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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오른 '집단소송' 시대] <4> 회계감독 시스템을 바꾸자
입력2005-01-09 15:57:00
수정
2005.01.09 15:57:00
'무작위식 감리' 사각지대 만든다<br>상장·등록사 65%는 한번도 표본감리 안받아<br>정밀조사 불구 2003년 대상기업 87% 무혐의<br>감리결과 선별적 공표·공시 범위도 축소해야
[막오른 '집단소송' 시대] 회계감독 시스템을 바꾸자
'무작위식 감리' 사각지대 만든다상장·등록사 65%는 한번도 표본감리 안받아정밀조사 불구 2003년 대상기업 87% 무혐의감리결과 선별적 공표·공시 범위도 축소해야
지난 2004년 1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사이트에 H사가 제출한 2002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가 제출됐다. 법정 마감기한보다 무려 10개월이나 늦게 공시된 것이지만 당시 감독당국인 금감원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감사보고서에 대한 감독은 의견거절 또는 한정 기업에 대한 감리에 치중하며 그렇지 않은 기업까지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현재의 인력구조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 회계감독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하는 한 이 같은 해프닝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한정된 인원으로 정밀감리를 하다 보니 어딘가에선 회계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상 기업 모두를 정밀 조사하는 현재의 표본감리 대신 혐의가 포착되는 기업만 집중 감리하고 대신 회계법인을 감독당국이 직접 감독하는 조직감리를 하루라도 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본감리, 회계 사각지대 만든다 = 현재 회계감독시스템은 금융감독원에서 무작위 추출해 집중 감리를 하는 표본감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대상 기업에 대해 감사조서까지 포함한 정밀조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한 번 선정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히 해부당한다. 무작위 추출을 하다보니 어느 기업도 표본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표본감리의 허점은 자연히 회계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거래소ㆍ코스닥시장에서 활동하는 1,500여개 상장ㆍ등록기업 가운데 65% 이상은 아직 한번도 감리를 받아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표본감리는 정밀감리를 원칙으로 하다보니 금융당국에 의해 한번 감리가 시작되면 해당기업의 경영활동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감리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혐의가 없는 것으로 귀결된다. 금감원이 지난 2003년 상장ㆍ등록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감리 결과에서 무려 87%가 아무런 혐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감사조서에는 중요한 영업비밀이 담겨 있어 만에 하나 이것이 누출된다면 기업이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지난 2003년 감리대상으로 선정됐던 한 상장사의 재무담당자는 "감사조서는 일반 재무상황은 물론, 고개과의 거래, 금융거래 내역, 심지어는 세부 영업조직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이를 공개하는 것은 기업을 아예 발가벗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감리결과 선별적으로 공표해야 한다= 감리결과에 대한 조치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증권선물위원회의 지적과 조치사항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모두 공표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고의 분식과 같은 중대 범죄행위는 물론 단순 계정위반 등 경미한 사안도 모두 공개된다.
문제는 이것이 '중대한 위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이를 근거로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도 "집단소송이 무서운 것은 소송 그 자체 보다는 어떤 사소한 것도 소송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지난해부터 '수사기관 통보'조치를 공표하지 않는 것도 혐의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기업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감사인에 대한 조치 역시 ‘과도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9월 법원은 고합그룹의 회계담당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회사측이 계획적이고 고의적으로 분식을 했을 경우 공인회계사가 이를 적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원고 패소품燒?내렸다. 기업과 회계법인을 하나로 묶어서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현재의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결정이다.
◇조직감리 강화, 공시범위 축소해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표본감리 방식에서 벗어나 혐의기업에 대해서만 정밀 감리를 실시하는 선별적 집중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한 회계 사각지대화를 막기 위해 회계법인을 직접 감리하는 '조직감리'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공통적인 인식이다.
신용인 안진회계법인 부대표는 지난해 열린 한 포럼에서 "일반감리결과가 집단 소송에 이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표본감리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공인회계사회의 한 관계자도 "상시감리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상장, 등록법인 감사인 등에 대한 감리는 증선위가 직접 조직감리를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신 공인회계사들에 대한 자율 감리기능은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재 조치에 대한 공시 범위도 혐의사실?확정됐거나 고의성이 있는 중대한 범위로 한정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최근 건의서를 통해 "집단소송의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치결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경우 지적범위를 최소화하고 그에 따른 공시 범위도 줄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결 재무제표에 대한 감리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김진배 고려대 교수는 최근 한 연구고보서를 통해 "연결재무제표는 중요한 회계정보를 담고 있어 감리를 강화해야 하나 한국의 경우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의 개선을 요구했다.
송영규 기자 skong@sed.co.kr
입력시간 : 2005-01-0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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