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삼성-엘리엇 공방이 남긴 숙제

▶삼성물산과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벌인 분쟁이 막을 내렸다. 지난 7월 17일 임시 주총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법인인 ‘통합 삼성물산’은 오는 9월 출범한다. 이로써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새로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 전반의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동시에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주주가치 확대와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엘리엇 메니지먼트가 시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저지 시도가 불발로 끝났다. 삼성물산은 지난 7월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 제일모직도 이날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빌딩 1층 컨퍼런스홀에서 임시 주총을 열고 삼성물산과의 합병계약서 승인 건을 통과시켰다.

삼성물산 최치훈·김신 사장과 제일모직 윤주화·김봉영 사장은 CEO 공동메시지를 통해 “그동안 성원과 지지를 보내준 주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이번 합병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됐다. 양사 사업적 역량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가치를 높여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합병의 실질적인 목적이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합병 성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실질적 지주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삼성이 승리를 거뒀지만,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선 여전히 찜찜한 변수가 남아 있다. 두 달간 삼성과 엘리엇은 피 말리는 공방을 이어갔다. 삼성은 지난 5월 26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을 발표했다. 6월 4일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동시에 엘리엇은 합병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며 양측의 갈등에 불을 붙였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매입 공시 이후 지속적으로 합병반대 의견을 표출했다. 법원에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법적 소송을 포함해 삼성을 상대로 한 전면적 파상공세를 펼쳤다.

엘리엇은 합병비율(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이 불공정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자신이 가진 주식 가치가 낮아진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현물배당을 위한 정관 개정을 요구했고,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삼성 계열사에도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법원에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엘리엇으로부터 일격을 당한 삼성은 우왕 좌왕했다. 새로운 삼성물산의 장밋빛 전망에 들떠 있다가 엘리엇의 공격을 받고 당황했다. 먼저 준비해 공격한 엘리엇에 비해 삼성의 대응 전략은 단순했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5.76%를 KCC에 전량 매각하고 백기사를 확보하며 반격에 나섰다.

엘리엇은 다시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기각하면서 삼성은 첫 번째 승기를 잡았다. 엘리엇은 세계 최대 주주총회 의결권자문 기구인 ISS가 합병반대 의견을 내자 삼성에 대한 압박수위를 다시 높였다.



삼성은 엘리엇이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공격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벌처펀드’라고 몰아붙였다. 엘리엇과의 표 대결을 앞두고 삼성물산은 이 같은 논리를 더욱 강력하게 펼쳐나갔다. 주주들의 애국심에도 호소했다. 삼성은 100여개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TV광고까지 내보냈다. 1,000주 이상 보유한 주주는 직접 만나며 합병 당위성을 전달하고, 의결권 위임을 호소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개미로 일컬어지던 소액주주가 회사로부터 이토록 간절한 구애를 받으며 주주로서 지위를 인정받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엘리엇도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을 직접 전면에 내세워 여론전에 나섰다. 폴 싱어 회장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복장을 하고 한국 대 독일전 한국을 응원했다며 당시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 viewer

폴 엘리엇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 회장. 유대계 미국인 억만장자로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했다. 투자은행에서 부동산 업무를 하다가 1977년 130만 달러로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개인 재산은 2조 원으로 추정된다. 미국 공화당의 최대 개인 기부자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삼성 편이었다. 결국은 삼성이 엘리엇을 이길 것이라 대부분 짐작했고 결과도 그랬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카드’를 처음 발표했을 때 ‘변화하는 경영환경에서 양사의 합병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국내투자자들은 ‘그러려니’했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투자자가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은 삼성의 합병 계획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병에 반대한 엘리엇과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공개시장에서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했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는 말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2대 주주입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죠. 엘리엇은 자기가 가진 주식을 정상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엘리엇이 7,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느닷없이 반토막이 난 거예요. 삼성은 법률적으로 합병 방식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죠. 주주들에게 지지를 받으려면 그런 법적인 평가에 앞서 주주가 말하는 걸 귀담아 듣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삼성그룹이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격 대상이 된 건 상대적으로 낮은 대주주 지분율 때문이었다. 이들 펀드가 지분율을 높인 후 경영참여를 요구한다면, 현행법상 안 들어주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SK나 한솔제지, KT&G의 사례에서 보듯, 외국계 투기성 펀드들이 국내기업의 지분을 취득한 후 경영권 관여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사례들도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과 분쟁에서 패배했지만 그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엘리엇 측은 주총 결과가 나온 직후 “실망스럽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추가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암시했다. 엘리엇은 앞으로 합병 무효 소송 등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그래서 삼성물산 통합 분쟁이 장기화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합병안 통과를 알리고 있다.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엘리엇이 가진 삼성물산 지분 7.12%는 제일모직과의 합병 이후엔 2.03%로 떨어진다. 그러나 엘리엇이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3% 이상으로 늘리면 임시 주주총회 소집요구권을 가질 수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넘어 그룹 전체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을 할 수 있는 뜻이다.

삼성물산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말한다. “주식 보유기간이 반 년도 안된 헤지펀드가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간섭을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대기업을 흔들었다고 엘리엇을 마치 지배구조 개선의 전도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기업들도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건 사실이에요.”

삼성물산과 엘리엇이 벌인 공방 과정에서 ISS는 물론,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일부 기업과 소액주주들이 엘리엇 편에 가세했고 일부 정치권도 반 삼성진영에 섰다. 삼성으로선 주주가치 보호와 반재벌 정서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고민과 해법을 내놓을 필요성이 커졌다.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은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어 제 2, 제 3의 엘리엇의 공격에 노출돼 있다. 삼성은 거버넌스 위원회 도입 등 주주권익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정 직후, 삼성물산의 주가는 곧바로 하락해 당일 10% 이상 떨어졌다.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 1조원 가까이가 사라졌다. 그만큼 주주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개미라고 불리는 국내 소액주주들은 이 같은 상황을 보면서 순진한 자신들의 모습과 엘리엇의 행동력을 비교해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지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