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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 시장에서 중국의 장악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 자본이 곳곳에 침투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오히려 국내 업체가 중국 게임의 판권을 사들이는 데 열을 올릴 정도로 '역수출'이 일어나고 있다. 자국 시장은 닫아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방위 외국 진출에 나서는 중국의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위기감이 국내 게임 업계에 팽배하다.
실제로 국내 대형 게임사들이 앞다퉈 중국 게임 모셔오기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 텐센트의 모바일 게임 '전민(全民)돌격'의 국내 퍼블리싱(유통)권을 두고 3~4곳의 한국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전민돌격은 지난 1월 중국 현지에서 출시돼 월 수익이 약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판권은 넷마블에 돌아갈 것으로 유력시된다. 넷마블은 앞서 역시 텐센트의 게임인 '천천현투'의 판권을 따내기도 했으며 '시티앤파이터'라는 이름으로 곧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다. 넷마블뿐만이 아니다. 국내 게임사 웹젠의 '뮤 오리진'은 중국 업체 킹넷의 '전민기적'이 원작이며 넥슨의 '탑오브탱커'와 '천룡팔부3D' 역시 중국 게임의 한국판이다.
중국 게임 판권 따내기 경쟁은 중국 게임이 자본력만 높은 것이 아니라 게임의 질까지 국산을 추월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텐센트는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약 7,500억원을 국내 게임·IT 업체에 투자했으며 넷마블과 다음카카오의 3대 주주이기도 하다. 또 최근 다른 대형 게임사인 자이언트는 국내 중소 개발사 여러 곳을 한꺼번에 인수하기 위해 업체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게임과 게임사를 쇼핑하듯 해왔는데 이제는 이를 넘어 중국 게임을 한국에 수출까지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자신만만함을 바탕으로 국산 게임의 현지 진출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고 있다. 데브시스터즈의 모바일 게임 '쿠키런'은 텐센트와 현지 출시 계약을 맺었다가 2월 계약 해지를 당했다. 품질검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쿠키런은 세계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7,000만 건에 이르고 동남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점을 고려하면 충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위메이드의 '달을 삼킨 늑대',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데빌메이커' 등의 중국 진출이 무산된 바 있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텐센트가 중국시장에 우리 게임을 퍼블리싱할 때 비즈니스 모델, 그래픽 등 깐깐하게 현지화 작업을 요구하고 있어 출시 전 테스트 기간만 1년이 훌쩍 넘을 때도 있다"며 "중국 게임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있어 특히 소형 개발사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의 게임 시장 장악을 현실로 인정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한 게임사 임원은 "중국이 '기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국내 게임사에 투자해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 시장에 재투자하게끔 하는 유인책 마련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소 개발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윤형섭 상명대 게임학과 교수는 "중소 개발사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다 '한탕'을 바라고 중국 자본에 의지하는 일이 없도록 지원을 확대해 협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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