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30대 그룹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바로 효성 이야기다. 다른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며, 그리고 신사업을 확보하겠다며 동분서주할 때도 효성은 묵묵히 자기 우물만을 팠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지 않으면 곧 도태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효성은 꾸준히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왔다.
효성이 주목받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효성의 주력사업이 첨단산업과는 거리가 먼 섬유산업이기 때문이었다. 섬유산업은 우리나라에서 한참 전에 활황 사이클이 지나가 현재는 사양산업이란 인식이 자리 잡은 분야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이 거의 20%에 달했지만, 현재는 3%대 초반으로 거의 7분의 1토막이 난 상황이다. 하지만 효성은 미련하리만치 섬유 사업에 집착했다.
실적 고공행진의 시작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가던 효성이 깜짝 실적을 내놓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였다. 2012년까지만 해도 2,000억 원 수준에 머물렀던 연간 영업이익이 2013년에는 4,859억 원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2014년에는 영업이익이 6,000억 원을 넘어섰다. 불과 2년 사이에 영업이익이 거의 세 배나 뛴 셈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더 빠른 증가세를 타고 있다. 지난 1분기 2,22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갱신한 효성은 지난 7월 있었던 2분기 실적발표에서 1분기를 뛰어넘는 2,550억 원 영업이익을 기록해 화제를 모았다.
2,550억 원 영업이익은 효성이 2012년 1년 전체동안 올린 영업이익 2,231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시장에서는 올해 효성의 연간 영업이익 규모가 9,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주목할 만한 건 패키징 사업 부문 등의 매각으로 전체매출액이 조금 줄어든 상황에서도 영업이익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영업이익률은 더 급증했다. 2012년 1.8%에 불과하던 효성의 영업이익률은 2014년 5%로 껑충 뛰었다. 지난 1, 2분기에는 이 비율이 무려 8%까지 치솟았다.
스판덱스 세계 1위
효성의 영업이익률이 급등한 건 섬유사업 부문에서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섬유사업 부문 매출이 효성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채 안 되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섬유사업은 효성의 주력사업이자 알짜사업으로 통하고 있다. 올상반기에는 이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21%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섬유사업 부문에는 전통적인 원사제품인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고부가가치 상품인 스판덱스 등이 포함돼 있다.
섬유사업에서의 높은 성장은 다양한 고기능성 스판덱스 섬유의 개발과 상용화가 주도했다. 생산 규모 역시 크게 늘어 규모의 경제 효과로 마진율이 크게 상승했다. 효성은 1992년 세계에서 네 번째, 국내에선 첫 번째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해 현재는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전략으로 중국, 베트남, 터키, 브라질 등 세계 주요 시장에 생산시설을 건설하면서 2010년부터는 스판덱스 세계 1등 기업으로 올라섰다. 2010년 이후에는 스판덱스 세계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어서고 있다.
1992년 효성의 스판덱스 개발은 당시 침체된 국내 섬유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스판덱스는 고기능성 합성섬유로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판덱스는 원래 길이의 5~8배나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줄과 비슷하지만, 고무줄보다 가볍고 내노화성(耐老化性·기능이 오래 지속되는 성질)이 강해 강도가 3배 정도 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스판덱스는 거의 모든 의류 소재로 큰 인기를 끌면서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폴리케톤 세계 최초 개발
외부 시장 환경 변화도 효성의 수익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효성 화학사업 부문에서 원재료로 많이 쓰이는 프로판 가격이 하락하면서 해당 사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됐다. 효성의 대다수 화학제품은 유가와 연동돼 시장가격이 형성되는데, 최근 유가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서 제품 판매가가 올라간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원가는 낮아지고 판매가는 높아지면서 겹경사를 맞았다는 얘기다.
효성의 화학사업 부문 중에선 특히 폴리케톤이 눈길을 끈다. 효성이 2013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폴리케톤은 대기오염 물질인 일산화탄소를 사용해 만드는 고기능성 친환경 신소재이다. 기존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인 나일론이나 PBT에 비해 230% 이상 우수한 충격강도를 가지고 있어 플라스틱 대체재로 주목받으며 자동차용 휠 커버, 엔진 커버 등의 제작에 사용되고 있다. 효성은 폴리케톤 상용화에 따라 2020년까지 1조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전후방사업까지 포함하면 폴리케톤의 부가가치가 최소 10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타이어코드 사업의 질주
산업자재사업 부문의 주요 상품인 타이어코드 Tire Cord 는 상품 가격 하락으로 전분기 대비 실적이 줄어들긴 했지만, 전년 동기에 비해선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타이어코드는 타이어 고무 층에 들어가는 핵심 섬유로, 타이어에 걸리는 하중을 지탱함과 동시에 내구력, 고속 안정성, 조정 안정성 같은 타이어 품질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품이다.
효성은 현재 세계 유수의 타이어 업체들로부터 인정받는 타이어코드 제조사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효성은 특히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동 부문 시장점유율이 45%나 된다. 최근 효성은 신소재인 PEN, 라이오셀 등을 타이어코드 재료로 사용해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세계 주요 타이어 제조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아직 보여줄 게 더 남았다
이처럼 높은 실적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효성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시장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효성은 2013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배나 뛰었음에도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해 주가가 수년째 6만 원에서 7만 원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효성 주가가 실적 모멘텀을 반영하며 고공행진을 시작한 게 올해 3월부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2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주가가 움직인 셈이었다. 효성의 주가는 올해 6월 역사적 최고점인 15만 4,000원을 찍으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 갱신을 자축했다.
효성처럼 무거운 종목이 짧은 시간에 2배 넘게 상승하면서 단기 고점 논란이 일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도’이다. 효성의 실적 상승세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승재 동부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습니다. 지난해까지 이익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중공업과 건설사업 부문에서도 실적 개선세가 뚜렷해지고 있거든요.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타이어코드도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상승으로 실적 상승 기울기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가장 큰 수익을 안겨주고 있는 스판덱스는 여전히 업사이클이고 하반기 증설 이슈도 가지고 있습니다. 폴리케톤 역시 시장이 확대되면서 더 큰 성장을 보여줄것이라 확신합니다.”
기술 개발을 향한 효성의 집념
효성이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섬유사업에서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효성의 기술 개발 집념이 강하게 작용했다. 효성은 예전부터 기술 개발에 대단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1971년 국내 최초의 민간기업 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정부에서 기술연구소 설립을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추진한 게 1978년부터였으니 효성이 얼마나 기술 개발 부분에 선제적인 투자를 해왔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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