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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년간 숱한 위기 넘고 우뚝 선 가장 오래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시계 이야기 ⑥ 블랑팡

블랑팡 브랜드의 저력은 그 생존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창립 278주년을 맞이한 블랑팡은 세계 시계 산업계를 뒤흔든 온갖 시련을 온몸으로 맞아왔다. 명멸해간 수많은 브랜드들이 있지만 블랑팡은 끝까지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역사적인 사건들은 때때로 다소 의외의 곳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태양왕’ 루이 14세 Louis XIV의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16세기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의 총칭) 박해가 시계 산업에 끼친 영향이 특히 그렇다. 루이 14세는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칙령을 1685년 폐지하고 가 톨릭 외의 교파들을 탄압했다.

이때 프랑스에 살고 있던 프로테스탄트들 중 상당수가 루이 14세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 서쪽지역으로 피난 을 가게 됐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유라 Jura산맥 뉴샤텔 Neuchtel 지역의 작은 마을 빌레레 Villeret에 정착했다. 당시 빌레레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난한 농촌마을 이었다. 빌레레는 큰 산맥들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겨울이 길 었다. 빌레레 주민들은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다른 소 일거리가 필요했다. 이 기간 새로운 수입원으로 주목받 은 것이 세공업이었다. 긴 겨울 동안 집 안에서 할 수 있 는 일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의 반 이상을, 또 수십 년 이상을 세공업에만 매 달리다 보니 주민들은 어느새 세공업 장인으로 평가 받 기 시작했다. 세공업 기술은 세밀한 시계부품을 만드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능력이다. 시계 산업을 꽃피울 수 있 는 배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 농장을 운영 중이던 예한-자크 블랑팡 Jehan- Jacques Blancpain은 빌레레 지역의 풍부한 장인 인력과 시계 산업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당시는 유럽 귀족들의 화려한 겉치장을 위한 시계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있던 때였다.

1735년, 예한-자크 블랑팡은 시계 산업의 미래 성장 성을 확신하고 가족 농장 건물 1층 전체를 시계 작업장 으로 개조, 블랑팡 Blancpain 시계회사를 설립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블랑팡의 탄 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창업 이후 블랑팡은 가족기업으로서 성공가도를 달 리게 된다. 예한-자크 블랑팡의 자손들은 뛰어난 기술 자이자 사업가로 블랑팡의 명성을 이어갔다. 특히 3대 오너인 다비드-루이 블랑팡 David-Louis Blancpain은 중간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유럽 대도시에 시계판 매를 시작함으로써 회사 수익성 제고에 큰 공헌을 했 다. 그는 블랑팡이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 밑바탕을 마련했다.

5대 오너인 프레데릭-에밀 블랑팡 Fre′dre?ic-Emile Blancpain은 블랑팡의 기술적 발전은 물론 경영에 있어 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전통 수공예 시계 작업장을 연속 생산이 가능한 ‘현대화된’ 매뉴팩처로 발 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고안한 ‘실린더 이스 케이프먼트로 크라운 휠 메커니즘을 대체하는 시계 제 조 방법’은 19세기 시계 산업 기술혁신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블랑팡의 마지막 가족 오너인 7대 프레데릭-에밀 블 랑팡 Fre′dr?eic-Emile Blancpain 역시 시계사에 한 획을 긋는 두 가지 시계 제품을 내놓았다. 그는 1926년 세계 최초의 오토매틱 손목시계 ‘하워드 Harwood’를 바젤 시계 박람회에서 선보였으며, 1930년에는 볼-베어링 Ball- bearing 시스템을 이용해 자동으로 태엽을 감는 ‘롤즈 Rolls’ 여성용 시계를 론칭시켜 주목받았다.

큰 어려움 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블랑팡의 가족경영체제는 다소 엉뚱한 이유로 막을 내린다. 7대 오너 프 레데릭-에밀 블랑팡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딸 베르트- 넬리 Berthe-Nellie가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여 년간 이어져 오던 블랑팡의 가족 경영체제는 1932년 프레데릭-에밀 블랑팡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블랑팡의 역사는 계속됐다. 1933년 프레데 릭-에밀 블랑팡의 가장 긴밀한 협력자이자 동료였던 베티 피에테 Betty Fiechter와 안드레 릴 Andre′ Le′al 이 회사를 인수, 경영을 정상화했다. 블랑팡의 이름은 ‘Rayville S.A., succ. de Blancpain’, 줄여서 ‘라이빌- 블랑팡Rayville-Blancpain’으로 변경됐다.

새로운 두 경영자가 블랑팡에서 근무하던 동료였기에 사명 변경과는 무관하게 블랑팡의 기업문화는 그대로 보존됐다. 오히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됐다. 프랑스 해군 특수부대의 의뢰를 받아 1953년 론칭한 세계 최초의 모던 다이버 워치 ‘피프티 패텀즈 Fifty Fathoms’는 그 기술적 우수성으로 큰 성공 을 거뒀다. 1950년대 말 라이빌-블랑팡의 연 시계 생산 량은 10만 개가 넘을 정도였다.

