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밀가루 같은 눈밭… 천상의 꽃으로 여겨지는 설화… 염라대왕의 사신처럼 고래고래 고성을 지르고 칼 날을 세우며 끊임없이 불어대는 바람… 이것이 겨울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3박자 진미라고들 하는 것 같다. 이 맛을 6시간 반을 걸으며 발과, 눈과 피부로 느껴본 토요일 점봉산(點鳳山:1424m) 산행이었다. 무리한 산행일정으로 마지막 하산길에는 초롱초롱한 별을 보면서 뜻하지 않게 야간산행의 기분까지 덤으로 맛보았으니 이번이 나의 짧은 경력에 가장 인상 깊으면서 금년 겨울 산행의 백미를 장식하지 않나 싶다. 한계령을 경계로 대청봉을 마주 하고 있는 남설악의 주봉인 점봉산. 한계령과 남설악의 절경을 이루는 주전골 십이폭포에서 망대암산-점봉산까지 휴식(2003-2005)에 들어 가 있다. 취나물, 참나물등 산나물 뜯으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아 지금 이 남단 진동리 코스도 봄이 되면 출입 금지라는 대장님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겨울이라서 등산이 가능하단다. 산행은 크게 진동리 삼거리에서 서쪽 강선리 마을로 올라 곰배령(1164m)까지 가는 1:30-2시간의 트레킹코스나 다름없는 완만한 길. 이 산행의 절정인 곰배령에서 작은 점봉산을 지나 점봉산 정상에 이른 길. 그 다음은 점봉산에서 단목령(檀木嶺:박달나무고개)을 지나 삼거리까지 마지막 회귀하는 길. 트레킹코스의 완만한 곰배령까지 곰배령까지는 너무 완만해 준비운동치고는 너무 오랫동안 걷는 길이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간다. 눈에 목을 겨우 내민 구릿대, 크리스마스추리의 대명사인 전나무에 눈이 샇여 진짜 크리스마스 추리로 이브의 기분을 내주고, 잣나무의 푸른 솔잎도 하얀 눈을 수북이 이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능선 너머에서 들리는 칼바람은 저승사자의 소리로 정말 기를 죽인다. 대장이 예상해주었던 시간보다 30분이 더 걸린 2시간을 걸었다. 칼바람과 설화핀 곰배령-작은 점봉산-점봉산 능선 곰배령에서 점봉산까지는 북설악을 훤히 조망할 수 있고 고산 초원이 펼쳐져 봄이면 온갖 산나물과 야생화로 천상의 화원을 만든단다. 겨울인 이날은 또 다른 꽃, 설화를 피워 놓아 정말 별천지에 묻힌 분위기. 현리에 들어와 방동리 진동리를 달리면서 부옇게 내리는 눈발 속에서 먼 산의 설화를 볼 때는 신선이 된 느낌이었었다. 2시간을 설화속을 누볐다. 그 혹독한 바람이 짜리뭉툭한 나무 분재를 만들어 놓고 눈이 내리니 설화를 피워 놓은 것이다. (곰배령에서) 북동쪽 앞에 보이는 작은 점봉산 가는 길 그 두시간은 날을 세우며 불어대는 바람을 맞아야만 하기도 했다. 하도 눈(雪)을 날리는 바람에 북쪽에 눈(目)을 돌릴 수도 없어 제대로 감상도 못했다. 물론 부연해 대청봉이 보이지도 않았다. 나무가 있으면 숨을 좀 돌리다 마지막 점봉산 가파른 오르막길을 공격할 때는 발을 떼기가 힘들어 등을 돌려 몸을 움추리고 한참씩 서있기도 했다. 끝까지 주파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뒤돌아 내려가고 싶었을 정도로 겁이 나기도 했다. 나 같이 몸이 날씬하면 바람이 피해 나가는가 했었는데… (?) 마치 점봉산을 뿌리채 뽑아 남해바다에 내동댕이 칠 듯한 위세였다. 어쩌면 전국에 거주하는 바람의 여신들의 향연장이 아니었나 싶었다. 정상 표지석에 디카를 정조준했다가도 흔들려 여러 번 찍어도 구도를 제대로 못잡았고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것도 손이 시려 거절했었으니… 물론 나 역시 사진 찍어달라는 얘기도 못 꺼냈다. 이 날은 바람에 비해 기온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라서 체감온도가 그렇게 뚝 떨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주목에 핀 설화 (점봉산을 향해서) 구도자들의 고행길인가 천상으로 가는 희열의 길인가 점봉산에서 박달나무재까지는 또 다른 분위기 바람에 떠밀려 단목령을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눈이 무릎위로 쌓인 내리막길인데 부드럽고 깊어 미끄름을 타다가 넘어져도 엉덩방아를 찔 위험이 전혀 없었다. 