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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중화의 선구자' 이스트먼의 삶

■조지 이스트먼(칼 액커먼 지음, 눈빛출판사 펴냄)


누구든 사진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부터 전문가용 수동 카메라까지 사진기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코닥의 창시자 조지 이스트먼(1854~1932)은 사진의 영역을 '소수의 특권'에서 '대중의 취미'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필름과 카메라의 발명으로 사진을 대중화한 발명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조지 이스트먼'은 1930년에 발행된 책으로 조지 이스트먼 생전에 쓰인 유일한 전기다. 이스트먼은 원래 생전에 자서전을 출판하려 하지 않았으나 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의 셀리그먼 교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당시 저널리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저자 액커먼에게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게 했다. 책은 그가 지인들과 수십년 동안 주고받았던 10만여 통의 개인적 공적 서신, 언론기사를 통해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던 그의 삶을 꼼꼼하게 되살렸다. 조지 이스트먼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14살에 보험회사 사환으로 입사했다. 별다른 취미 생활이 없었던 그는 사진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흥미를 키워갔고 어린 나이부터 벌어들인 돈을 사진 관련 장비를 사 모으고 연구하는 데 쏟아 결국 필름과 카메라를 발명하고 자신의 회사까지 설립한다. 생전에 조지 이스트먼의 바람은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필름뿐 아니라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이 다루기 어려웠던 카메라를 저렴하고 작게 만들었다. 그가 발명한 코닥 필름은 사진뿐 아니라 영화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는데 영화의 발명도 그의 필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뤼미에르 형제, 조르주 멜리에스 등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모두 코닥 필름을 사용했다. 이스트먼은 사업가로서도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100여 년 전인 당시에도 종업원지주제, 연금 및 각종 복지정책 등을 제안하고 실시했다. 이런 선구적인 복지정책은 오늘날에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기업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스트먼은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로체스터 대학과 MIT공대를 비롯한 교육기관에 평생 1억 달러 정도를 기부했고 주식의 3분의 1을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선구자였다. 하지만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년에 척추협착증으로 투병하다가 결국 1932년 3월 14일 권총으로 스스로 인생을 마감했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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