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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22일] 포르투갈, 세우타 점령


1415년 8월22일, 아프리카 서북부 이슬람 항구도시 세우타가 포르투갈 수중에 떨어졌다. 선박 238척에 분승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온 4만5,000여 병력이 공격을 시작한 지 7일 만이다. 세우타 점령은 세계사의 흐름을 갈랐다. 유럽이 주도하는 대항해시대와 지리상의 발견, 식민지 건설 경쟁이 봇물처럼 터졌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탐낸 이유는 두 가지. 종교와 돈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있다는 전설 속의 기독교 왕국을 찾아내 이슬람을 협공하고 후추 같은 향신료를 확보하자는 계산에서다. 세우타가 10세기부터 순도 높은 금화를 주조한 금의 산지라는 점도 포르투갈의 정복의욕을 부추겼다. 점령 직후부터 포르투갈은 세우타 금화를 그대로 본떠 포르투갈 금화를 찍어냈다. 아프리카의 금이 포르투갈에 쏟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유럽 각국을 바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세우타 점령은 스타도 낳았다. 공격을 주도한 21세의 엔리케 왕자는 유럽 각국으로부터 군대를 맡아달라는 청을 받았다. 엔리케의 선택은 바다. 각국의 청혼을 마다하고 조선소와 해양연구소를 건설하고 대양 항해에 적합한 카라벨선을 개발했다. 왕위에 오른 적은 없지만 ‘항해왕’으로 기억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기반으로 점점 남쪽으로 내려갔다. 바닷물이 펄펄 끓는 죽음의 장소라는 적도 부근의 대양을 지나 1498년에는 희망봉을 찾아냈다. 인도로 가는 뱃길이 열리고 스페인과 네덜란드ㆍ영국의 경쟁 속에 유럽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세우타 점령은 세계화의 첫발이었던 셈이다. ※ 바로 잡습니다 본지 8월21일자 '오늘의 경제소사'에서 소개한 LTCM 위기 발생일은 1997년 8월21일이 아니라 1998년 8월21일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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