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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모펀드, 약인가 독인가

중소기업의 목표 중 하나는 코스닥에 상장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것이다.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설비투자를 원 없이 해보고 상장기업이라는 인정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상장으로 잃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 또 장부 정리를 투명하게 해야 하고 경영 실적을 꼬박꼬박 공시해야 한다. 게다가 주주 관리 등 상장 유지 비용이 만만치 않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전문 경영진이 내 마음같이 움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도 중요한 고비마다 발목을 잡는다. 노조와 잘 지내야 하고 감독 당국의 감시도 신경이 쓰인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기업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단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기업 경영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사모펀드는 이런 불편을 피하고 개인기업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보자는 데서 출발한다. 사모펀드는 다음 세 가지 면에서 상장기업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주주가 직접 경영권을 행사한다. 즉 목표 상장기업의 주식을 100% 사들인 후 전략도 마음대로, 조직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부수고 만들고 또 부숴도 잔소리하는 사외이사도, 투자자도 없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귀찮은 전화도 물론 없다. 둘째, 상장기업의 경영진은 당장 다가오는 결산기에 이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3~5년을 내다보는 전략적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시장기회의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회사는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다. 끝으로 집중력의 강도에 있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열정은 아무리 훌륭한 글로벌 기업이라 하더라도 사모펀드를 당할 수 없다. 사모펀드에는 성공해야 할 분명한 이유, 즉 ‘내 돈을 날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존재한다. 말을 바꾸면 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대줄 금융회사들을 잘 이용하면(전문용어로 스트럭처링을 잘하면) ‘내 돈’에 대한 보상이 열 배, 또는 백 배가 될 수도 있다. 요컨대 많은 규제ㆍ감시에 구애하지 않고 오직 ‘가치창출(add value)’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사모펀드다. 뒤뚱거리는 대기업에 창업가적 긴장감을 부활시킬 수 있다. 우리도 일찌감치 사모펀드의 위력을 감지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이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리고 서울의 잘생긴 빌딩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갈 때였다. 그것이 요즘 와서는 칼 아이칸이 KT&G를 위협하고 장하성펀드가 이 회사 저 회사를 들쑤시는 통에 사모펀드는 이제 저녁 자리의 화제가 될 정도다. 전세계 사모펀드 규모가 400조원인지 500조원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다. 미국 언론은 지난 2월 사모펀드의 대표 격인 블랙스톤이 미국 최대 부동산기업인 에쿼티오피스프라퍼티스(EOP)에 제시한 인수가액 389억달러(36조원)가 사장 최대 규모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3주 후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와 연합해 텍사스에 소재한 에너지그룹인 TXU를 450억달러(43조원)에 사기로 합의했다. 3월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수퍼리턴 2007 컨퍼런스’에서 만난 TPG의 데이비드 본더먼 회장은 “사모펀드는 이제 겨우 글로벌 기업을 인수할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전세계 상장기업의 시가총액 70조달러에 비하면 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의 사모펀드시장은 어떤가.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구속하는 갖가지 제약, 당근과 채찍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는 기업문화 속에서 과연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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