밀가루같이 쌓인 눈속을 빠져 보기도 했다. 아이젠이 전혀 이름값을 못하고 스패츠가 역할을 좀 하는 편이었다. 바람도 막아주기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다. 주목이 곳곳에 보이고 올라오다 본 피부미인 자작나무의 사촌격인 사스래나무가 회백색 피부를 하고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치 하얀 눈에 표백이라도 한 것처럼... 그러기를 한시간 가량 내려오니 고개마루가 있어 김밥을 꺼내 보았다. 차가워도 허기를 좀 채우려 했더니 금새 눈바람이 방해를 한다. 그 이후로는 야트막한 오르막이 너댓 번은 있었지만 걷기에 좋은 평탄한 숲길이었다. 크고 작은 조릿대가 계속 손짓하며 인사를 한다. 이 산처럼 오염이 없는 곳에 산다는 더부살이가 참나무와 같은 큰키나무의 높은 곳에 엉성한 새집마냥 달려있는 것이 흔하게 보인다. 1시간 반으로 잡아주었던 이 거리를 2시간 20분이 걸려 단목령에 도착한 시각이 6시 20분. 내려오다 북동쪽 하늘높이 보였던 노을도 없어졌다. 물론 눈빛으로 어둠이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단목령에서 하늘찻집 지나 삼거리로 여기서부터는 골짜기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캄캄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거의 후미에서 따라갔으나 앞에 가던 일행들이 나타난다. 어둑해서 어딘지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씩 초롱초롱 머리위로 나타난다. 예상치 않게 야간산행이 된 꼴이다. 버스에 올라타니 7시. 6시간 반을 걸은 셈이다. 산행을 안내하면서 한바퀴 같이 돈 동내 안내견(진도개) 하루를 더 지내며 내내 설화를 쳐다보고, 보드라운 눈 속을 한없이 빠지며 다니고 싶었던 산행이었다. 한 일행이 설화 맛을 못 보았느냐는 말에 감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게 아쉽다. 남한에서 사람의 손 때가 가장 덜 묻었다는 오지의 이 산을 봄에 기회를 잡아 다시 와 봐야겠다. 메모리가 턱없이 부족해 일부는 디카에 일부는 압축파일로 머리에 넣어왔는데, 디카의 사진은 맘에 드는게 별로 없고 (밧데리가 나가 점봉산 하산부터는 한장도 못 찍었음) 압축 파일은 풀어보니 부르짖음 표(!!!)로만 되어있다. 정말 값진 것은 그만큼 노력과 인내와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대형 사고가 날 개연성이 다분했던 이번 산행. 겨울장비(체인)없이 그 오지를 운전해 갔던 버스 한대, 늦게 들머리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많은 일행을 원점회귀의 장거리를 무리하게 속행했다는 것은 안내 산악회가 아니더라도 인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 산행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 주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 소대(126명이 45인승 버스 세대분)에 달하는 인원이 서울에 안착했다는 게 천만 다행이라 생각된다. 밤 12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물론 주최측에서도 송구스런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고 없이 회원들이 모두 귀경한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드린다. (웃을 수도 울을 수도 없는) 이 어색하고 썰렁한 필자 아이스맨(?) * * * 진로를 오대산에서 점봉산으로 개인 산악회를 따라가기로 했는데 석연치 않게 오대산에서 갑자기 행선지가 달갑지 않은 곳으로 바뀌는 바람에 나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점봉산으로 안내 산악회를 골랐다. 하지만 코스가 긴 것 같아 일행이 있어 저으기 걱정이 됐다. 산악회 대장님은 덕유산보다 낮고 금년에는 눈도 적게 와 쉬울 거라는 얘기다. 