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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寧珉 교수, 조선프로예맹 초기모습 밝혀

09/21(월) 15:07 한국계급문학운동의 전위역할을 했던 조선프로예맹의 초기조직과 강령, 규약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또 조선프로예맹(이하 예맹)이 1927년 이른바 '방향전환' 이후 신간회에 조직적으로 연계됐음도 새롭게 규명됐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權寧珉 교수는 최근 출간된 자신의 저서 「한국계급문학운동사」(문예출판사 펴냄)에서 예맹의 초기 모습을 공개하는 한편 이 조직이 신간회와 연계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거점이 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권 교수는 1925년 8월 발족된 예맹의 조직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이듬해 12월 중외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기사에서 조직과 강령, 규약이 있음이 처음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어떤 신문과 잡지에서도 예맹의 구체적 존재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조직구성과 강령, 규약은 1927년 9월 방향전환 이후의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1926년 12월 24일 현재 예맹에는 李箕永, 李相和, 최학송 등 모두 22명이 동맹원으로 가담하고 있었고, 경향성을 띤 문인 외에 아나키스트와 민족주의,공산주의 계열이 고루 섞여 있었다고 공개했다. 조직의 핵심은 金復鎭, 金基鎭 등 7명의 위원이 맡고 있었다. 예맹은 또 강령에서 무산계급문화의 수립을 목표로 내걸고 있어 초기 단계부터문학만을 겨냥한 순수조직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천방법 등에대한 구체적 방안은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것같다는 게 권 교수의 견해이다. 신간회 연계에 대해 권 교수는 1927년 李商在를 중심으로 결성된 신간회가 예맹의 방향전환과 조직확대과정에서 밀접하게 관계됐다면서 특히 그해 9월 예맹 조직개편 후 제기된 방향전환론으로 실천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예맹이 신간회의 민족 단일당 노선을 인정하고 이에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보냈다면서 준비단계부터 예맹활동에 깊숙히 간여해온 李北滿의 언급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편 李北滿은 1927년 11월에 발간된「예술운동」 1호에 기고한 글에서 방향전환을 이룬 예맹은 예술운동의 대중적 조직체로서 노동총동맹 등과 같은 대중적 조직과 성격을 같이한다고 언급했다. 李北滿은 이어 예맹은 문단 조직이라기보다 전국적 사회운동조직이며 신간회 노선에 따라 예술영역 내 대중의 정치사회적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면서 이같은 인식에근거해 예맹이 신간회의 지도정신에 통제돼야 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예맹은 1928년부터 신간회의 조직변화과정을 그대로 뒤따르며 전국적 대중조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밖에 예맹 준비모임에 가담한 11명의 신상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으며 1935년 예맹 해체의 발단이 된 극단 신건설 사건의 전모가 담긴 법원의 선고공판 판결문도 함께 수록했다. <<'마/스/크/오/브/조/로' 24일 무/료/시/사/회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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