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진실

SPECIAL ISSUE

지난 9월 말 전 세계 물리학계, 아니 전 세계가 한바탕 술렁였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의 중성미자(neutrino) 관측 프로젝트인 ‘오페라(OPERA) 실험’에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게 이동한 것이 발견된 것.

이는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정면 배치되는 결과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현대물리학의 근간은 밑바닥에서부터 완전히 흔들릴 수 있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오페라 실험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자 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들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각 언론 매체에서는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뒤집고 상상 속 시간여행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극적 관측들을 잇달아 쏟아냈다. 마치 영화 ‘백 투더 퓨처’의 현실화가 머지않은 듯한 분위기였다.

실험 결과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고자 10월 초 경상대 고에너지 물리연구팀의 윤천실 박사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이탈리아, 일본 등 총 11개국의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인 오페라 실험의 한국팀 대표다. 하지만 윤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했다.

“이번 결과는 반드시 다음 실험에 의해 검증돼야 합니다. 지금은 단지 추후 실험들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때예요.”

이에 이번 기사는 어떤 결과를 예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중성미자의 존재를 알리고 그에 얽힌 흥미로운 발견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득한 끝에 겨우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윤 박사는 이번 결과와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언급했다.

빛보다 빠른 물질

지난 9월 23일의 발표 내용은 대략 이렇다. CERN의 거대 강입자가속기(LHC)에서 730㎞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 사소 실험실까지 중성미자를 발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성미자가 광속(초당 29만9,792㎞)보다 60나노초(1억분의 6초) 먼저 이탈리아 실험실에 도착했다. 빛보다 약 5만분의 1배 정도 빠른 속도를 보인 것이다.

오페라 연구진이 밝혔듯 이번 실험에서 나타난 중성미자 이동시간은 GPS와 세슘 원자시계를 통해 10나노초 미만까지 정밀히 측정됐다. 거리 측정 오차는 약 20㎝에 불과하다.

여기에 대해 윤 박사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LHC와 그란 사소 실험실 양쪽 끝에 똑같은 GPS 수신기와 세슘 원자시계를 각각 설치, 하나의 GPS 신호를 두 곳에서 동시에 받도록 했다는 것. 또 LHC에서 펄스모양(pulse shape)의 양성자에 대한 미세 구조를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해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에 걸린 시간을 한층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고.

“사실 4년 전 미국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미노스 (MINOS) 실험에서도 중성미자 속력을 측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결과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른 것으로 나왔는데 오차가 100나노초 정도로 컸고, 중성미자 반응수는 500개 미만으로 적어서 신뢰도가 낮았어요. 하지만 이번 오페라 실험은 달라요. 총 1만6,111개의 중성미자를 사용했고 거리와 시간을 보다 정밀하게 측정했거든요. 미노스 실험보다 오차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유령 입자
중성미자는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면적에 초당 10조개가 스쳐 지나갈 만큼 많다. 하지만 ‘유령입자’라는 별칭처럼 검출기가 잡아낼 수 있는 중성미자 수는 하루에 단 몇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지하듯 학계에서는 대체로 이 같은 결과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사무엘팅 박사 등 일부 학자들이 지지를 보내고는 있지만 아직은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초 오페라 연구진도 후속 실험을 통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으며 현재 내부적으로 후속 실험의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윤 박사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계통오차(systematic error)의 가능성을 찾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윤 박사에 따르면, 미국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미노스 실험에서도 이미 재측정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미노스는 중성미자를 일리노이주 바타비아에서 미네소타주 수단 광산으로 발사한다. 이동 거리는 730㎞로, 오페라 실험과 같다.

이런 실험은 통상 빨라도 6개월에서 1년 정도 후에 그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일단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다수 학자들의 의견이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결과가 충분히 현실 가능한 현상이라고 믿는 윤 박사 역시 이에 동의한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른 것이 확증되면 우주론과 소립자물리학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시간여행도 가능?

물론 이번 결과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노스 실험에서도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을뿐더러 이미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몇몇 이론이 존재한다. 때문에 오페라 실험 결과를 미리 예견하고 기다리고 있던 이론 물리학자들도 일부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한 예로 윤 박사는 ‘M-이론’을 거론했다. M-이론의 ‘M’은 막(membrane)의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M-이론에 의하면 중성미자는 막과 막 사이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속력이 당연히 빛보다 빠르다.