다소 안심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간밤에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를 보니 날은 갤거라고 되어 있어 마음이 더 누그러진다. 그런데 하루 내내 바람이 있을 것이란다. 그러면 산 정상에는 얼마나 강하게 불까. 목위 부분의 장비가 부실한 나로서는 겨울산행 때마다 맘이 걸리는데 바람분다는 뉴스에 상당히 애를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집을 나서니 한결 날이 푹하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것 같지 않다. 같이 가기로 한 일행에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고야 깼단다. 그래서 결국 혼자 가게 됐고 부담도 한결 덜어진다. 해와 구름의 지루한 한판 싸움 양재에서 15분 늦은 7시 25분 출발. 버스가 3대가 되다 보니 이 정도 지연은 애교인 것 같다. 앞서 간 산악회 하나도 행선지가 어디인지 두차다. 산행 인구가 많아지면서 금년 봄에는 관광차가 산행에 훨씬 많이 투입될 거라는 예감이다. 복정을 지나 하남, 팔당 대교를 지나는데 동쪽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드리워져 있다. 먹구름 위로 새털 같은 구름이 조금씩 있어 햇빛을 받아 해가 올라오고 있음을 알려 준다. 주위는 간밤의 비로 봄기운이 돋는 것 같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목요일 (2월19)이니 겨울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시기에 와 있다. 그런데 구름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먹구름 큰 덩어리로 해가 오르니 가장자리에 무슨 은테라도 두른 듯 멋있는 모습이다. 그러더니 천지창조의 빛이 틈이 생긴 구름사이로 부채살처럼 내려비치기도 한다. 계속 구름이 방해를 한다. 8:40-9:00/ 양평 끝 클린턴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아침 거른 사람은 허기를 채우라는 얘기다. 바람에 눈이 분분하다. 해가 나는 듯하더니 구름이 또다시 양보를 못하겠다는 심산이다. 바람과 눈을 동원하는 것 같다. 해가 담합이라며 공정거래 위원회에라도 제소를 하겠다고 으르는 것 같다. 옆 논에 놀러 나왔던 토종 누런 암탉이 중닭을 거느리고 칠면조와 함께 봄기운인지 싶어 나왔다가 분분한 눈발에 종종걸음으로 서두른다. 오늘은 바람에다 눈까지 겹쳐 겨울 산행에서 쉽게 겪지 못할 것을 경험할 것 같은 느낌이다. 산비탈에 끝물 눈이 조금씩 보이기도 하지만 눈길을 끌기에는 계절의 변화가 한참이다. 지나는 길목 산비탈에 간간이 늘씬한 낙엽송이 수직선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겠다는 듯이 하늘 높이 서 있다. 9:35/ 철정/ 홍천가도를 달려 철정을 지나 합강에서 우회전 내린천 길을 따라간다. 몇년전 리프팅하다 황천 갈 뻔한 강인데 물이 많지 않다. 멀리 남쪽으로 고산 8부 능선 위로 노년의 머리발처럼 반백이다. 어느 화가도 따를 수 없는 수묵화다. 11:10-45/ 방동리를 지나 오르막을 가는데 차가 숨이 턱까지 차면서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해 놓은 것 처럼 부르르 떨더니 앞차와 함께 미끄러져 비스듬히 길 한가운데 선다. 빙판에 간밤의 눈이 쌓여 올라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길은 먼데… 일단 길가 마사토를 바케쓰와 마대푸대로 퍼다 바퀴밑에 깔았고 운전기사는 체인을 감았다. 뒷차는 체인도 없다. 세번 째 일행들을 앞 두차에 나눠 태우고 고개를 넘었다. 눈이 허옇게 쌓여 눈이 부셔 창밖을 보노라니 골이 지근지근 아프다 12/30. 예정시간 보다 1시간 반이 넘은 12시 30분에 들머리에 도착했다. 곰배령까지 1시간 30분, 곰배령에서 점봉산까지 1시간, 단목령 (박달나무고개)까지 1시간 반 진동리까지 30분 총 4시간 반 걸릴 거라는 가이드의 차안에서의 소요 시간이었다. 들머리에 늘어선 4개소대 대원들의 행군모습 <이학인기자 lee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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