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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가 반도체 사업을 계속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양철민의 인더스트리]

LG그룹, 1999년 '빅딜'로 현대전자에 LG반도체 넘겨

하이닉스, 2000년 불황으로 4년간 10조원의 누적순손실 기록

2011년 SK에 인수된 후 '황금 알 낳는 거위'로 탈바꿈

LG는 지주사전환·계열분리 완료하고 전기차배터리 1위 등극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LG 위상 달라졌을 것 vs LG그룹 위태했을 것' 엇갈려





지난 1990년대 후반 국내 산업계에 불어닥쳤던 이른바 ‘빅딜’ 당시 LG(003550)가 현대의 반도체 사업을 인수했다면, LG그룹의 위상은 지금보다 한층 높아졌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SK하이닉스(000660)가 3년 7개월만에 코스피 시가총액 2위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LG반도체·현대전자 등과 관련된 SK(034730)하이닉스의 과거가 다시금 회자되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LG가 현대전자를 인수했으면 현재 삼성전자(005930)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나온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당시 재계 빅딜을 주도했던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을 정도로 반도체는 LG그룹 내에서 아쉬움이 큰 분야다. LG가 연간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 반도체 설비투자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자칫 LG그룹 전체가 흔들렸을 것이란 분석도 꽤나 제기된다.

물론 LG로서는 당시 빅딜로 얻은 것도 꽤 있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으로 불리는 반도체 산업에서 손을 뗀 대신 지주사 전환 및 GS(078930)그룹과의 계열분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또 화학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현재 글로벌 1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LG화학(051910)을 키워내는 등 미래산업에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다.

다만 LG그룹은 LG전자(066570) 생활가전 부문 및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 외에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다는 점이 두고두고 아픈 부분이다. LG그룹의 이들 주력 사업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독과점 하고 있는 D램 시장 만큼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LG그룹이 삼성이나 SK그룹 대비 한층 보수적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도체 포트폴리오’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빅딜'로 시끄러웠던.. 1998년 어느 가을날
LG그룹 역사의 중요 분기점이었던 22년전으로 돌아가보자.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미국 컨설팅 업체인 ‘아서D리틀(ADL)’의 보고서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발주한 ‘반도체 빅딜’ 관련 보고서에서 아서D리틀은 현대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LG와 현대 측은 반도체 사업 인수 정당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현대전자는 보고서 결과 외에도 자신들이 LG반도체를 인수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현대전자 측은 △1997년말 기준 현대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이 9.0%로 LG반도체의 6.7%보다 앞서 있다는 점 △일본 히타치 기술에 의존하는 LG반도체와 달리 현대전자는 상당 수준의 독자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점을 각각 주요 인수 근거로 들었다.

지난 1986년 당시 현대전자 이천 공장 정문 모습.


반면 LG 측은 현대 대비 훨씬 다양한 논거를 든다. LG 측은 △전자, 통신, 가전을 주축으로 하는 LG그룹으로서는 전자산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가 전략적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점 △D램 시장 점유율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물량이 제외돼 있어 실제 점유율은 LG반도체(13.6%)가 현대전자(10.7%)를 앞선다는 점 △반도체 부문 매출은 증권거래소 공시 기준 LG반도체는 2조100억원, 현대전자는 1조8,200억원으로 LG가 더 많다는 점 △LG반도체는 초고속램버스D램 등에서 세계최고 기술력을 인텔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무엇보다 당시 현대전자의 부채는 11조원으로 부채 비율이 935%에 달한 반면, LG반도체는 부채가 7조원으로 부채비율이 617% 수준에 불과했다. 이 같은 LG그룹의 상황 때문에 당시 국민의 정부 대북사업에 적극적이던 현대를 밀어주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LG그룹을 내쳤다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반도체 사업 부재는 두고두고 LG그룹 미래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LG그룹이 스마트폰 부문에서 성과를 못내는 이유로 ‘스마트폰 전환기’ 당시 경영진의 ‘피쳐폰 고집’외에 반도체 사업 부재를 꼽기도 한다. 실제 LG전자 MC 사업부는 지난 2015년 퀄컴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스냅드래곤810’ 발열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설계하고 파운드리사업부에서 생산하는 AP ‘엑시노스’ 덕분에 스냅드래곤 발열 사태 당시 되레 AP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렸다.

'램버스 사태'로 어차피 LG반도체는 아니였다고? "That's NO!"


일각에서는 LG반도체가 출시 몇년만에 실패로 끝난 ‘램버스 D램’에 당시 집중해, 현대전자가 LG반도체 인수로 오히려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실제 현대전자의 당시 주력이던 ‘S(싱크로너스)D램’은 이후 DDR2·3·4·5 등으로 업그레이드 되며 현재 D램 시장의 확실한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이러한 지적은 ‘램버스 D램’ 관련 손실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 반면 ‘반도체 치킨게임’ 과 같은 핵심 요인의 영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기 때문에 나온 단편적 시각에 불과하다.

램버스D램


1990년대로 돌아가보면 LG반도체는 지난 1998년 64M 다이렉트 램버스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램버스D램의 절대강자였다. D램 시장의 후발업체였던 LG반도체는 지난 1994년 미국 램버스사의 초고속 D램 설계 기초 기술을 채택하며 삼성전자와 NEC 등 선두 업체를 빠르게 따라잡으려 했다. 1997년 당시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18.8%), NEC(12.1%), 현대전자(9%), 히타치(8.2%), 마이크론(7.9%), LG반도체(6.7%) 순이었다.