“말하자면 이는 3차원 이외에 또 다른 공간 차원(extra dimension), 즉 여분의 차원 혹은 추가적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성미자가 이러한 차원 사이를 일종의 지름길로 통과하기 때문에 빛보다 빨리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후속 실험에서 정말 중성미자가 광속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명난다면? 윤 박사는 “기존의 물리를 넘어서는 우주론과 소립자물리학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것” 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그 외 구체적 부분의 언급에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M-이론 등을 생각하면 세간의 기대대로 시간여행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 박사는 시종 단호했다.

“이번 결과는 가능한 과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해 측정한 하나의 사례로 봐야 해요. 아직 그 이상의 의미를 논할 때가 아니죠. 시간여행 같은 이야기는 너무 성급한 것이에요. 설령 추후에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도 그 사실은 시간여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빛의 속도에 따라 서로 다른 운동 상태에 있는 물질들은 하나의 시공간 구조로 통합돼 있으며, 질량을 가진 그 어떤 물질도 질량이 0인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만약 무언가가 빛의 속도 이상으로 운동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고정된 공간이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일 경우 시간은 흐르지 않고,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게 된다. 이로 인해 시간여행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지만 이는 아직 이론일 뿐이다. 윤 박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번 결과가 사실로 확증되더라도 당분간 일상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맞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단지 자연과 우주를 보는 우리의 시각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타임머신은 성급한 얘기예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시간여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윤천실 박사는 오페라 실험의 한국 연구팀 대표로, 중성미자 진동 변환 관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유령입자’의 미친 존재감

결국 이번 결과만 놓고 당장 시간여행을 꿈꾸는 것은 매우 호들갑스런 태도라 할 수 있다. 단, 이번 결과는 중성미자라는 아주 신비하고 매력적인 존재를 뇌리 속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중성미자는 물질의 기본단위 중 가장 최소입자인 소립자로 크기가 원자의 10억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생성과정에 따라 전자, 타우, 뮤온 중성미자로 나뉘는데 온 우주에 가득히 존재할 만큼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초당 약 10조개 정도의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을 정도다.

또한 지구를 200여개나 겹쳐 놓아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지나듯 유령처럼 통과해버린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를 ‘겨우 존재하는 입자’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중성미자의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윤 박사는 “우리는 아직까지 중성미자의 질량이 정확히 얼마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초광속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 마련 등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고 전했다.

현재는 중성미자의 속도 측정이 오페라 실험의 핵심 목적 중 하나가 됐지만 CERN에서 지난 5년여간 실험을 추진한 원래 목적은 이것이 아니다. 주 목적은 한 종류의 중성미자가 다른 종류의 중성미자로, 즉 뮤온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바뀌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중성미자 진동 변환(neutrino oscillation)이라 한다.

“이는 마치 개가 달려가다가 고양이로 바뀌는 것과 같은, 자기동일성이 변하는 소립자 세계의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반드시 질량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죠. 따라서 중성미자가 진동 변환한다는 것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중성미자의 진동 변환은 우주의 암흑물질 및 구조 형성 등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빅뱅 이후 1초 단위로 만들어진 중성미자의 숫자는 1㎤당 약 300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주 전체로 볼 때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따라서 만일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우주의 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판단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CERN의 LHC, 입자의 궤적을 추적하는 LHC의 디텍터, 이탈리아 그란 사소 실험실의 디텍터 내부 모습.

현재 오페라 실험에서 한국팀은 주로 중성미자 진동 변환 관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속 입자의 자취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특수 사진건판인 원자핵건판 검출기 내에서 중성미자 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입자들의 비행궤적 연결과 진동변환 후 나타나는 타우 중성미자를 탐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작년 5월에는 오페라 실험을 통해 첫 번째 타우 중성미자가 발견된 바 있다.

“비행궤적 연결은 원자핵건판 내에서 중성미자 반응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한 작업이에요. 한국 연구팀이 제작한 비행궤적 연결장치가 현재 이탈리아 그란 사소 지하 실험실에 설치돼 가동 중에 있습니다.”

원자핵건판 검출기를 사용하는 것 또한 오페라 실험이 다른 중성미자 실험과 구분되는 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원자핵건판 검출기는 중성미자 반응 모습을 3차원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반응에서 나오는 하전입자(전기를 띤 입자)의 비행 궤적을 1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이내로 식별할 수도 있다. 그만큼 미세한 위치 분해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학계에서는 이번 오페라 실험 결과에 의해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가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것과 함께 중성미자 자체의 성질을 파악하는 연구 말이다.

어찌 보면 그것이 이번 실험 결과의 최대 부수익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윤 박사는 재차 강조했다.

“스위스의 이론물리학자 파울리가 중성미자를 예언한 지 8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 중성미자의 성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중성미자 연구는 앞으로 새로운 물리학을 여는 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