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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늘며 숙면 위해 아낌없이 지출
올 시장 2조 '훌쩍'… 매년 폭발적 성장
기능성 매트리스·침구에 수면 돕는 식품
향초·디퓨저·암막커튼 등 잇따라 출시
스마트폰 등 청색광 기기는 수면 방해
규칙적으로 취침·기상하는 습관이 중요
'불면 공화국'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은 '웰슬리핑(well-sleeping)'이다.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의미하는 '웰빙(well-being)'에서 한 걸음 나아가 잠을 잘 자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웰빙의 전제조건이 양질의 수면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잠 못 자는 한국인'은 통계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2년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조사 대상 18개 중 꼴찌를 차지했다. 프랑스가 8시간 50분으로 우리보다 1시간 길었고 전체 평균보다는 33분 적었다. 한국갤럽이 이듬해 조사한 결과에서는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 53분으로 줄었다.
올 3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면학회 학술대회를 맞아 글로벌 가전업체 필립스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세계 최하위였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성인 65%가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 내외에 그쳤고 미국·중국·영국 등은 평균 7시간이 넘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한국인은 70%가량이 밤 11시에서 새벽 1시로 제일 늦었다. 늘어나는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스마트폰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더 늦게 자고 더 일찍 일어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평일에 적게 자고 주말에 잠을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은데 이는 불면증을 심화시키는 가장 안 좋은 습관 중 하나"라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잠도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면증이 수면장애라는 엄연한 질환으로 자리잡으면서 수면 관련 상품을 파는 시장도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직 미국(20조원)과 일본(6조원)에 비하면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든 수준이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수면 관련 시장이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수면 상품을 출시하면서 올해는 2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분야는 기능성 침구 시장이다. 지난해 5월 수면 전문 브랜드 '슬립앤슬립'을 출시한 이브자리는 수면 관련 상품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을 올해 80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가구 전문업체 한샘은 기능성 원단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매트리스 제품군으로 확대하고 각 매장에 장시간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수면존까지 도입했다. 에이스침대가 전국을 순회하며 운영하는 이동수면공학연구소는 누적 이용고객이 15만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자생한방병원이 별도 브랜드를 앞세운 기능성 베개를 출시하는 등 의료업계까지 관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프리미엄 침구 브랜드도 속속 국내에 진출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이 우주선에 쓰는 신소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템퍼는 올해 국내 주요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LF도 명품 침구 브랜드로 꼽히는 프랑스 잘라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프리미엄 기능성 침구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식품업계도 숙면에 도움을 주는 신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 초 숙면보조식품 '슬리피즈'를 출시했다. 백야 현상으로 잠을 잘 못 자는 북유럽 사람들이 밤에 짠 우유를 마신다는 점에 착안한 제품이다. 우유를 소화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락토오스 성분을 최소화하고 잠들기 전에 마시는 음료라는 점을 감안해 무지방으로 설계했다. CJ제일제당은 슬리피즈 매출을 3년 내 2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려 관련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윤인영 서울대분당병원 수면장애클리닉 교수는 "일반 전지분유와 '슬리피즈'를 2주간 섭취하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제품에 함유된 멜라토닌이 숙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모유를 밤에 먹은 아기가 잘 자는 것처럼 밤에 짠 우유가 상대적으로 잠을 잘 오게 해주는 원리"라고 말했다.
KT&G의 자회사인 KGC라이프앤진도 감태 추출물을 넣은 수면보조식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은 감태 추출물은 수면의 질 개선에 도움을 주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 서식하는 갈조류의 일종인 감태를 주원료로 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는 천연 수면제라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글로벌 식품기업들도 잇따라 수면 관련 식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 허브차 전문업체 닥터스튜어트는 '벌리리언 플러스' 허브티를 앞세워 경쟁에 가세했다. 서양쥐오줌풀로 불리는 벌리리언 허브와 작은잎라임꽃, 패션플라워 등을 배합해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캐나다 슬로카우드링크도 지난해부터 전국 편의점에 L-테아닌 성분을 함유한 수면보조음료 '슬로카우'를 출시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녹차에 함유된 아미노산의 일종인 L-테아닌은 긴장과 불안을 완화해주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면 관련 상품은 유통업계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기능성 침구 매출은 지난 2013년 21.8% 증가한 뒤 지난해 36.7% 늘었고 올 들어서도 5월까지 29.3% 신장했다. 향초와 디퓨저, 아로마오일 등 향기용품 판매도 지난해 무려 178% 급증했고 올해도 117.8% 신장률을 이어가며 고공 행진 중이다.
이마트의 경우 침대 매트리스 위에 깔아 푹신한 느낌을 높여주는 토퍼 매출이 경기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22.4%에 이어 올 들어 18.8% 늘었다. 잠을 잘 때 편안한 자세를 유지해주는 바디필로는 지난해 55%에 이어 올 들어 19% 증가했고 빛이 들어오지 않게 가려주는 암막커튼도 올해 31.3% 뛰었다. 이마트는 수면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최근 개장한 킨텍스점에 관련 상품을 한자리에 모은 '더 라이프' 매장을 별도로 열기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 확산과 도시의 환한 불빛 등도 불면증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쓰면 뇌가 계속 깨어 있으려 하기 때문에 쉽게 잠을 자지 못하고 수면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낮보다 더 밝은 사무실과 가정의 불빛 등도 일종의 '빛 공해'로 작용하면서 쾌적한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소장은 "숙면을 취하려면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도록 해야 하는데 잠들기 두 시간 전부터는 빛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며 "스마트폰과 TV 등 청색광을 내뿜는 전자기기를 침실에서 치우고 침실 환경을 어둡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불면증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일정 시간에 취침하고 기상하는 것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면 일어나는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수면제와 같은 전문의약품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만 계속 약물에 의존하다가는 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 '잘 먹는 것'과 '잘 쉬는 것'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며 "아직 국내 수면 관련 시장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의식주 소비 형태가 바뀌고 숙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면 관련 시장은 매년 가파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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