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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0월 2일] <1516> 증기선 운코마루


1855년 10월2일,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 시나가와 앞 바다. 길이 16.36m, 폭 3.3m짜리 실험선이 연기를 내며 달렸다. 운집한 군중은 불이 붙은 것으로 생각했으나 배는 증기선이었다. 옆구리에 달린 외륜을 돌려 전진은 물론 후진까지 소화해내자 박수갈채가 터졌다. 일본 최초의 증기선 운코마루(雲行丸)가 선보인 순간이다. 미국 페리 제독의 강압에 따라 억지로 개항한 지 불과 1년3개월 만에 등장한 증기선 건조가 시작된 것은 1851년. 네덜란드의 조선기술 책자를 일본어로 번역한 여섯 권짜리 '수증선설략(水蒸船說略)'을 기초로 표류 중 미국 포경선에 구조돼 조선술을 익히고 돌아온 기술자의 경험이 더해져 4년 만에 엔진 설계에서 본체 건조까지 순수 국산 증기선을 만들었다. 놀라운 점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곳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사쓰마번이었다는 사실. 부유한 '유한(雄藩)'이라고 해도 276개 번 가운데 하나였던 사쓰마는 서양식 선박뿐 아니라 조선도공 후손들의 도자기 가마를 활용한 근대식 용광로까지 제작하고 면직과 유리공업을 키웠다. 일본이 부국강병에 매진한 데도 사쓰마번의 근대화 노력이라는 경험이 깔려 있다. 국산 증기선의 성공에도 사쓰마는 물론 막부와 각 번은 외국제 군함을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운코마루가 의전용으로 사용될 만큼 기능을 했지만 보다 고성능을 원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평양군민에 의해 대동강에서 불타 가라앉은 미국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를 인양해 복제에 실패했던 1867년 무렵 일본 막부와 7개 번은 모두 90척의 서구식 전함을 운영했다. 증기선 운코마루는 개항 이전부터 싹트고 있던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한다. 조선은 제너럴셔먼호 복제에 한 번 실패한 뒤 서구기술을 배우려는 생각을 아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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