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오전 10시. 마침내 이케아가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 법인 설립 후 2년 만의 일이다. 세계 시장으로 보면 359번째 매장이고 아시아에선 37번째다. 1층 마켓홀, 2층 쇼룸을 합한 면적은 59,000m²로 세계 최대 매장 규모다. 자녀를 우선시하는 한국 풍토에 맞춰 키즈 섹션 면적도 세계 최대로 마련했다.
미국 홈데포, 로우스와 함께 세계 3대 가구 유통 업체로 불리는 이케아의 한국 입성은 평탄치 않았다. 연 매출 44조 원의 ‘가구 공룡기업’인 이케아가 2011년 이케아코리아를 설립하고 한국 진출을 선언하자 글로벌 가구 브랜드나 이렇다 할 홈패션 기업이 없는 한국 가구업계는 시장 잠식을 걱정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지역상권이 반응했다. 광명 지역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이케아 입점저지위원회를 조직해 이케아 진출에 대한 반감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이케아코리아는 ‘마이웨이’ 식으로 꿋꿋하게 개점을 진행시켜 나갔다. 이 같은 상황은 첫 개점을 진행한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대부분의 나라가 가구 공룡기업 이케아에 대한 경계와 반감을 드러냈다.
오픈 직전인 2014년 11월, 이케아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벽걸이용 세계지도를 판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연일 온라인에 이케아를 성토하는 기사와 댓글이 올라왔고 정치권까지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이케아 본사는 직접 사과문을 발표, 해당 제품의 판매중단을 선언하며 들끓는 여론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이케아는 유독 아시아 시장 진출에 애를 먹었다. 인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케아는 2013년 이케아인도를 설립하며 인도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외국 자본에 대한 인도인들의 거부감이 연착륙을 힘들게 만들었다. 종교적 이유로 소 도축을 금지하고 있는 인도정부가 ‘미트볼 판매 금지’를 요구해 지금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케아는 일본에 1977년 진출했다가 1986년 철수했고 2006년에 재진출했다(첫 진출 땐 본사 차원의 직접 진출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대행 판매를 했다). 이유는 DIY. 직접 조립에 익숙지 않은 일본국민들이 이케아를 외면했다. 때문에 2006년 재진출 땐 조립대행 서비스를 시행해 시장에 안착했다.
이케아는 중국에도 1977년 진출했지만 상당히 고전을 했다. 유럽 브랜드를 높이 평가하는 중국인들에게 ‘ 저가’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에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케아는 또 다른 브랜드 포지셔닝에 집중해 중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현재 이케아는 일본에 8개, 중국에 16개 매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 한국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DIY나 대형 홈패션이 생소하다. 게다가 배송대행 서비스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는 한국인들을 얼마나 커버할 수 있을지도 과제로 남아 있다. 또 H&M 홈, ZARA 홈 같은 경쟁력 있는 홈패션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기자가 가구나 유통 관련 전문가 5명에게 질문한 결과, 그들은 예외 없이 이케아의 성공을 이야기했다. 다만 시장 안착까지 있을지도 모를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말한다. “한국의 중저가 브랜드는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구업계가 활로를 빨리 모색해야 할 때죠. 그들은 고급가구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겁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이케아 한국 진출은 가구 업계 잠식보단 시장 파이가 커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홈패션에 대한 관심이 커질 테니까 말이죠. 이케아는 국내 시장에서 성공 수준이 아니라 대박을 낼 것입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지난 9월 이케아 진출과 관련해 보고서 하나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이케아가 한국형 배송방식 도입, 가구 사이즈와 포장 규격 정형화를 통한 현지화로 빠르게 한국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2020년엔 매장당 연 매출 1,500억 원을 기록해 총 5개 매장에서 약 7,5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 보고서는 가정용 가구 시장에서 점유율 19%를 차지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케아는 진출 국가마다 시장 점유율 10% 이상을 기록할 만큼 현지화에 능한 기업이다. 이케아는 진출 국가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집 크기와 구조, 주거형태 및 문화, 수납환경 등을 분석해 제품 개발과 인테리어, 마케팅에 반영하는 ‘가정 방문(Home Visit)’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지훈 이케아코리아 마케팅 매니저는 말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2년 동안 연구를 했습니다. 80가구 정도를 방문해 특성을 파악했죠. 그 과정에서 파악한 국내 가구의 특성은 1인 가구 증가, 발코니 확장, 뽀로로 매트, 복잡한 욕실 등이었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이런 관찰을 통해 판매하는 제품의 용도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가령 이탈리아에서 팔던 파스타 채를 중국에선 만두 채로 판매하는 식이죠.” 성진옥 이케아 인테리어 디자인 매니저는 “한국의 전형적인 집안 구조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평수인 25 m², 35 m², 55m²의 홈세트와 65가지 룸세트에는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한 이케아식 인테리어 및 수납방식을 담아 냈다”고 말했다.
