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지난 2009년,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오일쇼크, IT 버블 붕괴 등 후폭풍이 거센 소용돌이를 거치면 각 업종별 시장의 지배 구도에도 큰 변화가 일었던 만큼 금융위기 역시 시장 재편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실제로 2009년 경제위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빠져 나오면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대폭 강해지는 '승자들의 잔치'가 시작됐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견뎌내지 못하고 추락하는 사이 최후의 생존자로 남은 기업들이 절대 강자로 등장, 패한 자의 것까지 차지하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대부분을 국내 대기업이 차지했다. 2008년 4분기 영업손익 적자로 충격을 안겼던 삼성전자는 2009년 결국 '치킨게임'에서 승리하며 2009년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현대자동차 역시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었던 2009년 1월, 북미 시장에서 직업을 잃은 구매고객의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세계 완성차업체 중에서 유일하게 공격적인 마케팅 정책을 폈다. 2008년 3.3%에 불과했던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009년 4.2%, 2010년 4.6%로 급등했다.
2012년 여름, 세계 경제는 다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모습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불러온 먹구름이 기재개를 펴던 미국 시장의 발목을 잡았고, 세계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중국마저 움추리게 만들었다.
국내 경기 역시 불안하다. 한국은행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GDP) 전망치를 3.5%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수출 시장이 막막해 지면서 소비자들은 내수시장에서도 돈을 쓰지 않는 형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최근의 불황을 그저 관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국내 주요 제조기업 84곳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기업경영 전망' 조사 결과, 하반기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규모가 지난해 수준 혹은 그 이상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87.7%를 차지했다. 다시 찾아온 위기를 이번에도 기회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또 설문에서 상반기 대비 하반기 매출 목표를 상향 조정한 기업도 60.2%나 됐다.
개별 기업들의 하반기 전략에서도 '승리'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도 '초격차' 전략을 펼친다. 갤럭시 S3를 앞세운 휴대폰 분야와, 스마트 TV가 주력인 TV 시장 등에서 독주를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LG전자는 올해 당초 계획인 R&D 투자 2조6,000억원을 계획대로 실행해 미래 시장에 착실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기아차는 경제 위기의 진앙지인 유럽시장의 소비 위축에도 불구하고 상반기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하반기에도 신차 투입 및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 확대는 물론 브랜드 가치를 더욱 끌어 올린다는 전략. 아울러 현대차 3공장 준공 및 기아차 3공장 기공 등 중국 현지 생산량 증대에 착수하며 미래 수요에 대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불투명한 시장 상황이지만 미래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 3조5,000억원 보다 20% 가량 확대한 4조2,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계획에 따른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특히 오는 하반기 중에는 최근 준공식이 있었던 청주의 D램과 낸드 혼용 팹인 M12도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특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글로벌 경영체제를 강화한다는 계획. 특히 해양플랜트 부문의 기술 개발 및 신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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