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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때려잡기' 할리우드에도 있다

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한국에서는 자유당과 그 후 군사정권 때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 옥살이를 시키거나 심지어 사형까지 시켰었다. 해방 직후에는 작가와 예술가 사이에서도 사상을 둘러싸고 상호 충돌과 배신과 고발이 횡행했었다. 빨갱이 때려잡기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2차 대전 후 냉전시대였던 1940년대 후반에서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서도 기승을 떨쳤었다. 당시 미 연방하원에서는 비미국적 행위 조사위를 구성해 공산당에 가입했거나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냈었는데 조사위의 주목표는 진보진영의 아성인 할리우드였다. 조사위는 영화계 좌경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명분 아래 할리우드의 영화사 사장에서부터 로버트 테일러와 게리 쿠퍼 및 로널드 레이건 등 빅 스타들과 감독과 각본가들을 대량으로 워싱턴으로 소환, 이들과 공산당과의 관련 여부를 따졌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동료를 배신하거나 자신의 좌파적 정치 성향을 속죄하고 나서야 영화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공산당과 관련된 동료들의 이름을 불고 살아남은 영화인들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지난 2003년 94세로 타계한 감독 엘리아 카잔(‘워터프론트’ ‘초원의 빛’) 이다. 그 밖에 각본가 클리포드 오데츠(성공의 달콤한 냄새)와 배우 스털링 헤이든(자니 기타)과 로이드 브리지스(배우 제프 브리지스의 아버지) 등도 고발자들. 이들은 동료들의 이름을 불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배신자의 오명을 감수했었다. 그러나 이런 ‘마녀 사냥’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치 신념에 관해 묵비권을 행사, 옥살이를 했던 10명의 할리우드 인사들이 있었다. ‘할리우드 텐’으로 불리는 이들은 묵비권을 행사 했다가 1948년 의회 모독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최고 1년까지 옥살이를 했었다. 당시 조사위가 발표한 빨갱이들은 300여명에 달했었다. 이런 ‘마녀 사냥’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그 뒤로 수십 년간 일자리를 못 구해 자살한 사람들도 있고 일부는 유럽으로 도주해 창작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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