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인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의 개선 대책이 30일 드디어 발표됐다. 고령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의료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점이라 실손보험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금융 당국이 이날 내놓은 개선종합대책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서울경제신문은 이에 따라 발표된 대책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이를 계기로 실손보험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번 실손보험 개선안은 큰 틀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등 고객 편익을 높이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그간 결합상품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이번 대책으로 2만원대 전후의 저렴한 단독 상품을 가입할 수 있게 됐다.
특히 금융 당국이 자기부담금을 20%로 높이는 대신 보험료를 더 낮춘 상품을 허용한 점은 실손보험 가입자 2,500만명(올 4월 말 기준) 시대를 맞아 다양한 상품으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의지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험료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이 미흡한 것은 문제다.
금융 당국은 보험사에 청구된 보험금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급여 부문을 줄이기 위해 영수증 표준화, 수가 기준 마련 검토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행시기를 못박지 않아 향후 얼마나 계획대로 추진될지 불투명하다. 이번 대책이 외형적으로 풍성해보이는 만큼 보다 더 내실을 다지기 위한 추가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품 가짓수 늘려 고객 편익 확대=금융 당국이 단독 상품을 허용한 이유는 기존 실손보험에 거품이 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실손보험이 장기보험 내에 특약 형태로 가입하도록 돼 있어 아무래도 보험료 인상의 원인인 손해율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금융 당국으로서는 앞으로 상당 기간 단독 상품의 시장 연착륙을 위해 업계 분위기를 다잡아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험료 갱신주기도 3년에서 1년으로 조정한 만큼 보험료 인상 이유도 이전보다 보다 꼼꼼히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가입할 수 있는 상품 가짓수가 많아졌다.
특히 평소 잔병치레가 없는 고객이라면 자기부담금을 높인 대신 보험료를 더 낮춘 상품에 가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매년 보험료 인상폭을 최대 25%로 제한했다"며 "고객들로서는 매년 실손보험 상품 간에 보험료 인상폭을 비교할 수 있어 보험사들이 인상을 자제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금융 당국의 시장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
한 손보사 고위 관계자는 "단독상품과 기존 결합상품의 판매가 정책 당국의 간섭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시장 자율이 침해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율 억제 근본 대책 필요=이번 대책에서는 또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실손보험의 보장 기간을 15년으로 제한한 것도 눈에 띈다. 업계에 '100세 보장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지만 고령자의 계약 유지가 어렵고 고객 입장에서도 보험의 보장 내용과 기간을 15년마다 융통성 있게 조정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문제는 보험료 인상의 원흉이라 할 병원의 진료비 과다 청구 억제 대책이 기대 이하라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그간 비급여 항목 코드화, 비급여 의료비 확인장치 마련 등을 줄곧 요구해 왔지만 이번에도 금융 당국은 내년 중에 추진하겠다는 선에서 머물렀다.
의료계의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예상됐던 변수라는 점에서 면피 구실이 되기는 어렵다. 한 대형 손보사 대표는 "비급여 의료비의 청구 내용 확인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할 법적 근거와 관리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이번에도 흐지부지돼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sed.co.k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