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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롯데홈쇼핑

사면초가에 내몰린 롯데홈쇼핑

임원 뒷돈비리에 혁신 나섰지만 협력사 "변화 없어" 반응 냉랭

내년 재승인 심사 '퇴출 0순위'

'옴니 채널' 전략 차질 우려에 그룹내 시선도 예사롭지않아



롯데홈쇼핑이 진퇴양난이다. 올해 초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전·현직 임직원 10명이 구속되는 사태를 겪은 뒤 부랴부랴 내부 혁신에 나섰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서다. 밖으로는 납품 비리와 불공정 판매로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고 있고 내년 5월 방송통신위원회의 홈쇼핑 재승인 심사에서 '퇴출 0순위'라는 관측도 나온다. 내부에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역점사항인 '옴니 채널' 전략이 롯데홈쇼핑 때문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은 협력업체로부터 20억원의 뒷돈을 받고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신헌 전 대표를 비롯한 롯데홈쇼핑 전·현직 임직원 10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롯데홈쇼핑은 20년 남짓한 국내 홈쇼핑 역사에서 사상 최악의 비리를 저지른 회사라는 오명을 얻었다. 2006년 우리홈쇼핑 인수 당시만 해도 홈쇼핑 시장의 '값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8년 만에 '갑질 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뒤늦게 내부 혁신안을 마련하고 변화를 모색중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납품 비리가 불거진 지난 4월 이후 롯데홈쇼핑이 언론에 배포한 20여건의 보도자료 중 '내부 혁신'과 관련된 내용은 절반에 이른다. 전 임직원이 모여 윤리헌장을 발표하고 협력사와 소통하는 전담 인력을 마련하고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까지 도입했지만 정작 허울만 좋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홈쇼핑에 상품을 공급하는 한 납품업체의 임원은 "납품 비리가 불거졌을 때 잠깐 담당자의 자세가 달라졌을 뿐 시간이 지나니 원래의 고압적인 태도와 일방적인 지시로 돌아갔다"며 "신동빈 회장까지 나서 롯데홈쇼핑의 혁신을 주문한 걸로 아는데 협력사 상생과 관련해서는 바뀐 게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룹 내에서도 롯데홈쇼핑은 '미운 오리새끼' 신세다. 롯데는 2006년 4,700억원을 들여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뒤 홈쇼핑 시장에 야심차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경쟁사 따라하기 위주의 전략에 급급한 나머지 별다른 차별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CJ·GS·현대홈쇼핑(057050)에 이어 만년 4위에 머물고 있다. '유통 공룡'인 롯데지만 유독 홈쇼핑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차세대 성장동력인 '옴니 채널'도 롯데홈쇼핑 때문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최근 그룹 차원에서 택배사업 진출까지 검토하며 옴니 채널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잇따른 악재와 성장 정체에 놓인 롯데홈쇼핑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유통산업에 익숙한 롯데그룹이 홈쇼핑에 진출하면서 기존의 관행을 답습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홈쇼핑 고유의 DNA를 발현하지 못하고 안일한 자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롯데홈쇼핑이 단기간에 주도권을 꿰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홈쇼핑은 내년 5월로 예정된 홈쇼핑 재승인 심사에서도 '퇴출 0순위'로 꼽힌다. 방통위에선 불공정행위를 일삼는 홈쇼핑에 대해 재승인시 불이익을 주겠다며 퇴출마저 불사하겠다는 초강수를 내비친 상태다. 내년에 정부 주도로 출범하는 '제7홈쇼핑'도 롯데홈쇼핑의 퇴출을 압박하는 요소다. 신규 사업자를 도입하는 것 못지 않게 부실 사업자를 퇴출하는 선례가 마련돼야 홈쇼핑 시장의 구조적인 병폐를 뿌리뽑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롯데홈쇼핑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당초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으로 출발한 롯데홈쇼핑이 본래의 역할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 당연히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시켜 홈쇼핑업계 전체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선도 예사롭지 않다. 앞서 홈쇼핑업계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마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은 대규모유통법을 적용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홈쇼핑업계의 실태를 들여다보니 마치 '불공정행위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며 "과거에는 대부분 경고나 시정명령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과 교수는 "대표이사부터 말단 사원까지 납품 비리로 구속된 것은 개인이 아닌 홈쇼핑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홈쇼핑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롯데홈쇼핑을 재승인 심사에서 퇴출시키는 일벌백계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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