특히 지난 1998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표준을 주도했던 인텔이 펜티엄3 후기모델에 램버스D램을 채택하며 램버스D램 ‘대세론’이 일기도 했다. LG 측은 지난 1999년 빅딜 반대 이유로 “LG반도체는 차세대 메모리인 초고속램버스D램 등에서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인텔사로부터 인정받는 등 기술력에서 뒤지지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램버스D램 기술 우위를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램버스 D램이 DDR SD램 대비 성능은 뛰어났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던데다 발열이 심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지난 2001년 램버스D램을 탑재한 펜티엄4가 판매 부진을 겪었으며 인텔은 결국 램버스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지난 2003년 램버스D램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인텔의 램버스D램 지원 포기는 당시 하이닉스 뿐 아니라 삼성전자, 엘피다메모리, 마이크론 등에 큰 손실을 끼쳤다. 실제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인수하기 전인 지난 1998년 9월, 72M 램버스 D램과 64M DDR D램 개발 소식을 동시에 알리며 ‘투트랙’ 전략을 펼쳤으며 삼성전자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반 하이닉스의 경영난은 시장 규모 대비 지나치게 많은 D램 업체 난립에 따른 반도체 가격 하락이 더 큰 문제였다. 반도체 업체들의 공급량 확대로 64Mb당 D램 가격은 지난 1999년 10월 20달러 수준에서 2001년 2월 3.8달러까지 폭락했으며 몇달 뒤에는 9.11테러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한다.

이 같은 이유로 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2000년 2조4,86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2001년(-5조740억원), 2002년(-1조7,772억원), 2003년(-2조3,131억원) 등 4년간 누적 당기순손실 규모만 10조5,000억원에 달했다. 히타치와 NEC의 반도체 사업부가 합쳐져 탄생한 엘피다메모리 등도 당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으며 현재 D램 업계 3위인 마이크론도 마찬가지다. 12인치 웨이퍼 선제 도입 등 원가경쟁력 확보에 주력했던 삼성전자만이 지난 2002년 3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으며, 이후 확고한 1위 사업자로서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하이닉스는 이후 중국 업체가 인수를 타진하는 등 어려움을 겪지만 지난 2011년 SK그룹에 인수되며 사명을 지금의 ‘SK하이닉스’로 바꾼다. 특히 LG그룹과 현대그룹 출신 개발자들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9년과 2012년 불어닥쳤던 ‘반도체 치킨게임’을 이겨내며 SK그룹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한다.

물론 LG그룹이 현대전자를 인수했다고 해서 지금의 SK하이닉스를 뛰어넘는 회사가 됐을 것이란 가정은 무의미 하다. 오히려 반도체 부문 손실을 메우기 위해 그룹사 차원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다가 이를 이겨내지 못해, LG 그룹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LG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인 배터리.


LG그룹은 실리콘웍스와 같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를 육성하며 아직 반도체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있지만 미국과 대만, 그리고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팹리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상황이다. LG전자는 자사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D램과 낸드플래시 외에 일부 이미지센서를 SK하이닉스로부터 공급받는 등 LG반도체 시절 인연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반면 LG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올해 중국 CATL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라서고 올 2·4분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등 ‘포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반도체 잃은 대신 지주사 전환 완성한 LG그룹


LG도 분명히 얻은 것은 있다. LG는 반도체 산업에서 손을 뗀 덕분에 지난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지주사 체제 전환에 성공한다. LG화학은 지난 2001년 4월 화학 지주사 LGCI와 사업회사 LG화학·LG생활건강으로 사업을 분리했으며, LG전자 또한 전자 지주사 LGEI와 사업회사 LG전자로 분리했다. 이후 2003년 화학과 전자 지주사인 LGCI와 LGEI가 합쳐져 ㈜LG로 사명을 바꾸며 현재의 지주사 체제를 확립한다.

이 같은 조기 지주사 전환은 여타 그룹의 현 상황과 비교하면 나름 ‘신의 한수’로 평가 받는다. LG그룹은 이른바 ‘소버린 사태’로 경영권 박탈 위기까지 몰린 후 현재의 지주사 체제를 확립한 SK그룹이나 ‘형제의 난’과 관련한 각종 고초를 겪은 후 지주사 체제를 완성한 롯데그룹과 비교해 잡음이나 불필요한 비용 지출이 사실상 없었다. 무엇보다 지주사 체제를 만들지 못해 경영승계 문제 등으로 검찰에 발목이 잡힌 삼성그룹이나, 불완전한 지주사 체제 때문에 향후 지주사 구조 완성과 관련한 각종 시나리오가 나도는 한화그룹과 비교하면 LG그룹은 관련 리스크가 사실상 없다. LG그룹을 공동 경영하던 허씨 일가와의 계열분리도 2005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물론 LG는 지주사 전환에 따른 자금 소요 및 상호출자불가 등의 법적 제한 때문에 2000년대 후반 하이닉스가 매물로 나왔을 당시, 인수전에 참여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경제 활성화로 글로벌 산업계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는 점에서 LG 입장에서 다소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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