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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비롯해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교육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입학시험은 오직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목적밖에 없어요." 지난 1월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뒤 일본을 찾은 나카무라 슈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아시아의 과학 교육 체계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입시에 모든 초점을 맞춘 채 창의력과 상상력을 억누르는 아시아 교육 시스템으로는 과학과 이를 통한 산업 발전이 요원하다는 의미였다.
사실 일본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을 배출하는 등 그동안 물리학상 10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2명 등 과학분야에서만 22명의 노벨상을 탄 기초과학 강국이다. 그런 일본에 대해서도 과학교육의 문제점이 거론되는 마당에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커녕 필즈상(수학계의 노벨상) 수상자도 전무한 우리 입장에선 더욱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뛰어난 기초과학 성과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뒤바꾼다는 점에서 응용과학보다 파급력이 더 크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은 모든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은 20세기 철학·사회·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 강력한 힘을 미쳤다.
지난 2월 과학 대중화를 위해 발족한 카오스 재단의 김남식 사무국장은 "우리가 식민 시대를 겪은 것도 일본보다 과학기술이 뒤떨어져서이고 강대국에 둘러싸인 현재도 기초과학 육성은 민족의 사활과 직결됐다"며 "그러나 아직도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은 인문사회 쪽에 비해 크게 뒤처진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과학자들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작은 자극으로 인해 과학의 길로 들어선 경우가 많았다. 아인슈타인은 고작 서너 살 때 아버지가 준 나침반 바늘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후 평생 동안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받은 마리 퀴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 있던 물리 실험 도구들을 보며 꿈을 키웠고, 슈지 교수는 만화영화 '철완 아톰'의 오차노미즈 박사(코주부 박사)를 동경하며 과학에 재미를 붙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연구재단이 수여하는 4월의 과학기술자상을 받은 김진현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장은 "어릴 때 부모님께 싸구려 플라스틱 현미경을 선물 받으면서 과학에 흥미를 느꼈고,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자유롭게 큰 게 과학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다수 굴지의 순수과학자들은 어려서부터 자율적인 교육 환경에 있었던 게 이후 연구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수학 쪽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만줄 바르가바는 학교를 쉬고 싶다고 부모에게 말해도 한번도 거부를 당한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몇 달 동안 학교도 안가고 조부모님 댁에서 다른 할 거리를 찾기도 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사상 첫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2012년 멤버 5명 가운데 3명이 의대로 진학했다.
김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수리정보과학부장은"우리나라에서는 똑똑한 아이들도 수학·과학을 하는 목적이 특목고·의대를 가기 위한 것에 국한된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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