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불참 등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은 사외이사에 대해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온 가운데 사외이사 제도가 여전히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본연의 임무인 경영진 견제 기능 강화를 위해 출석률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사외이사에 보다 많은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대표이사가 11억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한 코스닥기업 카스(016920)의 사외이사인 이명수씨의 경우 지난해 재무제표 승인 건, 카스이앤씨 매각 건 등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총 23회의 이사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한전선(001440)의 김수호 사외이사도 출석률이 66%에 불과하다. 대한전선은 최근 2,7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된 회사다. 공기업인 한전기술의 사외이사 운영도 엉망이다. 한전기술의 사외이사는 모두 6명이다. 이 중 지난해 7번의 이사회에 모두 참석한 사외이사는 단 두 명이며, 나머지 네 명은 출석률이 50% 이하였다. 특히 강건기씨는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문신학씨의 출석률도 14%에 그쳤다. 국민연금은 한전기술 지분 7.29%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은 출석률이 75%에 못 미치는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재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KDB대우증권(006800)의 강정호 사외이사도 출석률이 50%에 그쳤다. 이외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유가증권 상장사의 사외이사 출석률을 분석한 결과 대유신소재(000300)·영보화학(014440)·티웨이홀딩스·무학·SG세계물산·금비·윌비스·동성홀딩스 등의 사외이사 출석률이 국민연금 기준에 한참 모자랐다.
코스닥 상장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초록뱀·하이쎌·세명전기·아비코전자 등의 경우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이 0%였으며 75%에 미달하는 기업도 40여개에 달했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미국 같은 경우 사내와 사외이사 구분 없이 이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이사회 결의에 참석하는 것"이라며 "이사회 결의사항 중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 안건에 찬성한 이사뿐만 아니라 불참한 이사도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이사회에 불참하는 이사들이 많은데 최근에는 인터넷 등 통신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영상 통화와 같은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참석이 가능하다"며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출석률 기준도 너무 느슨하다며 사외이사는 원칙적으로 모든 이사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진행 시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 교수는 "30분도 되지 않아 끝나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 주요 기업들의 이사회는 그룹 전체 상황에 대한 설명과 토의, 안건 처리 등을 위해 2박3일 동안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소한 분기마다 있는 정기 이사회라도 1박2일에서 2박3일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 실장은 "사외이사가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사외이사의 임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할 경우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사외이사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 대한항공(003490)과 현대차(005380)의 경우 최근 5년간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황 실장은 "두 가지 사례는 현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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