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는데도 우리가 버티는 것은 전체 교역량의 3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커진 중국과의 교역 덕분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에 (교역 등이) 집중되는 것은 위험하므로 독자적 생존력을 갖춰야 합니다." 재무관료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64ㆍ사진) 니어(NEARㆍNorth East Asia Research)재단 이사장은 기자와 만나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면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고 문화적 독창성을 유지하며 '작지만 단단한(small but solid) 나라'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지만 단단한 대한민국, 독자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굳건한 시장경제체제 ▦중국에 동화되지 않기 ▦장기침체와 노령화ㆍ양극화를 겪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들었다. 그는 다가오는 동아시아 시대를 '신삼국지 시대'로 정의한 뒤 "향후 10년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나라가 삼각형의 한 축을 이루려면 고도정밀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강국, 선진 문호를 받아들여 공급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분야로는 외교를 꼽았다. 그는 "우리 외교력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지만 담력이 부족하다. 미ㆍ중ㆍ일과의 실리외교로 국익을 도모하고 특히 외교적으로 중국과 계속 거리를 둬야 한다. 멀리 있는 미국과 달리 인접한 중국과는 군사ㆍ외교ㆍ안보적으로 동화되기 쉬우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중국 경계론을 폈다. 정 이사장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에 이르는 오는 2022년이 되면 인간의 욕구체계에 변화가 와 민주화라는 시험대에 놓이게 되고 결국 내부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에 대해서는 "장기침체에 대지진 이후 중간재산업마저 붕괴 위기에 놓이는 등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미국발 위기로 국내에 외화 유동성 문제는 터지지 않겠지만 정부의 재정압박이 커져 양극화 해소, 노령화 지연을 위한 사회 각 분야의 개혁 추진은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정부는 정책 기조의 틀을 물(物) 중심에서 인(人)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중일 3국이 외환위기 발생을 막기 위해 체결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주역이었던 정 이사장은 지난 6월 3국 통화협력을 위한 전문가 콘퍼런스인 'A3 트라이앵글 이니셔티브'를 성사시켰다. 그는 "3국의 외환보유액(총 4조5,000억달러) 일부를 떼내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공동통화표시 채권 발행 등에 합의했다"며 "내년 봄 도쿄에서 2차 회의가 열리는데 아직 초기단계지만 미국의 국가위기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니어재단은 한국의 지속적 성장ㆍ번영을 위한 필수과제인 동북아 전략 연구를 위해 정 이사장이 2007년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다. 그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를 쏟아내는 국책연구소, 기업 경영을 위해 설립한 기업연구소와 달리 가치중립적이고 이해중립적인 싱크탱크가 독자적이고 새로운 시각을 내놓아야 한다"며 "지난 5년간 질적으로 당초 목표의 70% 수준에 이르렀지만 양적 측면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의제를 제안해나가는 작지만 단단한 재단으로 내실을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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