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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이 성공하려면(사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빅뱅(천지개벽)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86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영국금융시장에서 금융서비스법이 발효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빅뱅이다.영국경제가 침체되고 유럽이 단일통화권으로 통합할 것이 확실해지면서 유럽경제의 중심이 독일로 옮겨갈 것이 예견되자 과거의 영광과 지위를 지키고자 결단을 내린 것이 영국의 금융대개혁이다. 당시 영국은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신사규정을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켜왔지만 런던금융시장의 지위가 프랑크푸르트로 옮겨갈 것을 두려워한 영국은 경쟁도입을 기본으로 하는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영국의 대개혁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초기 과정에서는 상당한 혼란과 부작용에 시달렸다. 영국의 빅뱅은 증권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수료 자유화와 진입규제의 철폐로 요약된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금융기관이 증권업무에 참여했다. 통신과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소수의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으며 수수료 자유화로 무한경쟁이 시작돼 많은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거나 도산했다. 당시 유명했던 영국의 종합금융회사(Merchant Bank) 대부분은 이제 외국인 소유가 되었지만 고용이 감소하지 않았고 영국 자본시장의 명성도 퇴색하지 않았다. ○영국이 선도한 세기말 개혁 이러한 효율성으로 인해 증권거래가 런던으로 집중되자 주변국인 프랑스는 「프티 뱅」, 캐나다는 「주니어 뱅」 등을 실시했고 스페인과 독일도 뒤를 따랐다. 국내경제를 바탕으로 보수성을 강조하던 미국금융시장도 은행인수합병의 열풍과 함께 업무영역의 규제를 강조하는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의 철폐를 추진했다. 30년대 대공황이란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제정된 증권법, 증권거래법, 은행법 등을 대폭 개정해 세계금융시장의 변혁에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빅뱅은 20세기말 금융대개혁의 시발이 된 셈이다. 영국에서 빅뱅이 일어난지 10년이 지난 작년, 일본의 하시모토 총리가 일본판 빅뱅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막대한 부실채권과 경쟁력이 낙후된 은행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인수합병과 업무영역 규제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과 다르다.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경제발전의 주역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금융산업을 낙후시킨 주범인 대장성의 대개편이다. 정부주도 체질을 민간주도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정책의지가 과연 대장성을 수술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금융3국을 총리직속으로 하고 각 부처에 산재한 금융기관 감독권을 금융검사감독청으로 신설, 통합하려는 개혁안이 돋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정부배제원칙 한일 닮은꼴 한국판 빅뱅은 선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산업의 낙후성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이의 기본적인 책임은 정책당국에 있다. 인사, 경영 등 모든 영역을 정책당국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금융산업은 무사안일과 정부의 보호에 익숙해져 있어 경쟁을 두려워한다. 막대한 수요에 따르지 못하는 공급은 금융인들로 하여금 고객 위에 군림하게 했다. ○금융정상화 후 제도도입을 자금순환분석에서 은행이 15%내외의 시장점유율을 나타내는 현실에서 은행은 금융산업의 맏형으로 각종지원과 보호혜택을 누려왔다. 경쟁에 익숙한 제2금융권이 은행경쟁력을 능가하는 것을 단순하게 평가해선 안된다. 이미 7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및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맞아 금융개혁이 논의 됐고 한미정부간 블루프린트에서 우리나라 금융시장개방계획과 금융산업발전계획이 발표되었다. 이어 신경제계획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은행·증권의 업무영역 철폐, 진입 퇴출의 완화, 금리 및 수수료 자유화 등이 논의되었고 일부는 이미 개선되고 있다. 금리자유화, 외환자유화, 자본시장개방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대개혁은 성격상 단기간에 실시돼 효과를 거둬야 하는데 금융산업은 보수성이 강해 대개혁이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대개혁은 어떤 예비조건 아래서 실시돼야 할 것인가. 첫째는, 왜곡된 시장구조를 바로잡는 금융정상화의 단계이며 그뒤 선진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금리자유화, 인사경영의 자율화는 금융정상화의 기반이다. 둘째, 금융인들의 의식개혁과 책임경영제가 마련돼야 한다. 셋째,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 다음 금융산업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에서 빅뱅이 실시된 후 나타난 특징은 감독의 강화였다. 감독기관의 구조개편이 있었고 무한경쟁에 따라 부실금융기관이 대량 발생하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감독을 강화했다. 넷째, 정부 주도의 인수합병보다는 부실금융기관이 망해서 퇴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가치관과 인식에 맞춰야 하지 외국사례를 무조건 답습해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는 정보화를 이루는 것이며, 마지막은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것이다. 한국판 빅뱅이 성공하려면 금융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둔다는 위상의 문제보다 기본인식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집행기구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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