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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생색과 생색내기

정준모 한국미술품 감정연구센터 대표

정준모 한국미술품 감정연구센터 대표




생색은 ‘다른 이 앞에 당당히 나서거나 자랑할 수 있는 체면’을 뜻한다. 생색내기는 ‘당당히 나서는 것’은 같으나 자랑이 ‘지나칠 때’를 말한다. 새삼 이 말을 떠올린 것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소장한 문화재·미술품을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몇몇 지방 미술관에 기증한 1주년을 기리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보면서였다.

‘생색’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친 것은 기증한 유족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한없이 겸손한 데 반해 기증받은 정부의 장관은 기증받은 일을 고맙게 여기고 이를 잘 연구·보존하겠다고 다짐하기는커녕 기증받은 일이 자신의 업적인 양 내세우는 모양새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당시 문화부 장관과 양 기관의 장은 그때 그 자리에 있어서 수증한 것이지 개인을 보고 기증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 한들 유가족들이 기증을 하지 않았을까.

‘산업보국’에 이은 ‘문화보국’을 꿈꿨던 컬렉션의 시조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의 유지를 받든 유족의 큰 결단으로 가능한 일었다.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은 마치 자신 또는 정부의 업적처럼 생색내기에 바빴다. 총 1만 1023건, 2만 3181점의 기증품은 ‘건’ 수는 빼고 ‘점’ 수만 강조됐다. 기증품의 시대, 유형, 재료별 숫자는 겉어림으로도 헤아리지 않고 16종이나 되는 기증품을 한곳에 모아 19세기 말 미국에서 유행한 백과사전식 ‘이건희 기증관’을 설립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관은 각각 기증받은 문화재·미술품을 즉각 ‘기증관’에 내놓겠다고 천명했다.



그 후 미술관은 조사, 연구, 작품 상태 조사는 물론 최소한 클리닝도 생략한 채 경매사의 메이저 세일 같은 “유명 작가의 비싼 작품”으로 맥락 없는 전시를 급하게 열어 기증품을 홀대했다. 다른 이의 서명이 든 작품이 전시되고 이를 지적하자 모르쇠로 일관하며 장장 11개월을 전시했다. 그리고 작품은 3~6개월 전시 후 1년 이상 휴식해야 한다는 박물관학의 기본을 무시하고 작품 점검 시 문제없다고 판단해 3~4개월을 더 전시한다고 하더니 언론의 지적이 있자 슬그머니 철수했다. 문제가 없다더니 왜 떼어냈을까.

기증관 건립을 위해서는 모든 기증작을 내놓겠다더니 기증품 중 도자기만 가지고 ‘도자미술관’을, 빈 청와대를 채울 시각 문화 중심 공간에 기증작과 청와대 소장품, 국립현대의 근대미술을 모아 ‘근대미술관’을 세우자는 일에는 왜 안 된다는 것일까.

단군 이래 처음인 이번 기증은 생색내는 일로 소비하기는 아까운, 너무도 귀하고 고마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잘 활용하는 예우 방법을 찾아보자. 각각의 기증품을 분산해 의미 있는 전문 미술관을 개관하는 계기로 삼아 역사의 빈 곳을 메꾼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우와 격에 맞는 활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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