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첫 번째 무역 협상 타결국은 영국이었다. 특히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미국이 선을 그었던 자동차 품목 관세와 관련, 미국이 영국산 자동차 관세를 10%로 낮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한미 무역협상에서도 자동차 관세 인하에 대한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영국과 무역합의안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미국이 레인지로버 등 영국산 자동차 수입 관세를 10%로 낮추기로 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몇 달 안에 포괄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하기에 앞서 12개월 간의 '임시 조치' 일환으로 이 같은 방안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래프는 "영국 자동차 업체에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10만 대의 할당량(쿼터)가 부여될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영국은 미국에 10만 대가 조금 넘는 자동차를 수출했다. 이를 종합하면 10만대까지는 10%의 관세가 부과되고 그 이상 물량에는 25%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품목관세를 매기자 재규어 랜드로버는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영국 자동차 산업 해외 매출의 약 17%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에 고급차를 주로 수출한다. 지난해 약 75억 파운드(약 13조 9000억원) 상당을 수출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도 자동차·철강 등에 대한 쿼터제를 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됐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쇠고기 수입 및 수출에 대한 관세를 거의 0%로 낮추기로 했다. 다만 영국은 호르몬 처리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미국이 영국산 쇠고기에 부과하는 관세는 부위와 품질에 따라 4~26%다. 반면 영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최대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지난달 상호관세 부과 후 수십 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큰 진전이 될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스라엘, 인도와 합의에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 일본, 대만 등과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국과 무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첫 번째 무역 합의 소식은 주요국과의 협상 속도를 내는 데 상당한 동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퍼듀 주중대사 선서식 행사에서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145%의 관세를 철회하는 것에 개방적인 입장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미국이 협상을 위해 먼저 움직였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그들(중국)이 돌아가서 자기들 파일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일축했다.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의 본격적인 무역 협상에 앞서 기싸움을 본격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마련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인 ‘AI 확산 프레임워크’를 폐기할 방침이라고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이날 밝혔다. 바이든 정권 말기인 올 1월 발표된 것으로, 전 세계를 한국을 비롯한 동맹 및 파트너국, 일반 국가, 중국 등 우려 국가로 나눠 미국산 AI 반도체 등의 수출에 차별적 제한을 둔 정책이다. 당초 이달 15일 발효될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폐기하고 새 규칙을 마련 중이다. 중국으로 미국산 반도체를 우회 수출하는 곳으로 의심받는 말레이시아·태국 등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해 대(對)중국 AI 반도체 수출통제 고삐를 바짝 죄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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