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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서쪽으로 20여분쯤 버스로 달리자 리포은행의 대형간판이 허허벌판에서 손짓했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캘리포니아’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아니나다를까 한국에서도 종종 만나는 낯익은 풍경이 이곳에서도 연출됐다. ‘Selamat Datang Lippo-Karawaci’(어서오세요 리포-카라와치 입니다.) 도시로 들어선 순간 그러나 풍경은 다시 낯설어졌다. 지금까지 보아온 인도네시아는 없었다. 약간 구불구불하지만 잘 정돈된 도로 위에는 외제 고급차가 굴러다녔지만 자카르타의 무질서와 교통혼잡은 없었다.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판자집 역시 자취를 감추고 고급 식당가, 줄지어 늘어선 유럽식 저택, 울창한 나무 숲으로 덮힌 녹지가 차창을 지나갔다. 맨 먼저 찾은 곳은 실로암 글리니글스(Siloam Gleneagles) 종합병원. 10층 규모에 135개 병상을 보유한 이 병원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실로암 의료그룹이 리포그룹과 제휴해 지은 최첨단 의료시설이다. 병원안내를 맡은 마리아씨는 “진료는 모두 인도네시아 의료진이 담당하지만 싱가포르 의료진이 함께 컨설팅을 하며 사실상 진료와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형 뿐 아니라 내실 마저 인도네시아의 작은 캘리포니아를 지향하는 리포-카라와치였지만 물가만은 인도네시아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실로암 그리니글스의 최고급 병실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의 하루 입원비는 30만원. 미국이나 싱가포르라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 곳이라는 게 마리아씨의 전언이다. 스위트룸의 통유리로 450여만평 규모의 리포-카라와치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초고층 빌딩 2개동이 눈에 띄었다. 도시운영팀 리니씨는 “한국의 현대건설이 지은 52~53층 규모의 아파트” 라며 “분양이 완료됐고 한국 사람도 많이 산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적지않은 건 병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임페리얼 아리야두타 골프장에서 실감할 수 있다. 한국 기자라는 말에 골프장 지배인은 잔뜩 기대감을 보이며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했다. 그는 “한 달 4,500여명의 입장객 중 약 40%인 1,600~1,800명이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연습 중이던 김정인(가명ㆍ45)씨는 “평일엔 비용이 한국의 10분의1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며 “골퍼들이 인도네시아 등으로 몰리니 한국은 참 큰 일”이라고 했다. 골프장에서 5블록 정도 떨어진 면적 10만 평방미터 규모의 초대형 쇼핑몰에는 전세계의 의류, 화장품, 식료품, 전자제품 브랜드 판매처가 총 망라돼 있었다. KFC, 맥도널드, 파파이스 등도 한자리에 모여 있고 놀이시설도 옹기종기 설치돼 쇼핑몰의 중앙광장은 인파로 넘쳐났다. 도시설계자인 고든 베네통(Gordon G Beneton)씨는 “리포-카라와치는 의료ㆍ교육ㆍ상업면서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해 최상의 주거환경을 제공한다는 도시계획 컨셉을 명확히 하고 이를 실현했다”고 말했다. 92년 첫 삽을 뜬 리포-카라와치가 도시로서 모습을 갖춘 지 불과 2~3년 만에 거주인구 10만, 유동인구 20만명의 전원형-레저도시로 성공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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