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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영국 BBC 경영혁신
입력1999-03-21 00:00:00
수정
1999.03.21 00:00:00
거대한 조직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요인이 작용해야 한다. 특히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의 변화는 더욱 어렵다. 정부의 정책, 방송사 내부의 저항, 그리고 여러가지 정치·경제·문화 상황에 따라 변화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컨텐츠(CONTENTS)로 승부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경쟁 무기로 하는 방송사의 경영혁신은 단순한 경제성과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많은 요소들이 추가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지난달 26일 방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방송개혁안을 놓고 각계각층의 논쟁과 새로운 대안제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TV방송사의 혁신이 여러 부문에서 다각도로 이뤄지고는 있지만, 내·외부의 많은 제약요인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영방송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영국 BBC의 경영혁신 당시의 환경과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환경이 매우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방송 정책과 환경
영국의 방송은 전통적으로 의회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공공 서비스(PUBIC SERVICE)라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대처 정부하에서 제정된 90년 방송법은 경쟁과 선택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시장원리를 대폭 도입함으로써 상업방송의 새로운 체제가 출범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당시 영국 방송정책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방송정책의 점진적인 전개이다. 이는 경험과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생활방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의회중심 정책결정 구조의 영향이다.
둘째, 영국 방송의 특징은 공공서비스와 상업주의의 혼합된 형태라는 점이다. 상업방송이 있음에도 방송의 공영성만이 강조되는 우리나라의 방송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현실적으로 방송의 공영성뿐 아니라 상업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영국의 방송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와 같이 중앙집중적이고 전국적이다. 미국의 방송이 지역 중심적으로 발전되었고 방송사들이 네트웍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넷째, 영국 방송의 영향력이 유럽지역이 아닌 북미에 미친다는 것이며, 이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미국과의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라는 동일한 실체를 활용하는 방송산업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한층 더 나타내 주는 것이다.
다섯째, 방송정책이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상업방송의 도입 및 디지털·위성 방송의 도입과정에서 매우 신중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책이 입안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영국의 방송 정책이 주로 보수당에 의하여 주도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보수당이 오랜 동안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영국의 방송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방송정책 전반에 가장 큰 획을 긋는 사건은 바로 마가렛 대처의 집권이었다. 79년 총선거를 통해 대처 정권이 출범하면서 영국은 방송 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커다란 소용돌이에 직면하게 된다.
대처 정부의 신우파(THE NEW RIGHT) 논리는 곧바로 방송분야에도 적용되면서 방송을 경제와 산업의 일부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대처 정부는 탈규제와 상업화라는 개념을 방송정책의 기본틀로 설정하고 공영방송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BBC에 대한 시각도 단순한 비판 차원을 넘어 적대적 공격대상으로 여기는 쪽으로 변하면서 BBC의 민영화론까지 거론될 지경이었다.
이 시대에 BBC는 크게 두가지 사건을 겪는다. 새로운 공영방송의 방향을 제시하는 피콕위원회(PEACOCK COMMITTEE)의 보고서와 BBC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버트(JOHN BIRT)의 사장 취임이다. 피콕보고서는 대처정부 제1기(79~83년) 및 제2기(83~87년)의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만들어졌다. 이 보고서의 이론적 틀과 권고사항은 86년이후 보수당 정부에 의해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였고, BBC의 경영에 구조개편, 사업방송 분야의 규제완화, 시장 주도적인 케이블 방송 및 위성방송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 특히 BBC는 변화를 게을리할 경우 공영방송의 면허(ROYAL CHARTER) 갱신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몇몇 고위 경영진의 교체가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93년초 BBC의 경영혁신을 주도하던 버트 부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는 BBC의 경영혁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버트 사장은 방송사의 경영혁신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경영혁신에도 최고 경영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예로 설명된다.
선택의 확대 (EXTENDING CHOICE) 탄생
92년11월24일 영국 정부는 1단계 방송정책을 밝힌 「BBC의 미래(THE FUTURE OF BBC)」를 공식 발표했다. 이에 이어 이틀후 BBC는 「선택의 확대(EXTENDIG CHOICE)」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에 대응한 BBC의 정책을 제시했다.
