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중국과 싸울 작정이라면 과징금이 2~3배 늘어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지난 달 25일 오후 베이징 장안지에의 작은 호텔에 30여개가 넘는 다국적기업들의 법무담당임원들이 중국 고위관리 한 사람을 기다렸다. GE, 지멘스, 마이크로소프트, 볼보, IBM, 미쉐인, 테트라팩, 인텔, 퀼컴, 다농 등 굵직한 다국적기업은 물론 한국 대기업의 법무담당임원들도 전날 반독점 위반사례를 자진신고하라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의 말을 들은 탓인지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이 날 쉬신위 NDRC 반독점국 국장은 최후통첩이라고 하듯 다국적기업들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중국의 반독점법이 도입 5주년을 맞은 지난 7월말 NDRC와 공상행정관리총국(SAIC), 상무부는 반독점법을 한층 강화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5년간 벼린 칼은 칼집을 빠져 나오자마자 거세게 다국적기업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분유업체에 6억7,000만위안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후 반독점 칼날은 수입자동차와 제약업계를 향했다. 또 유류, 통신, 은행 등의 업종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진출 우리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반독점법 강화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박제현 주중한국대사관 공정거래관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우선은 우리와 다른 법 조항 등을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분유에서 자동차까지 전방위 압박=반독점 조사 강화는 이미 시진핑ㆍ리커창 체제가 공식 출범하기전인 지난 1월부터 예고됐다. 지난 1월 삼성, LG 등 한국기업과 대만 치메이 등 6개 액정모니터 업체들이 가격담합 등의 혐의로 3억5,300만위안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이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반독점법 강화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2월 마오타이, 우량예 등 바이주 생산업체가 4억4,900만위안의 과징금을 맞은 후 외국계 분유업체를 거쳐 라오펑샹, 예위안 등 5개 유명 귀금속 업체에 1,000만위안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최근 들어 NDRC의 칼날이 향한 것은 수입자동차업체와 합자자동차회사. 중국자동차유통협회를 앞세워 수입차의 중국내외 가격 차이는 물론 합작회사의 판매가격, 대리점운영, 애프터서비스, 정비까지 조사 대상에 올렸다. 시장전문가들은 NDRC가 외국기업과의 성공적인 합작모델로 꼽히는 자동차산업까지 담합 및 불공정거래 조사에 나선 것은 중국기업도 반독점의 칼에 다칠 각오를 했다는 시각이다. 선진쥔 중국자동차유통협회 비서장은 "중국이 세금 등으로 차값이 비싸다는 인식에 수입 및 합작자동차회사가 고의적으로 고가 가격선택정책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등 중국 매체들은 높은 세금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유럽산 자동차의 경우 중국 판매가격이 유럽 가격의 두배 정도로 높다며 폭리 및 담합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외국기업 때려잡기?=NDRC가 예상보다 반독점법을 강하게 밀고 나오며 일단 서구언론들과 다국적기업들은 '외국기업 때리기'라며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소비자고발프로그램인 3ㆍ15완후이 등과 마찬가지로 외국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일 존슨 앤 존슨는 중국법원에서 반독점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판매업자 배상 명령을 받았다. 상하이 법정은 '수직적 독점'이란 애매한 법 규정을 적용해 존슨 앤 존손이 중국 판매업자들에게 손실을 줬다고 판결했다. 53만위안의 배상금을 부과 받은 존슨 앤 존손의 사례를 서구언론은 억지 외국기업 때리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감독관리기관 및 기업이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G2 관계에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의 전문위원인 공화당 모린 올하우젠 의원은 지난달 베이징의 한 연설에서 "정치가 반독점제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이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 상무부는 위법행위를 한 기업에 처벌을 하고 다국적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공평한 기회를 보장해 기업 활동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커창의 도랑치고 가재잡기=반독점법 강화는 중국 경제의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리커창 총리의 복안이다. 우선 하나는 경제개혁에 대한 의지다. 리커창은 작년 12월 공산당 18대 보고에서 "시장의 규율을 존중하고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규제로 가격이 왜곡될 경우에는 규제로 개혁을 하겠지만 시장이 기득권을 위해 자율성을 해치는 가격 조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제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반독점법 강화도 이러한 리 총리의 경제개혁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서민경제안정이다. 경제회복이 더딘 가운데 특히 체감물가 상승은 리 총리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반독점법이 겨냥한 타깃이 분유 등에 이어 의약품에 가장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자동차산업으로 확대다. 현재는 유럽산 고급차에 대해 타깃이 맞춰져 있지만 언제든 한국산 수입차와 합작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대기업 협력사를 포함한 중소기업의 경우 법률적 지원 없이 반독점법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독점 규제 강화는 순기능도 있다. 중국정부가 반독점법 집행의지를 강화하는 만큼 차이나 컨트리 리스크의 해소도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함정오 코트라 중국본부장은 "강해진 규제만큼 중국의 시장질서도 예상보다 빨리 국제화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입수하고 코트라 등 관련기관과 협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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