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멀쩡한 우량기업이 한계기업으로 전락해버리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입니다. 정부가 당장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년 봄 무더기 도산사태를 맞아 제조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최근 실물경제 침체로 산업 현장마다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넘쳐나는 가운데 서병문 비엠금속 회장은 “요즘이 IMF 때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한껏 잠긴 목소리로 절박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서 회장은 특히 정부에 대해 “한두 가지 대책을 찔끔찔끔 내놓거나 만지작거리지 말고 가능한 모든 대책을 풀어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년 넘게 주물업계에 몸담아온 서 회장은 현재 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기중앙회 납품단가현실화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로 번지면서 중소기업계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 위기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보십니까. ▲주물업계에서만 최근 2개 업체가 부도를 냈습니다. 요즘 주물업체들은 1차 협력업체의 과도한 납품가 인하 요구에 납품중단으로 맞서느라 상당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업종에 상관없이 대체로 엇비슷한 실정입니다. 자금줄이 꽉 막히다 보니 당장 운영자금을 구하느라 하루종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사장들만 만나면 대출자금의 만기 연장이 안될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연말 자금대란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올빼미 공장’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주문은 줄어들고 비용은 많이 나가니 심야근무를 늘려 전기요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생각에서죠. 주물공장의 가동률도 60%를 채 넘기기 힘들다 보니 주3일 근무하는 데가 허다합니다.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중소기업들은 무엇보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대통령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꿈적하지 않는 게 은행입니다. 대통령이 멀리 브라질에 가서 금리를 내리라고 해도 요지부동입니다. 바로 실무자 책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대출사고가 나면 당장 실무자 퇴직금이 날아가는데 누가 선뜻 대출해주겠습니까. 이것부터 풀어야 됩니다. 이번 위기국면에서 대출한 은행원에 대해서는 악의가 없는 한 면책해준다고 말이 아니라 문서로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죠. -기업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은행 문턱이 높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은행들이 자금을 싸들고 와서 제발 써달라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대출회수에만 혈안이 돼 있죠. 진짜 급해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구둣발로 내치는 게 요즘 은행들의 행태입니다. 공공성을 외면한 채 이윤만 좇겠다면 사채업자와 다른 게 무엇이겠습니까. 은행이 주도해 기업 회생 여부를 판가름하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아이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은 먼저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을 즉각 그만두고 흑자도산을 방지하기 위한 신용경색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요즘 완성차업체 등이 공장가동을 줄이는데다 납품가격 인하마저 요구해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중소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대기업들은 혹시라도 이익을 냈다는 협력사 얘기가 들려오면 바로 결산서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익이 얼마 났으니까 납품단가를 그만큼 인하해라 이런 식입니다. 겨우 밥만 먹고 살 아갈 정도인데 무슨 수로 이익을 내서 그 돈으로 재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하겠습니까. 바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올라설 수 없는 이유죠. 저는 대기업과 협력사가 지금처럼 어려운 때를 대비해 공동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도요타가 도입한 방식인데요, 경기가 좋을 때 대기업과 협력사가 각각 50%씩을 부담해 돈을 모았다가 원자재 값 폭등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자는 겁니다. -중소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대기업보다 1차 협력사가 더 무섭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대기업과 특수관계를 맺고 있는 1차 협력사들은 요즘처럼 자금난이 심화되면 이를 미끼로 하청업체의 목을 조이곤 합니다. 납품대금을 제때 주지 않으면 자금압박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죠. 납품을 했다면 일단 대금을 결제한 후에야 납품가격이 높다, 낮다를 얘기해야 하는데 납품대금조차 주지 않고 이를 무기로 납품가를 조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심지어 납품했던 부품을 깎는 데 비용이 더 들어갔다고 공구손실비까지 공공연히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 공무원들이 통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한 고위관료가 공개 강연장에서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 험한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들이 워낙 어렵다 보니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것은 무엇보다 ‘과도한 감사’ 탓이 크다고 봅니다. 감사원에서 무리하게 감사라는 잣대를 들이밀다 보니 공무원도 섣불리 나서기를 꺼리고 있더군요. 공무원들이 책임지고 기업을 도와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먼저 조성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위기상황이 오히려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이끌어낼 좋은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금융권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조업에 대한 인위적이고 급격한 구조조정은 대량실업 등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구조조정이냐 아니면 임금은 줄이더라도 같이 가야 하느냐, 이 둘 중에서 고른다면 후자가 돼야 할 것입니다. 하루에 두 끼를 먹더라도 같이 가는 길을 선택해야 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정부가 물가만큼은 반드시 잡아줘야 합니다. -현재 중소기업 입장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또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장은 자금 문제고 근본적으로는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사업조정제도 개선, 외부감사 대상 축소 등 어느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도 꼭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비엠금속의 경우 서울사무소 근무직원에게는 월급을 조금 더 주고 있습니다. 물가가 지방에 비해 비싸니까요. 이제는 최저임금도 업종과 지역별로 차등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제시한 중소기업 공약은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다고 봅니까. ▲각종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등 경제 살리기를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특히 창업절차 간소화나 법인세 인하, 가업승계 상속세 완화, 공공구매제도 등은 어느 정도 공약이 이행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앞으로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나 납품단가 문제, 재래시장 활성화, 대ㆍ중기 상생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합니다.
▲1944년 경북 영주 ▲1967년 경희대 체육대 경기지도과 ▲1976년 육군 대위 예편 ▲1981년 경희대 경영학석사 ▲1984년~ 비엠금속 대표 ▲1997년~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 납품단가현실화특별위원회 위원장 ▲2008년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상임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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