80년대 들어 BBC는 재정적자, 관료적 조직의 비효율성, 방만한 경영 등을 이유로 대처 정부로부터 유무형의 각종 비판과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BBC 자신도 격변하는 방송 환경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BBC의 미래」는 이에 대해 다채널 다매체의 새로운 방송 환경에서 BBC가 공영방송 본연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위상 재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보고서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수신료 재원의 불안정성을 인정하면서도 광고도입과 같은 대안은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BBC의 미래 역할과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포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뚜렷한 변화의 요소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BBC는 이에 대응, 「선택의 확대」라는 보고서를 통하여 새로운 방송환경에 대응하는 BBC의 정책을 제시했다.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 BBC는 공적 목적을 추구하여야 한다. 즉 상업방송에서 불가능한 프로그램과 서비스에 대한 제작을 보장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선택을 확대시켜야 한다. ②BBC의 공적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국가적 쟁점에 대한 정확한 보도, 문화를 표현하는 프로그램, 교육기회의 창출, 영국과 다른 국가들간의 교류활성화를 도모하는 수준높은 프로그램의 제작과 방송에 BBC의 기술과 자원을 집중 투자하여야 한다. ③BBC는 차별화되고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하여 단일 방송기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④BBC는 능률과 비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수신료에 대한 뚜렷한 가치를 입증하여야 한다. ⑤BBC의 핵심 서비스는 수신료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나 2차 배급시장에서 유료가입제 등 수신료를 보완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여야 한다. ⑥BBC는 면밀한 실행 목표의 수립과, 공익의 신탁자이며 규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경영위원회의 기능을 통해 수신료 납부와 의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즉 이 보고서의 핵심은 시청자, 정부, BBC가 모두 과거의 제한적이고 규제적인 선택의 권한을 확장하여 새로운 방송환경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BBC만이 제작하여 방송할 수 있는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시청자 선택의 확대,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의 차별화된 방송정책을 통한 정부 선택의 확대, 그리고 공영방송 규제완화 및 내부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BBC 선택의 확대가 그 골격이 된다.
정부의 「BBC의 미래」와 BBC의 「선택의 확대」가 발표된 이후에 BBC는 93년4월 정부의 보고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제출하였다. 이를 위하여 BBC는 영국 전역에 걸쳐 57회의 공청회를 개최하였으며, 공영방송의 실질적인 주인인 시청자들과 BBC의 최고 경영층이 직접 대면하여 입장을 교환하였다. 이외에도 약 2,000명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2회에 걸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실질적인 BBC의 경영혁신의 청사진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버트 사장이다. 새로 취임한 버트 사장은 93년1월11일 자신의 경영방침을 통하여 BBC의 혁신적인 구조개편, 경영효율화 추진, 프로그램 편성전략 등을 공표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인 피터 브룩은 신임 사장인 버트의 계획에 적극 찬성하였으며, 정부 차원의 지지를 표명하였다.
BBC의 조직구조 개편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프로듀서 선택제(PRODUCER CHOICE)로 불리는 조직개편의 근간은 모든 조직에서 새로운 경영 및 회계 방식을 도입하여 비용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조직을 내부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재편하여 제작지원, 기술, 행정서비스 부서를 통하여 제작 지원본부를 신설하고, 프로그램 편성과 제작의 책임을 분리하여 철저하게 비용개념에 입각, 계약위주의 거래가 이뤄지는 관계로 재정립했다. 또 제반 간접비를 포함하는 원가개편에 입각하여 프로그램 제작부서와 제작지원부서의 투명한 거래체제를 확립했다. 결국 BBC내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의 지원관계를 내부시장에서의 거래에 기준하여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이에 따라 BBC는 크게 네가지의 혁신 테마를 선정해 추진했다. 첫째가 경영위원회이다. 공영방송으로의 기능을 관리 감독하고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기구의 권한 강화방안이다. 둘째, 내부경영효율성 강화를 위해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프로듀서 선택제이다. 셋째, 프로그램의 세계화이다. BBC프로그램의 세계화를 통한 프로그램 경쟁력 강화 방안이다. 넷째, 편성전략의 강화이다. 프로그램의 이해관계자인 BBC-시청자 -제작진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방송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기본적인 체계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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