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간사이 시가현·교토<br>1,200년 역사 엔라쿠지 사찰… 바다를 닮은 호수 '비와湖' 등<br>'시가현'엔 국보·유적 수두룩<br>정토미술의 결집체 '뵤도인'등 고도 교토엔 곳곳에 사찰·신사<br>지진이후 일본인 안식공간으로
 | 10엔짜리 지폐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교토부 우지(宇治)시에 위치한 절 뵤도인(平等院). 정토(淨土) 미술의 정수가 총 집합한 듯한 모습을 자랑하는 뵤도인에는 대지진 이후 평온한 삶을 갈구하는 일본인들의 걸음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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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사이 지방에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오사카성(위쪽부터)뿐 아니라 시가현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琵琶)호', 엔닌 승려가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당나라 유학을 떠난 것을 기념해 지난 2001년 건립된 '장보고 비' 등도 찾아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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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절전모드에 돌입한 일본 열도는 그야말로 불구덩이와 다름없었다. 외국인ㆍ일본인 할 것 없이 간사이(關西)공항에 내리자마자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원전 덕택에 전력 걱정 없이 살던 일본은 이렇게 올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더위는 맘 먹기에 따라 꾹 참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관광업에 비상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대지진과 방사성 물질 유출 이후 관광 천국으로 불리던 일본 전역에 전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급기야 일본 국토교통성이 직접 나서 '단골 고객'이었던 한국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관광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지경이다.
하지만 대지진 직격탄을 맞은 동북부 지역에서 800㎞나 떨어진 간사이 지역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천년 고도 교토(京都)에서부터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숨은 보고' 시가현(滋賀縣)까지. 인적은 뜸했지만 간사이는 대지진 악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관광 메카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대지진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일본인들도 간사이 사찰과 신사들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간사이의 숨은 보고, 시가현=한국인들은 간사이 하면 주로 오사카ㆍ교토ㆍ나라만 떠올리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시가현이라는 숨은 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교토와 오사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시가현은 일본 현(縣) 중에서 네 번째로 많은 국보를 보유한 곳이다.
시가현의 백미는 지난 1994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엔랴쿠지(延曆寺)다. 일본 천태종의 본산인 엔랴쿠지는 시가현 오쓰(大津)시 히에이산에 터를 잡은 사찰을 총칭하는 말로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불교의 모체다. 엔랴쿠지 입구에는 곤폰추도(根本中堂)가 울창한 삼나무 숲을 뒤로 한 채 듬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788년에 창건된 곤폰추도는 헤이안(平安) 시대 일본 불교 사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법당이다. 약사여래상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법당 내부는 평지보다 1m 정도 아래에 있어 약사여래상이 신자들과 눈높이를 맞춘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란다. 창건 이후 1,200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은 '불멸의 법등'은 곤폰추당 본당을 성스럽게 밝힌다.
곤폰추도에서 산 정상 방향으로 조금 발걸음을 옮기면 한국인이 반가워할 '장보고 비'를 만날 수 있다. 이 비석은 엔랴쿠지의 승려였던 엔닌(圓仁)이 9세기께 해상왕 장보고의 도움으로 무사히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것을 기념해 2001년 설립됐다.
시가현의 또 다른 진수는 비와(琵琶) 호수다. 비파를 닮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이 호수는 시가현 면적의 6분의1을 차지하는 일본 최대 호수이자 바다를 닮은 호수다. '미시건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비와호 구석구석을 두루 훑으면 몸과 마음이 금세 청량해진다.
비와호는 간사이 지역의 젖줄로 불린다. 시가현은 물론 교토ㆍ오사카 등에 마실 물을 아낌없이 내주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표 음료업체인 아사히는 이곳 물을 길어 맥주를 만든다. 시가현민들이 이 호수를 '어머니의 호수'로 칭한 데는 이유가 있다.
분지 지형으로 더운 날이 많은 간사이 지방은 예로부터 물을 귀하게 여겼다. 교토와 시가현 경계에 있는 키부네신사(貴船神社)는 그래서 간사이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키부네신사가 물의 신인 다카오카미노카미라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간사이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비가 오기를 바라면 흑마를, 맑기를 원하면 백마를 제물로 바쳤다. 오늘날 키부네신사는 흐르는 물에 '미즈우라미투지' 종이를 띄워 사랑점을 치는 일본 청춘 남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안식의 공간, 교토=간사이 지역이 대지진 이후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지진과 방사능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교토의 사찰과 신사를 찾고 있어서다. 교토부 관광연맹에서 근무하는 요시다 지카씨는 "지진 이후 일본 사람들이 불심의 힘으로 불안을 극복하고자 교토의 절들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교토부 우지(宇治)시에 위치한 절 뵤도인(平等院)은 10엔짜리 지폐에도 등장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1052년 당대 최대 권력자였던 후지와라 요리미치(藤原賴通)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해 만든 이곳에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걸음이 더욱 잦아졌다.
뵤도인은 정토(淨土) 사상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특별한 절로 정토 미술의 정수가 총 집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뵤도인의 봉황당 윗벽은 구름을 탄 채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는 운중공양보살상 52채로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측면은 아미타보살이 황금색 연꽃을 몸에 걸치고 극락을 마중 나오는 아홉 가지 그림(구품내영도)들로 장식돼 있다. 봉황당 지붕 위 봉황새는 극락이 있다는 서쪽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퍼덕인다.
뵤도인이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공감을 얻는 것은 일본인들이 말세 사상이 유행처럼 번졌던 당시와 현 상황이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요시다씨는 말했다.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을 갈구하는 듯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관광객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토와 시가현이 계속 눈에 밟혔다. 간사이 지역이 대지진 악재를 무사히 견뎌내 예전처럼 다시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관광지가 되기를, 또 일본인들에게는 언제까지나 따뜻한 안식처가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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