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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건설사 공공입찰도 막혔다] 유동성 최악인데 수주 어려워져 '그로기'… 정부가 숨통 터줘야

중대형사 대부분 포함돼 매출 10조 이상 타격<br>취득세 감면 등 조속처리·SOC 투자 확대를

정부가 부정당업체를 무더기로 지정, 입찰제재에 나서고 있는데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까지 줄어들면서 국내 건설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고 고사위기에 직면했다. 국내의 한 건설사가 수행하고 있는 교량 건설 현장. /서울경제DB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정부가 나서서 경기부양책이라도 내놓았는데 지금은 공공공사 수주 길마저 막아버리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대형 건설사에서 공공 부문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모 과장은 잇따른 건설사 영업정지 조치에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입찰을 준비하고 있던 인천공항 3단계 공사도 포기해야 할 판이다. 지금까지 수주를 위해 준비했던 작업이 모두 헛일이었다고 생각하니 허탈감마저 느낀다.

김 과장은 "15개월 동안 영업이 정지되면 공공수주 인력은 그 기간 동안 할 일 없는 잉여인력이 된다"며 "이 때문에 최근 '영업쟁이'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무더기 부정당업체 제재로 가뜩이나 휘청거리던 건설업계가 '그로기'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주택시장 회복이 더딘데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공공수주 길까지 막히면서 '돈 나올 구석이 없다'는 하소연까지 들린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유동성 위기로 기초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터진 악재는 업계의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건설사들은 주택사업 부진, 해외건설 수익성 악화 등으로 현금흐름 등 재무상황이 최악"이라며 "버틸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제재…알 만한 업체는 모두 영업정지=이달 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비롯해 조달청,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잇달아 건설업체를 부정당업체로 지정해 제재를 가하면서 10대 건설사 대부분을 포함한 50곳에 달하는 건설사가 짧게는 3개월에서 최대 15개월의 영업정지를 당했다.

과거에도 담합이나 입찰서류 허위제출 등으로 건설사들의 공공 부문 영업정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50곳에 이르는 업체가 한꺼번에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것은 초유의 일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3~4개월 영업정지는 발주물량이 적은 겨울철에 적용될 경우 감내할 수도 있지만 6개월이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공공수주 비중이 높은 중견 건설사는 하루아침에 부도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영업정지 조치로 총 10조원 이상의 매출 타격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업체가 국내 건설업계의 중추라는 점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50개 업체의 국내 공사계약 실적은 총 57조8,890억원으로 전체(128조8,520억원)의 44.9%를 차지했다.

◇유동성 악화되는데 돈 벌 곳이 없다=건설업체들의 유동성 위기는 업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증권업계에 의뢰해 상위 100대 건설업체의 재무제표를 전수조사한 결과 회사가 정상적인 기업활동으로 차입금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지표인 총차입금 대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OCF) 비율이 -3.97%로 집계됐다. 대부분의 업체가 영업이익을 통해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얘기다.

핵심 자금조달원인 회사채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다. 건설사 발행 채권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다 웬만한 대형 업체가 아니면 발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실제로 두산건설이 지난달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2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7.8%로 지난해 9월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최근 발행한 3년 만기 회사채의 금리 3.39%, 3.96%와 비교하면 두배가 넘는 조달금리다.

결국 돈을 벌어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는 것인데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매출의 30~40%를 차지하는 주택 부문은 물론 토목 부문조차 정부의 SOC예산 삭감으로 수주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 상반기 공공공사 수주를 단 한건도 하지 못한 업체는 4,210곳으로 지난해 동기(4,029곳)보다 4.3%가량 늘었다.

◇건설위기 경제 전반 확산될 수도…적극적 지원 필요=건설업계의 위기가 심화될 경우 이는 국가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형 건설사들의 공공공사 입찰 금지가 현실화되면 당장 정부가 추진 중인 행복주택이나 대규모 공공SOC 사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또 국내 영업정지가 해외건설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취득세 영구감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법안 등의 조속한 처리는 물론 SOC 분야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SOC는 생산적 복지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SOC예산 증액이 어렵다면 민자사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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