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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직위상승을 공고합니다.' 최근 하이닉스반도체 사내 게시판에 실린 인사명령이다. 인사명령에는 '승진'이라는 단어는 아예 사라지고 '직위상승'과 함께 '필요한 인사 마일리지를 쌓은 사람이 대상이 됐다'는 문구도 같이 들어가 있다. 앞서 하이닉스반도체는 지난해 정기승진을 폐지하고 인사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했다. 또 27년간 유지해오던 과ㆍ차장 등 기존의 직위체계를 '선임ㆍ책임ㆍ수석'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인사혁신을 단행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신인사제도는 국내 전자업계로서는 처음 시행됐다. 하이닉스가 도입한 신인사제도가 직원들의 승진 스트레스를 없애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임직원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데도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하이닉스에 따르면 회사 측이 최근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8%가 신인사제도가 한국 기업병 가운데 하나인 계급과 권위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신인사제도가 반도체 등 전자산업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6%)' '그렇다(68%)' 등 호의적인 반응이 70%를 넘었다. 실제로 신인사제도 실시 이후 하이닉스 직원들의 회사 만족도와 충성도는 더 높아졌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승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풍속도도 나오고 있다. 부장 등의 진급에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됐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승진이 직위상승으로 바뀌었고 연봉에 상관없이 그냥 호칭만 책임에서 수석 등으로 부르다 보니 '승진 스트레스'가 한결 덜해졌다는 후문이다. 회사의 한 임원은 "승진이 곧 연봉상승을 의미했지만 신인사제도는 승진 자체 개념도 없고 직위상승과 연봉인상과의 연관성도 낮다"며 "그렇다 보니 승진누락에 따른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글로벌화 추세에 맞춰 과ㆍ차장 등 직급체계 폐지를 검토했다가 시행하지 않기로 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직원 수가 많은 상황에서 도입이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신인사 실험을 다른 업계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며 "정착 여부에 따라 다른 업체로 확산속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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