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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죽음을 택한 동물들

MYSTERY OF ANIMAL SUICIDE

흔히들 동물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살은 오로지 인간의 전유물이며, 동물의 자살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빚어진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미를 잃은 새끼 침팬지는 식음을 전폐하고, 바다를 떠나선 살 수 없는 고래가 일부러 해안가로 헤엄쳐 온다.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이런 행동이 자살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자살은 매우 복잡다단한 인과관계의 산물이다.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특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많은 학자들은 자살을 뇌의 구조적·화학적 측면에서 파악하려 하는데, 여기에는 감정 조절과 유관한 뇌의 여러 부위와 신경전달물질들이 거론 된다.

이렇듯 인간의 자살을 뇌의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사람만큼 뇌가 발달하지 못한 동물들의 경우는 어떨까. 동물 역시 인간처럼 자살이라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을 지닌 생명체라는 점을 들어 자살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능성 자체를 수긍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원인도 알 수 없는 동물의 죽음을 단순히 자살로 오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죽이는’ 혹은 ‘삶의 의지를 상실한’ 듯한 동물들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이것이 만일 자살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동물도 우울증에 걸린다?

최근 발표된 다수의 통계에 따르면 사람이 자살하는 주된 원인은 심리적 부분에 기인한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 말이다. 그렇다면 동물들도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르탱 모네스티는 저서 ‘자살백과’에서 미 국립 아동보건·인간성장 자문기구(NACHHD) 소속 스테판 수오미 박사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물리적·심리적 환경에 처하게 된 동물들이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우울증 증세를 보이면서 음식을 마다하고 앓아눕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수오미 박사는 인간의 극심한 우울증이 종종 자살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동물에게도 우울증이 있는 이상 자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침팬지다.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목 포유류에 속하는 침팬지는 놀랍게도 가족이나 동료의 죽음을 접하면 우울증에 빠져 숨을 거두기도 한다. 실제로 어미를 잃은 어린 침팬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 사례는 매우 유명하다.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 박사가 아프리카의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목격한 사건으로, 어미가 목숨을 잃자 새끼 침팬지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한 달 만에 어미의 뒤를 따라갔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침팬지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감각능력, 지각능력, 기억력이 뛰어난 말에게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탔다는 백마 ‘칸타카’도 그중 하나다. 자살백과에 의하면 목적지에 도착한 석가모니가 칸타카를 하인과 함께 궁으로 돌려보냈는데 마구간으로 돌아온 뒤 주인과 헤어진 슬픔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아사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세상을 떠난 주인의 무덤 곁을 서성이다 죽음을 맞은 개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얼핏 이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느끼는 자살충동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동물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은 이것만으로 동물들이 사람처럼 죽음의 의미를 인식한 채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일례로 개가 주인의 무덤 곁을 떠나지 않는 행동은 우직한 근성일 뿐 죽음의 의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목숨을 내던진 희생정신

회의론자들의 주장대로 인간보다 뇌가 발달하지 못한 동물이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자살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의 의미를 스‘ 스로를 죽이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여러 이유로 자살을 하는 동물들의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그중에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희생적 자살도 있다. 먼저 불개미를 보자. 불개미는 목숨을 바쳐 사랑을 나눈다. 수개미의 생식기가 암캐미의 생식기 안에서 폭발하면서 짝짓기를 한다. 암개미에게 일생 동안 필요한 700만개의 정자를 한 번에 전달한 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다.

붉은등거미도 마찬가지다. 짝짓기 후 암거미가 수거미를 잡아먹는데 수거미는 이렇다할 반항조차 하지 않는다.

교미 후 죽음을 맞는 하등동물은 이밖에도 많다. 이 같은 행위는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나름의 노력 혹은 본능이라 할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심리학자 토머스 조이너 교수는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라는 저서에서 “자기희생적인 자살은 동물 세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비단 자신의 사랑 때문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값진 희생도 있다. 무리를 지어 삶을 일구는 곤충들은 집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예컨대 땅벌은 기생충이 자신의 몸에 알을 낳으면 벌집에서 멀리 떠난다. 벌집 안에 기생충의 유충이 퍼지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다. 벌집을 떠난 벌은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살의 한 형태로 해석이 가능하다.

건기가 되면 풀과 물을 찾아나서는 야생 얼룩말의 무리에서도 희생적 죽음을 볼 수 있다. 여정 내내 무리를 진두지휘하는 우두머리 얼룩말은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물을 만나면 맨 먼저 뛰어든다. 당연히 잡아먹힐 확률이 높다. 그가 기꺼이(?) 악어의 먹이를 자처하며 주의를 끄는 동안 나머지 무리는 한층 안전하게 물을 건널 기회가 생긴다.

다만 이 또한 집단과 동료를 위한 자살로 보지 않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이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실천한 자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고사에 가깝다는 주장을 펼친다.





원인불명의 떼죽음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동물의 자살은 역시 집단자살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래다. 해양동물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해안으로 밀려와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죽는 현상을 ‘스트랜딩(stranding)’이라 하는데, 고래의 스트랜딩은 동물 자살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주된 논거다. 세계 곳곳에서 간간이 벌어지는 현상으로, 적게는 2~3마리에서 많게는 수십 마리의 고래가 떼를 지어 뭍으로 올라와 숨을 거둔다. 최근에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대규모의 범고래들이 해안가로 나와서 폐사하는 일이 있었다. 영민한 고래가 물 밖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보면 스트랜딩을 자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래는 왜 집단자살을 감행한 것일까. 일부 학자들은 이것도 우울증 같은 정신적 이유로 설명한다. 아무리 바다로 돌려보내려 해도 돌아갈 의지를 보이지 않고 다시 해안가로 헤엄쳐 온다는 것이 그 근거다.

