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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해양경영사연구] 장보고 선단의 무역항로

김정호 전남 농업박물관장장보고 선단의 무역항로는 일본승려 엔닌의 일기에 나타나는 신라방 등에 국한된 산뚱성을 중심으로 한 북로뿐만 아니라 엔닌이 보지 못한 남로도 포함해야 한다. 장보고 시대 연구나 장보고 연구는 문헌기록의 한계가 완도이고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했다면 그 시대의 항해술이나 지정학상의 위치로 볼 때 양쯔강 이남의 남중국과도 무역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제스님 겸익화상은 526년 남방항로를 통해 인도에 유학했다. 같은 무렵 백제 현광스님도 남쪽 즈어쟝성 천태산에서 천태종을 배웠다. 596년 고구려 스님 발정도 즈어쟝성 천태산에 가서 공부했다. 이능화씨가 쓴 조선사찰자료에 보면 경주 민장사의 관음상은 745년 오나라에서 장사하러 떠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보개라는 여인의 기도에 영험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 즈어쟝성 해안 여러 곳에 신라초, 신라방, 신라원, 신라산 등 지명이 있다. 삼국사기는 816년 신라 사람들이 흉년이 들어 절강성 동쪽으로 170명이나 건너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살람들이 건너간 기록이 있는데도 남방항로는 1074년 고려 문종 때야 개척된 항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늘날 우리는 엔닌의 일기를 중심으로 중국 속의 한민족 유적을 주로 강소성과 산뚱성에서 찾고 있지만, 광뚱성이나 절강성 지방에는 오히려 신라 이전과 고려시대의 유적이 더 많다. 조선시대 최부의 표해록을 보면 절강성 항주만 북쪽 가흥부에도 고려사관이 있었고 소주에도 고려관이 있었다. 장보고 선단의 무역품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엔닌의 일기와 「속일본후기」에서 단편적인 품목을 찾아볼 수 있고 고려 초기의 무역품이나 신라시대의 대중국 교역품목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신라 때 당나라로 수출한 물품은 금속공예품, 은, 동, 동제품, 견직물, 약제, 향유, 미체, 말, 개, 해, 수피, 모피, 피혁 따위였다. 고려 때는 먹도 수출했다. 엔닌의 일기를 보면 신라칼이 사은품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으며 중국 교민들은 소금과 목탄 장사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연수향과 초주지방은 본디 암염 생산지였으므로 소금을 수입했을 것이다. 장보고 선단은 아랍 상인들과 같은 지역에서 살고 생활했으므로 아랍산 물건과 인도지방 향료인 향단과 염료, 목재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중국 물품으로는 비단과 도자기, 책, 차 따위가 주류를 이뤘을 것이다. 828년 당나라에 갔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청해진은 당시 강진땅인 탐진현에 속했을 것이므로 오늘날의 강진 대구면의 청자기술도 이 때 들여왔을 것이다. 장보고 선단은 이같은 교역품이나 기술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한국 불교 중 선종을 들여오는데 크게 공헌했던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진만 안쪽 가지산 선종이나 화순 쌍몽사산문, 전북의 실상사 산문이 모두 장보고 선단과의 인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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