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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차단 실패… 심해 '판도라 상자' 건드렸나 불안 확산

[글로벌 포커스] 멕시코만 원유유출 악화일로<br>수심 1,500m 달해 빛도 없고 수압 높아 사고위험<br>각국 대책없이 개발에만 전념… 안전 투자 늘려야


이달 7일. 미국 휴스턴 외곽에 위치한 BP 통제실에서 엔지니어들은 숨을 죽인 채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해 로봇을 통해 송출된 영상에는 높이 12미터, 무게 100톤에 이르는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잡혔다. 돔 모양의 대형 구조물은 조심스럽게 멕시코만의 심해로 끌어 내려졌다. BP의 경영진들은 이번 작업이 성공하면 하루 5,000 배럴씩 바다 속으로 쏟아지는 원유의 80%이상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실패 원인이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형성되면서 기계 작동을 방해했다. BP의 최고경영자(CEO)인 토니 헤이워드는 "심해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아직도 엄청나게 많다"며 "위험 상황과 실제로 맞닥뜨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20일, 미시시피강 하구에서 80㎞ 떨어진 멕시코만 해상 석유 시추시설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시추선은 이틀 뒤 침몰했고 막대한 양의 원유가 멕시코만으로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고 소식은 연일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석유 가격에 미칠 영향, 사고 책임 소재, 환경 오염 규모와 BP가 입을 경제적 손실 등에만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원유 유출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자 호기심은 두려움으로 돌변하고 있다. 두려움은 인류가 심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심해 자원개발이 얼마나 무모하게 이뤄졌는지, 또 얼마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지를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앞마당에서 벌어진 생소한 사고를 언제쯤 수습할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이번 사고 현장은 심해 1,500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정도 깊이라면 빛이 전혀 들어가지 못해 칠흑 같이 어둡다. 환경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사방 1㎠의 면적에 160㎏이상의 압력이 가해진다. 잠수함을 찌그러뜨리고 유압 시스템은 금새 망가지고 만다. 온도는 섭씨 4도다. BP는 폭발사고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조차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해에 존재하는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급작스런 기화(氣化)가 원인이었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각종 가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인류가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고로 유출되는 원유가 하루 10만 배럴 규모로 미국 정부의 추정치보다 최대 20배나 많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방재 시스템 부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사고 수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발표하고, BP의 헤이워드 CEO가 "7~10일 안으로 원유 유출을 막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희의론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정부와 BP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심해 폭발 사고는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라며 "멕시코 만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아프리카의 앙골라 해상이나 브라질 해상 등 지구촌 다른 곳에서 빚어졌을 것"이라며 심해 유전개발의 위험을 경고했다. 심해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자원의 신천지였다. 20여년 전만 해도 1,500미터 이상의 심해 자원에는 인간의 손이 미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막대한 양의 심해 자원을 펌프처럼 마구 퍼 올리고 있다. 채굴 기술의 급속한 발전, 원유 업체의 개발 욕구, 미국의 채굴 허용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최근 2년간 새로 발견된 10개 대형 유전 가운데 6개는 심해에 자리잡고 있다. 10년 후 에너지 수요는 지금보다 1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심해 자원 개발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 가운데 6%는 심해 유정에서 나온다. 정보 제공업체인 IHS CERA의 애널리스트인 피터 잭슨은 "앞으로 20년 안에 이 비율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해 유전 개발은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은 지난 1995년 법을 개정해 심해유전에서 징수했던 로열티를 면제해줬다. 이에 따라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멕시코만에서 해상 유전 개발 붐이 일어났다. 전세계서 개발된 심해 유전의 절반은 미국 근해에 자리잡고 있다. 심해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미국 원유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지난해 연방정부가 승인한 해상 유전의 평균 깊이는 2,114피트(약 644미터)다. 이 보다 깊은 심해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고가 발생한 BP의 '마콘도 유전'은 심해 1,500미터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마콘도 유전 옆에는 이탈리아 석유회사 ENI가 소유한 심해 유전이 가동되고 있다. 문제는 이번 BP 원유 유출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심해 자원 개발의 위험에 대한 준비가미흡하다는 데 있다. 원유 개발 업체들은 수 십 년 간 심해 자원을 채굴해 왔지만 큰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다. 당연히 위험에 대한 인식도 낮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 업체는 심해 석유 개발 및 로비에 수백억 달러를 지출하면서도 안전과 관련된 기술 개발에는 수천만 달러를 투자하는데 그쳤다. 그래서'푼돈'이나 다름 없는 돈을 그저 생색내기 차원에서 지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나마 지금까지 확보한 심해 관련 기술은 턱없이 무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선박을 동원해 헬리콥터로 화학 분해제를 살포했고, 수백㎞에 이르는 오일 방제 펜스를 치거나 인부를 고용해 바닷가로 밀려든 기름을 제거하는 게 고작이었다. PFC에너지의 로빈슨 웨스트 회장은 "석유 업체가 해상 원유 개발에 나서면 나설수록, 자원개발에 투입하는 자금에 비례해 폭발 사고와 같은 안전 유지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해에 대한 인류의 무지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해 자원개발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에라 클럽의 아탄 마누엘 이사는 "심해 자원 개발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면서 "재해 대책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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