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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묘역 참배한 전두환 손자…옷 벗어 묘비 닦았다

전우원 씨, 전 씨 일가 최초로 광주 찾아 사과

5·18 유가족 오월어머니 만나 무릎꿇고 큰절

유가족들 "참배하는 모습 보니 가슴 찡해"

전 씨, 5·18기념공간서 탄환 등 둘러보기도

"너무 당연한 증거…할아버지가 발뺌해"

지난달 31일 전우원 씨가 5·18민주묘지에서 자신의 겉옷으로 희생자의 묘비를 닦고 있다. 광주=박신원 기자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전날 광주에 방문해 “가족들을 대신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5월 영령과 유족·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전 전 대통령 일가에서 전 씨가 처음이다. 5·18 유족들은 43년 만에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과 하겠다며 광주를 찾은 전 씨에게 “광주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횃불”이라며 환대와 감사, 안쓰러움 등 복합적인 마음을 눈물과 포옹으로 전했다.

그간 전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순자 씨 등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해 사죄의 의사를 밝힌 바 없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1980년 5월 광주 학살에 대한 참회나 인정을 하지 않았다. 언론 탄압을 비롯해 삼청교육대,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주의 말살, 인권유린, 노동운동 탄압, 간첩단 조작 사건,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과오에 대해 유감의 표시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망했다.

이순자씨는 과거 전 전 대통령의 재판 출석을 앞두고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라고 발언해 5·18 관련 단체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씨는 지난 2019년 인터넷 매체 ‘뉴스타운’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전 씨는 전날 민주묘지에 들어서기에 앞서 방명록에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적으며 할머니 이 씨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지난달 31일 광주 ‘전일빌딩245’ 내에 위치한 5·18기념관을 방문한 전우원 씨가 천장에 걸린 탄환을 바라보고 있다. 광주=박신원 기자


전 씨는 또 전날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면담 자리에서 “5·18은 있어서는 안 되는 대학살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주범은 누구도 아닌 저의 할아버지 전두환 씨라고 생각한다”며 1980년 5월 18일을 규정했다. 전 씨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고 유가족들에게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5·18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의 비석과 영정사진을 자신의 겉옷으로 정성껏 닦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5·18 유가족인 오월어머니회 회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전 씨는 “제게 돌을 던지셔도 할 말이 없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전 씨는 이 자리에 참석한 5·18 희생자 어머니들에게 한 명 한 명 절을 하고 악수했다.



전우원 씨가 31일 오후 전남도청에서 5·18 희생자의 유가족인 오월 어머니회 회원들을 만나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박신원 기자


전 씨는 5·18 민주화운동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을 방문했고, 이후 ‘전일빌딩245’ 내에 위치한 5·18기념공간을 둘러봤다. 이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방부·법원의 감정·조사를 통해 헬기 사격 탄흔 270개가 발견된 5·18사적지다. 전 씨는 천장에 전시된 실탄을 바라보고 서서 “이 실탄은 광주 시민을 향해 쐈던 것이다. 43년 전에 광주가 겪었던 공포와 절망의 탄알이다. 지금도 5·18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탄알”이라는 해설가의 설명을 들었다. 기념공간을 둘러보고 나온 전 씨는 “너무 당연한 (헬기 사격) 증거인데 할아버지가 발뺌을 했다”고 말했다.

전우원 씨가 31일 오후 광주 ‘전일빌딩245’ 내에 위치한 5·18기념공간에서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박신원 기자


전 씨를 맞이하는 광주 시민과 5·18 유족들은 전 씨를 두 팔 벌려 환대했다. 전 씨는 전날 오전 12시께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오월어머니를 만나는 등 일정을 추가로 마련했다. 전남도청에서 전 씨를 만난 오월어머니들은 “이 용기가 죽을 때까지 광주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횃불이다 생각할 테니 열심히 해달라”며 전 씨에게 큰 박수를 수차례 쳐주기도 했다.

한 유족은 “2묘역에 위치한 제 남편 묘역에 가서 옷으로 닦았더라고요. 할아버지가 그때 사형을 언도 받을 정도로 수괴가 되어 돌아가셨는데 우원 씨가 옷으로 닦고 참배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들이 양심선언 하기를 바라고 있다.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뒤에서 어머니들이 도와드릴 테니 힘 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 5·18민주묘지에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가 전우원 씨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광주=박신원 기자


이날 전 씨가 향하는 곳곳마다 전 씨를 향한 광주 시민들의 응원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시민들은 전 씨에게 “전우원 씨 힘 내요”, “새로운 횃불이 되어주세요”라고 외쳤다. 전 씨는 “못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고 (5·18은) 자라오면서 가족들이 항상 피하던 주제고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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