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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4월 2일] 노블레스 오블리주

‘박연차 리스트, 장자연 리스트.’ 요즘 대한민국 국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리스트’에 파묻혀 산다. 신문이나 방송은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뉴스를 쏟아낸다. 퇴근 이후 술집에서는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리스트 뉴스는 한반도도 모자라 바다 건너 영국까지 전해졌으니 ‘리스트의 글로벌화’라고 할 지경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탤런트 장자연씨 자살을 계기로 연예인을 참석시키는 술 접대 관행에 한국인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이 사건이 국가적인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나라 망신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하다. 리스트와 연관돼 감옥에 가고 망신 당하는 사람 대부분이 가진 자, 권력 있는 자 또는 기득권자로 알려지고 있다. 리스트명은 다르지만 이른바 사회의 권력자들이 지위를 이용해 사욕을 채웠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는 듯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높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유래됐다. 참 멋진 말이다. 서구에서는 이를 실천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ㆍ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들이 다니는 이튼칼리지 출신 가운데 2,000여명이 죽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다. 하지만 리스트 파문을 보면서 이 말이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은 먼 나라 얘기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최근의 사태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역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기가 무척 힘든 게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대다수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하며 난관 극복에 애를 쓰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국론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의욕을 꺾는 일은 하지 말아달라는 게 국민들의 소박한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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