반면 동물행동학자들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자살은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단순히 조수간만의 차이로 떠밀려왔거나, 먹잇감을 찾다가 일시적으로 방향감각을 잃었거나, 해군음파탐지기의 초음파가 뇌에 이상을 야기했을 것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있다. 몇몇 병리학자들은 죽은 고래를 해부한 결과에 근거해 위장병을 의심하며, 환경운동가들은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와 연관시켜 지구 오염의 위험성을 알리는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두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덧붙여 동물의 집단자살에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학자들은 북극의 레밍(나그네쥐)을 근거로 지적한다. 한때 레밍은 고래와 함께 집단자살 동물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개체수가 늘어나면 집단 이동을 시작하고, 벼랑에 다다르면 몸을 던지기 때문이었다.

한때 이를 개체수 조절을 위한 희생적 자살로 보기도 했지만 현재 밝혀진 바로는 단순 사고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생물학자 데니스 치티 교수도 저서 ‘레밍은 자살하는가?’에서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쫓는 레밍의 습성으로 인해 자칫 우두머리가 방향을 잘못 잡아 벼랑으로 이끌면 모두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고 밝혔다.

특히 벼랑에서 떨어진 뒤 살아남은 몇몇은 새 터전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기도 한다고 하니 자살로 보기에는 당위성이 희박하다.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산양들이 집단으로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사례도 마찬가지 이유로 풀이된다. 고산지대에서는 염분 섭취가 어려워 뇌속 도파민의 부족해지면서 나타난 이상행동이라는 분석이 지지를 얻고 있다.



죽음을 선택한 합리적 이유의 부재

주지하다시피 과학계의 전반적 분위기는 동물 자살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이 사람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은 동물 자살을 인정하지 않은 학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새삼 화제가 됐던 호주 출신의 두 청년과 크리스티앙이라는 사자의 우정이 이를 방증하는 실례다.

어린 시절 크리스티앙은 줄곧 청년들과 함께 생활했지만 몸집이 커지면서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할 기회가 생겼다. 전문가들은 야생에 적응한 크리스티앙이 두 청년을 알아보지 못하고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형제의 품에 안기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서 전해지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이는 분명 동물도 충분히 자신의 뜻대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보태는 요소가 된다. 마르탱 모네스티는 “동물들의 자발적 죽음은 설명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고 지적하면서도 몇몇 수의사들의 말을 빌려 “말이나 소와 같은 동물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50여 마리의 양들이 죽음을 감지하고 집단적 죽음을 택한 사건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 이 모든 사례들이 자살이 아니라면 그들의 죽음을 설명할 합리적인 이유가 아직 없다는 부분이 동물 자살의 심리적 개연성을 높여준다.

여전히 논란의 소지는 많이 있지만 혹여 동물들이 진짜로 자살을 할 수 있다면 그 원인과 이유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들이 우울함이나 좌절감 때문에, 혹은 타인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듯 동물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직 우리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한 깊은 속내가 그들 각자에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살의 의미를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자살을 하는 동물들의 사례는 하나 둘이 아니다.



뇌와 자살충동의 상관관계

한 연구에 의하면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특징적 변화가 발견된다. 이는 크게 구조적 측면과 화학적 측면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감정을 조절하는 뇌 기능의 변화와 유관하다. 이마 부분의 가장 앞쪽에 위치한 전전두엽은 이성적·논리적 행동의 근간을 이루는 부위로 이곳이 손상되면 충동 조절 능력이 저하된다. 따라서 언행이 난폭해지는 등 사회규범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자살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시도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자살은 뇌의 ‘불안센터’로 불리는 편도체와도 관련이 깊다. 대뇌 변연계에 존재하는 편도체도 감정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해 편도체가 과민한 사람은 불안장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충동 억제를 판단하는 대뇌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DLPFC)이나 갈등 상황을 처리하는 대뇌 전대상 피질(ACC)의 기능이 떨어지면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화학적 변화의 경우 기분 및 감정 조절과 관련된 여러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확인된다. 분비량이 부족하면 우울증, 불안증 등을 야기하는 세로토닌을 비롯해 과다 분비 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 부족 시 우울증을 일으키는 도파민, 불안상황 때마다 분비돼 현실 회피 충동을 유도하는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울러 최근에는 뉴런의 성장을 촉진하는 뇌유래 신경영양 인자(BDNF)의 존재가 밝혀졌으며, BDNF가 부족한 사람은 뉴런을 보호·복구·대체할 능력이 소실돼 우울증, 자살 등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의 자살

동물 뿐 아니라 식물도 자살, 정확히 말해 자살처럼 보이는 행동을 한다. 심리학자인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토머스 조이너 교수의 저서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나오는 ‘자살 야자나무(Tahina spectabilis)’가 대표적 자살 식물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된 이 나무는 성장을 다하면 키가 15m정도 되며, 50여 년에 한 번 꽃을 피운 다음 죽는다. 나무가 수천 송이의 작은 꽃을 피워 올리면, 꽃이 씨를 지닌 열매로 맺히고, 새를 비롯한 동물들이 그 열매를 먹고 씨를 퍼뜨린다. 이렇게 번식을 마친 후 미련 없이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아직 누구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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