 20일 유홍준을 시작으로 1월10일 목수현, 31일 조은정, 2월14일 최열의 특강이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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