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어느 퇴직자의 서글픈 이야기

[FORTUNE'S EXPERT 송길영의 '기업문화 이야기']

최근에 지인에게 들었던 슬픈 사연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뼈를 묻을 각오'는 회사가 아닌 가정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이얘기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해보시길 바랍니다.



중국 장저우에 다녀왔습니다. 중원의 황하 옆에 위치한 인구 1,000만명의 이 도시는 엄청난 공사 현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가는 비행기가 아직 꽉 차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교류가 시작되는시점인 듯합니다. 한 공장을 방문했는데, 일하는 사람들만 30만 명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한국 산업화의 흔적을 이곳에서 다시 보는 듯했습니다. 30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 일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중국 회사는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최근 어느 기업 대표님께 들은 이야기가무척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분은 어떤 회사가 결산일을 3월에서 12월로바꾼 후에 생긴 슬픈 이야기 하나를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임원은 결산일 전에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날씨가 따뜻한 3월에 퇴직하는 것보다 추운 12월에 퇴직하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였지요. 12월에 퇴직한 한 전직 임원이 차마 가족들에게 직장을 잃은 것을말할 수 없어 평소 차림대로 집을 나왔다 합니다. 고위직이었던 그 임원은 자동차에서 건물로 바로 이동하던 습관이 있어서 추운 날에도 코트를 입지 않은 채 집을 나섰습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지하철을 타고 끝까지가봤더니 1호선 종착역인 인천이 나오더랍니다. 바닷바람이 너무 추워견디기 어려웠던 그분은 다음날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충남 온양으로 향했다 합니다. 문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지하철에 탄 어르신들로부터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는 것이지요. 멀쩡한 양복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중년 남성이 온천에 혼자 간다는 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셋째 날 다른 방법을 찾다가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바로 지하철 2호선을 타는 것이었지요. 순환선이기 때문에 중간에 내릴 필요도 없었고, 옆에 있던 승객들도 (본인과 같은 처지가 아닌 다음에야) 중간에 내리기 때문에 의심하는 눈빛도 없었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류가방 속에간직한 두툼한 읽을거리도 2바퀴를 돌아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든든한친구가 되었다 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2바퀴를 더 돌아 집으로 향했다는 그의 슬픈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위의 이야기 중 가장 슬픈 대목은 ‘ 해직 후 가족들에게 사실을 말하지못했다’ 는 것입니다. 수십 년간 부양의 무거운 책무를 지기 위해, 때론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이 귀찮기도 해서 밖으로만 돌았던 가장이 이제 그 유일한 기능인 부양을 못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자신이 밭 갈던 소처럼 쓸모없어졌다고 느껴 ‘ 회사가 아닌 집에 머물겠다’ 고 가족들에게 통보하는 걸 유예한 것이겠지요. 그사이에 다른 일자리가 들어오길 바라면서요.

두 번째 슬픈 이야기를 해 볼까요? 한 CEO가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었습니다. 이사회로부터 급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CEO는 당연히 재기를 노렸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놀고 있는 CEO를 부르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분들 중 퇴사를 고려하는 분이 있다면 먼저 회사를 정하고 그만두는 것이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반드시 기억하세요. 지금 당장 힘들어서, 혹은 회피 동기에 의해서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새 직장을 찾을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진 나머지 가면 안 될 곳에취직해 자신을 옥죌 수 있습니다.

그 CEO는 3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거의 기적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CEO는 그 인고의 3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항상 아침에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듯 시립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가야 할 곳이 있어야 흐트러지지 않는데, 그 마음고생은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법합니다. 그런 그가 도서관으로 출발하기 전 꼭 체크하는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내의 스케줄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떤 이가 “사모님 외출하시면 밖에서 만나 함께 들어오시려고요?”라고 물어보니 “아니. 와이프 나가면 집에 들어와서 쉬려고.집이 제일 편한데 와이프가 있으면 불편해서 있을 수가 있어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답니다. 함께 있어 행복해야 할 집이 결코 편치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지요. 그렇게 편하게 있다가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해져서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고 했답니다. ‘ 집에서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생각하진 말라’는 뜻이었겠지요.

많은 국내 기업은 열정(이라 부르지만 야근입니다)을 요구하면서 그 열정을 보여준 직원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합니다. 제가 아는 한 회사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연구소 안에 호텔 같은 숙소를 제공하고있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어려운 사내 임직원이 요청하면 식사와 잘 곳에서부터 세탁까지 고마운 편의를 제공해주는 바람에 한 달씩 머무르는 임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멋진 준비를 해 주는 회사가 저는 고맙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야 일하다 집에 돌아가기 어려워진 직원을 배려하느라 그런다지만, 이 편의에 중독되어 집에 못 가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직원의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워집니다.

나머지 가족은 ‘아빠는 언제나 일하느라 힘드시고, 바빠서 못 오시니우리가 참자’며 그들끼리 위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월급은 들어오고 남편은 안 들어오는 생활이 반복되면 어느새 이따금 들어오는 아빠가 집에 오는 게 부담스러워집니다. 식사도 신경 써야 하고 하지 않던 아빠의 빨래도 해야 합니다. 아빠가 (언제 봤다고) 잔소리까지 하면, 부딪치지 않으려 최대한 몸을 사리며 각자의 방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이 불편한공기를 읽은 아빠는 맘 편하게 있고 싶기에 업무가 덜 바빠도 회사 숙소의애용자가 됩니다.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면 동화의 끝을 장식하는 ‘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happily ever after)’ 같은 해피 엔딩이 되겠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빠도 언젠가 직장을 그만두어야한다는 데 함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장을 잃은 아빠는 돌아갈 배를 불태워버린 신대륙의 정착민이 추수를 망친 채 혹한기를 맞은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맙니다.그도 회사에 다닐 땐 동기(라 부르지만 경쟁자입니다)와 선배(라 부르지만 보스입니다)와 후배(라 부르지만 부하입니다)와 더불어 가상의 가족을이뤄 하나의 목표로 사이좋게 지내고, 밥도 함께 먹고, 청소와 빨래 서비스도 제공 받고 했을 테지요. 문제는 이 놀이터를 잃어버린 후 ‘나는 지난세월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 하는 후회와 자괴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1998년과 2008년, 이미 우리는 종신 고용이 환상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기업들은 평생 잘해줄 것이 아니면 너무 잘해주지 마시길바랍니다. 비즈니스는 그의 인생에 작지 않은 의미를 주지만 그것은 결코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적당히 쿨 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의 전문성을 사이좋게 보여주는 정도에 머무르길 바랍니다. 그 여지와 여백이 좀더 소중한, 좀 더 오래 함께해야 할 가족에게 쓰이게 될 때, 그의 인생의 안전판이 다시 살아나고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설명할 수 없는 화학 작용의 촉매 반응이 일어날 것입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상상하지 말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욕망을 보는 법’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