이케아는 매장 규모의 대형화만을 꾀하지 않는다. 국가의 특성에 맞춘다. 홍콩의 경우, 빌딩에 매장을 오픈하고 접근성을 높여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케아는 때론 진출 국가의 쇼핑몰과 손잡고 시장에 안착하기도 한다. 이케아중국 선양점은 복합쇼핑몰 스타몰과 연결 통로를 설치해 고객을 공유하면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케아코리아 역시 광명점 옆에 위치한 복합쇼핑몰 롯데몰과 구름다리를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롯데몰이 위치한 땅은 이케아 코리아 소유이다). 이케아 건너편에는 코스트코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지화 전략과 함께 이케아가 적용하고 있는 마케팅 핵심 전략은 카탈로그다. 전 세계 47개국 32개 언어로 발간되는 이케아 카탈로그는 매년 9월 2억 부 이상 발간되고 있다. 한국판은 200만 부가 발간됐다. 카탈로그엔 10,000점에 이르는 제품 중 약 20% 정도가 소개되어 있다. 사진의 콘셉트부터 촬영까지 스웨덴 본사 스튜디오에서 결정하고 진행을 한다. 이케아 마케팅 비용의 약 70%가 이 카탈로그 제작과 배송에 지출된다. 일부에선 ‘종이문화가 쇠퇴하는 이때에 카탈로그 마케팅이 더 이상 유효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지훈 이케아코리아 마케팅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카탈로그를 통해 주문을 유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죠. 모바일 환경이 대세인 만큼 카탈로그는 앱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케아에 가면 빈 손으로 못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케아는 고객들의 소비심리를 철저히 파악해 소비로 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고객들이 매장에 머무는 동안 오직 제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쇼핑 환경을 제공한다.
지난 12월 15일, 이케아는 오픈 직전 언론에 광명점을 공개했다. 이케아 광명점은 광명역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면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2층은 쇼룸인데 이곳에 들어서기 직전 ‘스몰란드’가 보였다. 이곳에선 1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2층 쇼룸은 일직선이 아니라 15미터마다 꺾이도록 매장이 구성되어 걷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매장을 둘러본 대부분의 기자들은 ‘엄청난 면적과 다양한 제품으로 세팅된 룸에 압도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 정명렬 아수라백작 가구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케아 공간권력에 의한 매장 착시효과입니다. 다양하고 멋진 제품들이 진열된 거대한 공간 내에선 매장 제품이 마치 내 것인 같은 착각을 일으키죠. 내 것을 두고 매장을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대충 매장을 둘러보는 데 1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쇼룸 한쪽에는 걷다가 출출해진 쇼핑객들을 위해 운영되는 레스토랑과 푸드마켓이 보였다. 이케아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 메뉴는 링곤베리 소스가 뿌려진 미트볼이다. 이 레스토랑은 이케아 전체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쇼핑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면 마켓홀과 계산대가 보인다. 2층 쇼룸에서 봤던 제품을 적거나 기억해두었다가 이곳 마켓홀에서 물건을 수령하면 된다. 쇼핑을 마친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이케아 모자를 쓴 점원들과 36개의 일반 계산대, 8개의 셀프 계산대다. 계산을 마친 고객들은 계산대 옆에서 배송조립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계산대를 나오면 스웨덴산 연어와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코너가 간단하게 마련되어 있다. 쇼핑을 마치면 이제 한층 아래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는 일만 남는다. 이케아 주차장은 한 번에 2,000대 주차가 가능한 초대형 규모라 웬만큼 고객이 몰리지 않고선 주차에 애를 먹지 않을 듯했다. 이케아 상품의 반품 기한은 3개월이고 , 보증 기한은 제품에 따라 5년에서 25년까지 다양하다.
이케아 광명점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앞으로 한국 가구시장을 잠식하며 광풍을 불러 일으킬지, 홈패션 산업이 커지는 ‘효과’를 낼지 이제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