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 양국이 유럽 재정통합 수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가운데 5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어떤 통합안을 이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4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5일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유럽 재정통합 공동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도출될 공동안은 오는 9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으로 어떤 내용을 담을지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독ㆍ프 양국 정상은 유럽 재정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일 독일 의회에서 유럽 재정통합 구상안을 밝혔으며 사르코지 대통령도 1일 툴롱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차입 규정을 위반한 국가에 대해 빠르고 자동적이며 엄격한 제재를 취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독일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 발 깊이 들어가면 양국은 팽팽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양국 정상회담에서 얼마나 이견이 좁혀질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독일은 단계적인 재정통합을 추구하면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원국의 예산 및 재정지출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등이 감시하고 이를 위반한 국가는 유럽사법재판소(ECJ)와 같은 초국가적 기구가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회원국의 재정 주권은 개별국가에서 EC로 옮겨가게 된다. 독일은 이를 위해 EU 27개 회원국 모두의 합의를 도출해 EU 조약(안전성장협약)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메르켈 총리는 2일 의회 연설에서 "규정은 지켜져야 하고, 규정을 지키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결과가 따라야 한다"면서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독일 정부의 입장은 현행 EU '안전성장협약'에 명시된 재정기준을 위반한 회원국에 구속력 있는 제재를 가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협약은 회원국의 재정적자 상한선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 정부부채비율 상한선을 GDP 대비 60% 이내로 제시하고 있다. EU에 가입하려면 이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일단 가입된 후에는 이 기준을 위반해도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없다. 반면 프랑스는 개별국가의 재정정책에 대한 외부 개입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EU 조약 개정보다는 유로존 17개 국가 간 재정통합에 합의한 후 이 내용을 개별국가 헌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유로존 간 재정통합협정에는 정부 차입한도를 제한하는 '채무 제한(debt brake)' 등이 포함된다. 또 협정 위반 국가에 대한 처벌은 각국의 자율에 맡기거나 협정 체결국 수장들이 제재하는 선에 그친다. 사실상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방안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 안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해결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는 재임 중에 현재 'AAA'인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유로존 위기 해결이 "긴급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구속력 없는 통합이 오늘날과 같은 재정위기를 초래한 만큼 프랑스의 이 같은 주장은 맹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재정통합협정 내용을 각 국가 헌법에 명시하도록 각국이 의회를 설득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독일안 역시 EU 27개국을 설득하는 만만찮은 절차가 필요한 만큼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과 프랑스의 견해차를 감안하면 조약 개정이나 새로운 협정 체결에 대한 합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독ㆍ프 정상은 재정협정 외에 유럽중앙은행(ECB)의 채권시장 개입 확대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는 당초 ECB의 개입에 회의적이었으나 재정통합과 관련해 진전이 있을 경우 ECB 개입을 허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3일 유럽 각국 중앙은행들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2,0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IMF에 자금을 지원하면 IMF가 이를 이탈리아ㆍ스페인 등 재정위기 국가에 예방적 대출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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