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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패러디 나란히 전시… 경계 허문 박물관 대중과 함께 호흡

■ 문화재 선진국 프랑스를 가다<br>형식·엄숙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현재, 예술-상업 넘나들며 끊임없는 새 시도로 관객 발길 끌어<br>명품 패션브랜드·디자이너와 협업 장식·의상·도자기 기획전도 개최

18세기 말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제자 장 브록이 그린 '히아신스의 죽음'과 이를 패러디한 '다비드와 조나단'이 나란히 걸려 있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은 '18~19세기 고전과 현대 작가의 예술적 교감'을 주제로 근대 이후 도외시됐던 남성 누드 예술전시를 기획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에서는 마티스의 작품과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의상을 함께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프랑스 파리 팔레갈리에라의상박물관의 언론담당자 엘리자베스 부슈홍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장식미술관에서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일본 열풍이 그대로 묻어나는 고가구 앞에 엘렌 유스당의 비디오작품이 모니터에 재생되고 있다. 또 침대 위에는 오헬리 라노와즐리의 웨딩드레스가 늘어뜨려져 있다.

프랑스 파리장식미술관의 전시 부스에 명품 브랜드 샤넬의 고풍스러운 목걸이가 모티브를 제공한 복식 유물과 함께 전시돼 있다. 샤넬의 목걸이가 부스 중심에 자리잡고 오히려 유물들이 들러리를 서는 듯한 느낌이다.


루브르박물관ㆍ퐁피두센터와 함께 프랑스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우리에게는 '인상파 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이곳 1층에서는 '남성 대 남성-1800년부터 현재까지 예술 속 남자 누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 '300'에서 튀어나온 듯한 근육질 남자들의 누드사진전이다. 오르세미술관에서 언뜻 포르노그라피 수준의 사진전을 진행하는 것도 그렇지만 더 파격적인 것은 그 그림의 모티브가 된 원화를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는 점.

전시관 중앙에는 18세기 말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제자 장 브록이 그린 '히아신스의 죽음'과 2명이 공동작업하는 현대 미술작가 피에르 앤 질(사진작가 피에르 코모이와 화가 질 블랜차드의 공동작업)이 패러디한 작품 '다비드와 조나단'이 나란히 걸려 있다. 두 작품 모두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과 히야킨토스의 동성애가 소재라는 점을 감안해도 교과서 속 거장의 작품과 다소 선정적인 패러디를 같은 벽에 건다는 기획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역시나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이렇다면 다빈치의 '모나리자' 옆에 보테로의 패러디 작품이 함께 전시되는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국립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 원조각품과 빨간 타이츠를 입힌 패러디 '반가감유상(백민준 작)'을 같이 전시하는 게 가능할까. 기획 단계에서 이미 격이 떨어진다며 반려되거나 설사 시도됐더라도 특정 예술가에 대한 자격 논란이 일 게 뻔하다.

부럽게도 프랑스인들에게 문화재는 단단한 벽 높이 걸린 액자 속의 먼 존재가 아니다. 물론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조차 익숙한 그림과 조각ㆍ건축물 덕분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엄숙주의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박물관의 운영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시민들이 호흡하는 공간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테마의 박물관들이 과거와 현재, 예술과 패션, 상업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시들로 관심을 끌고 있다. 박물관에 박제되듯 갇힌 유물이 아니라 지금 어디선가는 만들어지고 또 쓰이는, 혹은 즐길 수 있고 살아 숨쉬는 스타일로 존재한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듯 문화재가 세월에 갇히지 않고 대중과 대화하고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예술을 열어간다.

앞서 언급한 오르세미술관의 예는 파리시내의 많은 박물관에서도 확인된다. 'ㄷ'자 구조의 루브르박물관 끝자락에 위치한, 연간 방문객 수로 프랑스에서 네번째인 파리장식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세시대부터의 아름다운 고가구와 의상, 장식품 중간중간에 현대 예술가가 이를 나름대로 재해석한 예술작품, 샤넬ㆍ랑방 등 대표적인 프랑스 패션기업의 액세서리ㆍ드레스 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목걸이 등 장신구 전시대에는 샤넬의 고풍스러운 목걸이가 오히려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모티브가 됐을 장신구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19세기 유럽을 휩쓴 일본 열풍이 물씬 묻어나는 장롱과 궤짝 전시장 앞에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사진가인 엘렌 유스당의 비디오작품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이고 200여년 전 만들어진 침대 위에는 오헬리 라노와즐리의 웨딩드레스가 늘어뜨려져 있다.

소장품이 15만점에 달하는 장식박물관 홍보담당자 마리로흐 모호는 "이런 방식의 전시를 통해 과거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장식예술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며 "유행은 돌고 도는 것으로 박물관 전체 전시가 비슷한 의도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아예 명품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 마크제이콥스의 업적과 창의성을 기리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제1대학에서 도자기 부문 문화재 보존복원 박사학위 취득을 앞둔 정수희씨는 "리옹섬유장식미술관은 이례적으로 명품 패션기업 에르메스와 협업해 실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장고에 보관 중인 수십, 수백년 전의 섬유 장식ㆍ패턴를 기록한 문서와 문화재를 통해 현대작품의 탄생을 꾀하겠다는 의미로 문화재의 좀 더 다각적인 활용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당시 리옹섬유장식미술관 측은 에르메스와의 150년 친선을 기념하는 의미로 에르메스 섬유디자이너들에게 특별히 미술관 수장고를 개방했다. 그는 이어 "물론 이런 이벤트를 갖기에 앞서 대상 문화재의 보존 상태와 예방보존이 반드시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시립 팔레갈리에라의상박물관은 4년 만에 재개관하면서 첫 전시를 위해 '패션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에게 전체 공간을 할애했다. 알라이아는 1980년대 당시 신소재이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를 적극 활용하고 지퍼와 레깅스를 패션으로 정착시킨 사람. 박물관 언론담당자 엘리자베스 부슈홍은 "그저 먼 과거의 의상을 전시하는 것보다 현재까지 숨쉬는 작품들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며 길 하나 마주보고 있는 시립현대미술관에서도 마티스의 대형 회화작품과 알라이아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백년 전 옛 복식만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패션디자이너의 가치 역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관요(官窯)이자 도자기 수집가들에게서 그 예술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세브르국립도자기공방에서는 다른 분야 예술가와의 협업이 이미 정착돼 있다.

공방이 생기던 1740년부터 지속된 작업에는 앵그르와 피카소, 루이스 부르주아, 쿠사마 야요이, 피에르 술라주 등 쟁쟁한 전세계 작가들이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이응노 화백이 1960년대 파리에 체류할 당시 세브르를 방문해 작품을 남긴 바 있다. 세브르 장인들은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을 도자기 속으로 끌어들여 과거 스타일에만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5개 정도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협업작품들은 작가와 박물관이 각각 1점씩 보유하고 나머지는 경매를 통해 팔려나간다. 통상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이 도자기들은 전문수집가가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비드 카메오 세브르국립도자기박물관 관장은 "공방에서 전통적인 기법으로 제작되는 제품 70%가 현대적인 스타일의 도자기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며 "아시아ㆍ미국 등 출신의 여러 분야 예술가들과 꾸준히 콜래보레이션(협업)을 통해 새로운 문화유산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방한했을 때 하종현 작가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이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도자장인을 서로 초청해 협업하면 기술적ㆍ예술적 측면에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2015년 한ㆍ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도자기와 세브르 공방의 현대적인 도자기를 아우르는 전시를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지난 10~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KPF 디플로마-문화재 보존과 복원' 해외과정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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