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와 증권업계는 잠정적으로 다음 달 15일을 ‘D-Day’로 잡고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상·하한가 범위가 기존 15%에서 30%로 확대되는 제도 개편을 앞두고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격제한폭 확대를 건전한 투자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당장 주가 움직임이 크게 바뀐다. 특정 재료가 주가에 반영되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기 때문이다.
가격제한폭이 ±30%로 확대되고 나서 사흘 연속 상한가를 치면 원래 주가의 두 배를 훌쩍 넘기게 된다. 반대로 하한가의 경우에는 단 이틀 만에 반 토막, 나흘이면 4분의 1토막이 된다.
현행 ±15%의 가격제한폭으로는 두 배 혹은 반 토막이 되기까지 5거래일이 걸렸다.
그동안 가격제한폭 제도는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효율적인 가격 형성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11년 이후 상·하한가를 기록한 종목의 이튿날 시초가 변동률은 4~5% 수준이었다. 어떤 재료에 대한 총 가격 변동폭이 20% 내외였으나 15%라는 가격제한폭 때문에 발생 당일 시장에서 균형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셈이다.
또한 주가가 12~13% 상승 혹은 하락하면 주가가 과잉 반응해 상한가나 하한가로 달라붙는 이른바 ‘자석효과’가 나타나는 문제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세력이 인위적으로 상한가에 근접하는 시가를 형성하고서 추종매매를 유도하는 ‘상한가 굳히기’ 등 불공정거래도 발생했다.
가격제한폭 확대는 이러한 비효율성이나 불공정거래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당국과 증권업계는 내심 거래량 증가에 따른 시장활성화도 기대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기업의 가치 변동이 주가에 신속히 반영될 수 있고 시세 조작도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다”며 “효율성과 건전성 측면에서 실보다 득이 크다”고 말했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가격제한폭 확대로 시장에 충격이 빨리 흡수되고 해소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인위적인 제한 조치를 풀어야 시장이 더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가격제한폭 ±30%는 불공정거래 방지 및 효율적 가격형성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지만 앞으로는 완전 폐지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격제한폭 확대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내츄럴엔도텍의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코스닥 지수가 장중 5% 폭락한 지난달 22일 이후 가격제한폭 확대가 야기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당시처럼 시장에 돌발 악재가 발생했을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이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시장에 노출된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고 평가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히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도 위험요소가 있다.
특히 변동성이 심한 코스닥과 중소형주 투자 비중이 높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전체 245거래일 가운데 대형주가 1종목이라도 상한가와 하한가를 기록한 날은 각각 1.6%인 4일로 집계됐다. 소형주는 상한가 227일(92.7%), 하한가 117일(47.7%)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상한가 기록일이 245일(100%)로 하루도 빠짐없이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종목이 있었고, 하한가 기록일은 182일(74.29%)이었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소형주와 코스닥시장의 가격제한폭 도달 빈도가 높다”며 “이번 가격제한폭 확대로 코스닥시장의 가격 변동성이 이전보다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격제한폭은 6%에서 15%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격제한폭이 일시에 두 배 수준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개미’들이 더 큰 손실을 보고 ‘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릴 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식을 분석하고 투자해야 하는데 단기적인 변동에 민감해져 시행 초기 단타성 매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격제한폭 확대는 단기적으로 시장에 불안감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성숙한 투자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시행 초기에는 하향 변동성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한 투자자들이 일시적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조윤남 센터장은 “실적 등에 주가가 민감하게 움직이며 장중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현금화해 한 발 빼고 지켜볼 수 있다”며 개인 수급이 일시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격제한폭 확대가 주로 중소형 개별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번 제도 개편이 시장 전반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 등에 따른 중소형주의 종목별 주가 차별화는 극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분석된다. 호재와 악재에 대한 가격 탄력성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중소형주의 변동성 확대는 대형주에 대한 선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간접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가격제한폭 확대가 종목별 차별화를 심화시켜 투자 난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대형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직접투자가 펀드나 ETF 등 기관 투자로 흡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건전한 투자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규연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가격제한폭 확대를 건전한 투자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묻지마 투자’에서 벗어나 기업 내용을 제대로 알고 투자하기를 당부하며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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