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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9> 디자인, 핵심 의사결정 요소 되려면 세력 키워라


‘틀렸다’는 말을 하기는 정말 쉽습니다. 얼마 전 ‘디자인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나서 많은 질문과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디자인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동시에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계획’이나 ‘예측’과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규정부터가 틀렸다는 겁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고, 분석입니다. 요즘 미국의 디자인 전문가들 일각에서는 ‘디자인 사이언스’(Design Science)라는 표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저 창의적인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전문가 한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한 디자인이 아니라, 다양한 소비자들의 수요와 관심을 반영, 설득력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포괄한 개념입니다. 일단 어떤 디자인이 좋고 나쁜가를 이야기하는 기준 자체가 다양해질 수 있으니 업계나 학계에서는 환영할 만한 조류입니다. 무턱대고 ‘돈 잘 버는’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팍팍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디자인을 예술과 철학의 영역으로만 두지 않아도 되는, 효과적인 표현이 ‘디자인 사이언스’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말들이 각계에서 쏟아져 나와도 디자인 전문가들이 느끼는 한계와 현실의 각박함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우선 당장 회사 안에서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나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는 입장입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새로운 제품의 모습을 이야기해도 그 누군가는 ‘이미 있던 것’이라며 일축하기 일쑤입니다. 각 핸드폰 제조사의 디자인 연구소에 들어가면 바깥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꿈의 폰’이 정말 많다고 합니다. 물론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제품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디자이너들의 발상으로 만들어진 상품만이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무작정 ‘예쁜 디자인이 좋은 것이다’라는 성공공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업계 못지 않게 시장 구조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독특한 발상 두 가지를 함께 고민한 디자인이 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은 무언가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부분입니다.

정책 분야에서도 디자인이라는 표현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구’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도시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공공 디자인 등 한때 디자인의 대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대상들이 영역 안으로 포섭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말은 때때로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사결정자의 욕망이나 열정을 대변하는 단어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과거 봉건시대의 군주들이 이야기한 ‘아름다운 나라’가 사실은 토목과 대규모 공사로 얼룩진 나라였던 것처럼 말이죠. 그 와중에도 없는 예산에 디자인 진흥과 정책에 투자하고 있는 몇몇 공공기관의 노력은 사실 눈물겹습니다. 제대로 된 디자인이 시민들의 삶 속에서 정착되기 위해 힘을 기울이는 일 뿐만 아니라, ‘그게 뭐예요?’라며 생소하고도 야멸찬 시선을 보내는 기성 세력들에게 할 말을 준비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디자인 국회의원이 하나 있어야겠습니다.’ 얼마 전 기업에서 디자인 분야 고위 임원까지 지낸 어느 지인이 해준 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입법기관의 말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무엇인가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풍토에서는 디자인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기사 국회의원의 또 다른 표현은 대의사(代議士)이니, 전혀 틀린 접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비자는 말했습니다. 일단 이기고 싶다면 원칙과 가치를 중심으로 세력화를 하라고. 언제나 진실은 승리하지만 때로는 힘있는 자가 만든 ‘리얼리티(Reality)’가 더 설득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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