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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10월 23일] 벤츠 타야 대접받는 '벤처'

"단지 차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 실력이 모자란 것처럼 보이니 부담스럽더라도 차량 한대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생 정보기술(IT)벤처 업체를 운영하는 30대 초반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얼마 전 기자를 만나 수입차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 회사 형편을 딱히 아는 처지라 뜻밖의 결정에 대한 배경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바로 주차권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 회사의 부사장은 구매처인 대기업을 찾아갔다가 상담을 마친 후 주차권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차가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성공적인 구매상담으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일순간 냉랭해졌고 곧바로 "회사에 차도 한대 없나 봐요"라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부사장이 차량도 없는 회사라면 별 볼일 없겠다는 대기업 담당자의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보이더라고 하더군요. 평소 사장이 겪던 고충을 임원까지 겪는다고 하니 없는 살림을 쪼개서라도 회사차를 타고 다니라고 지시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많이 성숙되고 기업환경도 좋아졌다고 하지만 벤처 사장들을 만나 아직까지 화려한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업분위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민을 토로하는 사례를 접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느 벤처기업 CEO는 성공적인 창업조건의 일순위가 차량이라며 설령 실패하더라도 재기를 위해서는 절대 벤츠를 팔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창업 후배들에게 교훈처럼 들려준다고 전했다. 차량뿐만이 아니다. 비록 매출이 없더라도 임대료가 비싼 강남에 사무실을 임대해야만 계약이나 투자를 이끌어 내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이야기는 벤처업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임직원들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가격이 회사실력과 비례하고 사무실의 위치가 회사의 입지를 대변한다는 믿음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우리 벤처생태계의 현실이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초 1인 창조기업 육성책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 CEO들을 대학강단에 세우는 등 청년창업 활성화의 바람을 일으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창업활성화는 그러나 청년 개개인이 벤처정신만 갖춘다고 이뤄질 일은 아니다. 패기와 아이디어만 믿고 맨손으로 창업에 뛰어든 이들이 '벤처정신'이 아닌 '벤츠를 사는 호기'가 성공의 비결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기업가 정신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들의 벤처정신을 강조하기에 앞서 실제 벤처기업이 기업가 정신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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