1950년대 당시 시계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독립된 브랜드였던 라이빌-블랑팡은 시장에 민 첩하게 대응하고자 1960년 SIHH(Societe Suisse pour l’Industrie Horlogere·스위스 시계 산업사)에 편입된다. 1971년 라이빌-블랑팡은 연 시계 생산량 22만 개를 돌파했다.

1970년대는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들에게 암흑의 시기였다. 이른바 시계 산업의 혁명이라 불리는 쿼츠시계 (Quartz Watch)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장착 해 동력을 얻는 쿼츠시계는 태엽을 감거나 손목의 움직 임으로 동력을 얻는 기계식시계에 비해 모든 면이 월등 했다. 기계식시계보다 훨씬 더 정확했지만 부품은 더 간단했고, 따라서 기계식시계가 시간의 정확성을 위해 내재해야 했던 많은 장치가 필요없게 됐다. 이들 기능적 장치가 없어진 공간을 미적인 화려함이 장식하기 시작 했고, 이에 시계의 외관도 기계식시계보다 화려해졌다. 다른 악재들도 겹쳐서 일어났다. 달러 가치 하락에 따른 스위스프랑 통화가치 고평가는 스위스 하이엔드 급 시계 브랜드들의 수출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같은 시기 시작된 글로벌 경기위축 역시 악재가 됐다. 1973 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석유파동은 세계 적인 경기침체를 불러와 스위스 시계업계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모든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에게 1970년대는 대위기의 시대였다.

라이빌-블랑팡 역시 이 매머드급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SIHH는 줄어든 기계식시계 수요에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대적인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채권단은 브랜드 일부를 매각하라는 압박을 SIHH에 강요했고, 이에 SIHH는 1983년 1월 라이빌-블랑팡을 매각하기에 이른다.

브랜드 존폐의 위기였으나 블랑팡에겐 행운이 따랐다. 무브먼트 제조로 유명한 프레드릭 피게 Fre′dre? ic Piguet의 아들 자크 피게 Jacques Piguet와 명품 시계 브랜드를 회생시키는 데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장 클로드 비버 Jean-Claude Biver가 라이빌-블랑팡을 인수한 것이 다. 이들은 라이빌-블랑팡에서 다시 블랑팡으로 브랜 드 이름을 수정했다.

자크 피게와 장 클로드 비버는 쿼츠시계의 범람 시기에 오히려 더욱 복잡하고 섬세한 기계식시계에 집중함으로써 타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된 시장전략을 사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기계식시계 브랜드들은 쿼츠시계 양산을 병행하거나 기계식시계 제품을 단순화시켜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고작이었다.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고, 사람들은 다시금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태엽을 감는 재미가, 로터가 풀리는 그 과정이, 톱니바퀴로 연결된 여러 복잡한 장치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했다. 쿼츠시계는 태생적 차이로 인해 가질 수 없는 매력들이었다.

여러 브랜드에서 전보다 훨씬 진일보한 기계식시계 기술들을 선보였지만, 쿼츠 파동기에도 쿼츠시계에 눈 돌리지 않고 한결같이 기계식시계에 집중한 블랑팡이 주목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Never Any Quartz’ 라는 블랑팡 브랜드 철학은 ‘가장 오래된 하이엔드 워치브랜드’란 타이틀을 배경으로 더욱 빛났다.

초라한 모습으로 SIHH에서 떨어져 나갔던 블랑팡 은 1992년 화려한 복귀를 한다. SIHH는 1983년 블랑팡을 내보냄과 동시에 스와치그룹에 편입된 상태였다. 스와치그룹의 회장 마크 니콜라스 하이에크 Marc Nicholas Hayek는 직접 블랑팡의 총수를 맡았다. 그만큼 애착이 가는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노년에도 정렬적인 삶을 불태웠던 마크 니콜라스 하이에크 회장이었지만 2000년 이후 급격히 노쇠하는 신 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사랑스런 브랜드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손자인 마크 알렉산더 하이에크 Marc Alexander Hayek에게 2002년 물려준다. 마크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이후 2010년 타계했다.

올해로 블랑팡은 창립 278주년을 맞았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무려 4세기를 경험한 브랜드이다 보니 이 브랜드의 역사는 그 자체로 시계 산업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다. 세계 시계 산업과 블랑팡은 온갖 파고를 함 께 넘어왔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브랜드들 도 몇 있지만 지금까지 남아 ‘가장 오래된 하이엔드 워 치 브랜드’로 꼽히는 건 결국 블랑팡이다. 생존의 역사 가 곧 브랜드의 저력이 된 블랑팡이 앞으로 어떤 역동적 인 역사를 써내려 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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